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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이 있을 뿐이다


입력 2018.12.29 06:00 수정 2018.12.29 05:33        이석원 객원기자

<알쓸신잡-스웨덴㉙> 영하 10도에도 야외활동 하는 유치원

자연 속에서 강한 면역력 만들어내는 스웨덴의 교육 고집

<알쓸신잡-스웨덴㉙> 영하 10도에도 야외활동 하는 유치원
자연 속에서 강한 면역력 만들어내는 스웨덴의 교육 고집


스웨덴의 어린이집은 영하 10도 정도의 기온에는 야외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다. 한국의 엄마들 중에서는 그런 스웨덴의 교육 환경에 사뭇 놀라고는 한다.ⓒ사진=이석원 스웨덴의 어린이집은 영하 10도 정도의 기온에는 야외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다. 한국의 엄마들 중에서는 그런 스웨덴의 교육 환경에 사뭇 놀라고는 한다.ⓒ사진=이석원

효선이 엄마 순정 씨와 정민이 엄마 보현 씨, 그리고 일란성 쌍둥이 민아와 민지 엄마 가영 씨는 스웨덴에 온 지 1년이 안되는 초보 이민자들이다. 아이들이 또래고 엄마들도 나이가 비슷해 친하게 지낸다.

가장 최근 스웨덴에 온 사람은 순정 씨다. 아직 만 3개월도 안됐다. 그런데 효선 씨가 다른 엄마들에게 피카를 하자고 불렀다. 그리고는 그 때까지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흥분했다. 이야기인즉슨, 3살짜리 딸 효선이가 하마터면 얼어 죽을 뻔 했다는 것이다.

효선이는 지난 12월 초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주로 아빠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후에는 순정 씨가 데려온다. 그런데 아이가 늘 흙투성이다. 옷이며 신발이며 엉망진창이다. 진흙으로 범벅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스웨덴 유치원은 야외 활동이 많다는 얘기를 이미 들은 터라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2월 어느 날, 겨우내 어지간해서 영하로 내려가지 않던 날씨가 영하 10도까지 뚝 떨어졌다. 효선이를 유치원에 보낼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시내에서 점심 약속도 있던 터라 중무장을 시키고 유치원에 보냈다. 점심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일찍 집에 왔다가 너무 추운 날이 신경 쓰여 유치원에 갔다. 일찍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서.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효선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야외 놀이터에서 뒹굴고 있었다. 교사들은 팔짱을 낀 채 아이들 주변만 지키고 있었고. 스마트폰의 온도계를 보니 영하 9도. 바람까지 불고 눈도 내리고 있는데. 순정 씨는 씩씩대며 효선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순정 씨의 이야기를 들은 보현 씨는 정신없이 웃었다. “효선 엄마, 너무 놀랐겠다”며 위로하고 있는 가영 씨도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보현 씨가 입을 열었다. “스웨덴 유치원에서는 영하 15도 이하면 야외 활동을 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지간해서는 아이들은 안이 아니라 밖에서 놀아. 놀랄 일이 아니야.”

가영 씨도 거든다. “그래서 스웨덴 아이들이 강한 편이야. 나도 처음에는 기겁했는데, 조금 지나다보니 그게 훨씬 좋더라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고.” 그래도 순정 씨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이건 거의 아동 방치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과연 이대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까?

스웨덴에는 퍼르스콜라(Förskola)라고 불리는 공공성이 강한 유치원과 다그맘마(Dag-mamma)라고 불리는 사설 어린이집 같은 것이 있다. 만 1살부터 다닐 수 있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5살까지 다닌다. 6살이 되면 0학년으로 사실상 초등학교 교육을 시작한다. 그리고 7살이 되면 1학년으로 본격적인 학교를 다니게 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마다 차이가 조금은 있지만, 오전 6시 30분부터 7시 30분 사이 문을 연다. 맞벌이가 대세인 스웨덴이다 보니 일찍 출근하는 부모들을 위한 것이다. 늦어도 8시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모두 도착한다. 그 때까지 먼저 온 아이들은 그냥 논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하면 노래와 율동을 하고, 과일로 아침 간식을 먹는다. 그리고 곧장 실외 놀이터에서 논다. 자체 놀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은 어린이집나 규모가 작은 유치원은 2명의 교사가 아이들을 인솔해서 인근에 있는 공공 놀이터에 간다. 11시에 아이들은 점심을 먹는다. 점심 식사 후 실내 활동을 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공작 시간이다. 2시간 정도 그러고 나면 빵이나 과자 등의 오후 간식을 먹고 다시 아이들은 밖으로 나간다.

야외 활동 때 아예 밖에서 간식을 챙겨 먹이는 경우도 있다. 출산한 딸 때문에 스웨덴에 머물며 손주를 돌보던 한국 할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 기겁을 한 일도 있다.ⓒ사진=이석원 야외 활동 때 아예 밖에서 간식을 챙겨 먹이는 경우도 있다. 출산한 딸 때문에 스웨덴에 머물며 손주를 돌보던 한국 할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 기겁을 한 일도 있다.ⓒ사진=이석원

보현 씨 얘기처럼 대체로 겨울 기온이 영하 15도 이내면 아이들의 야외활동은 계속된다. 야외활동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온다고 멈추지 않는다. 스웨덴에는 “나쁜 옷은 있어도 나쁜 날씨는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스웨덴 어린이집의 교육 환경이 한국의 엄마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날씨와 기온에 상관없이 이뤄지는 야외 활동 때문에 놀라기 일쑤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던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아동 방치 또는 아동 학대로까지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아동복지기관을 찾는 이들도 있다. 물론 헛걸음이기는 하지만.

스웨덴 아이들의 이런 일상적인 야외 활동에 대해 스웨덴 교육계는 “당연하고 유익하다”는 반응이다. 문제 제기도 없다. 오래 전부터 이어오던 교육 전통이기 때문이다. 또 어린이 건강 전문가들도 긍정의 반응이다. 영국의 소아 전문 의학자인 카이설 헤이슨 박사는 “스웨덴식 야외 활동은 아이들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핀란드의 저명한 교육학자인 실따 아브라함 박사는 “아이들의 시야를 훨씬 넓혀주는 야외 활동은 창의성을 발달시키고, 자연을 좀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학교 입학 전 유아들에게 많은 야외 활동을 시키는 것은 아주 유익한 일이다”고 강조한다.

스웨덴의 부모들은 한 겨울 야외 활동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이 나빠지는 일은 전혀 없다고 얘기한다. 오히려 최근 일부 국제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좋지 않은 날씨를 이유로 야외 활동을 줄이는 것을 마뜩찮게 생각한다. 아이들은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 때 가장 교육의 효과가 좋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야외 활동은 초등학교에 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스웨덴의 초등학교에서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 영하 15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진 날에도 운동장에서 축구나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숲속을 뛰어다니면 수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유아 시절부터 체득한 자연과의 교감이 그들의 정서와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초기 스웨덴 생활에서 한국의 엄마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일이긴 하다. 아무리 스웨덴은 그런다고 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상태 때문에 결국 긍정하게 된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 차이가 조금 있는 자녀 둘 이상을 키우는 경우에는 비교가 더 쉽다. 한국에서 그 시절을 보낸 아이보다 스웨덴 유치원을 다닌 아이가 더 좋은 환경이었다고 느끼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엄마들은 스웨덴의 날씨나 어린이집의 교육 환경을 탓하기보다 옷과 신발을 챙긴다.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이 있을 뿐이다’를 받아들이기에.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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