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하기 불편한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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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취하기 불편한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알쓸신잡-스웨덴⓷’ 주말 밤거리서도 취객 보기 어려워
    정해진 시간에만 술 살 수 있는 시스템 불라겟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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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5-19 05:00
    이석원 객원기자
    ‘알쓸신잡-스웨덴⓷’ 주말 밤거리서도 취객 보기 어려워
    정해진 시간에만 술 살 수 있는 시스템 불라겟의 효과


    ▲ 스웨덴에서는 3.6도 이상의 술은 시스템 불라겟이라는 국가가 운영하는 주류 상점에서만 살 수 있다. (사진 = 이석원)

    스톡홀름이나 예테보리 등 스웨덴의 대도시 번화가에서 주말 저녁이라도 보기 어려운 것이 있다. 술 취한 사람들이다. 대학가에도 마찬가지다. 길거리는 고사하고 왁자지껄한 술집에서도 술 취한 사람들은 목격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심지어 어지간히 술 마신 티를 내고 다니는 사람은 술집 출입이 제한된다. 술집에서 술이 흥건히 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물론 그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는 더 이상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보드카인 ‘앱솔루트’의 나라 스웨덴. 세계의 거의 모든 종류의 술을 쉽게 마실 수 있다는 술의 천국. 그러나 스웨덴은 세계적으로도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OECD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알콜 소비량 1위는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위인 룩셈부르크다. 연간 15.3 리터의 술을 마셨다. 2위 프랑스가 12.6 리터인 것을 감안하면 룩셈부르크 사람들의 술 사랑은 대단하다. 당시 한국은 8.3 리터로 22위, 그리고 스웨덴은 7.4 리터로 34개 OECD 국가 중 27위를 차지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밤만 되면 술 취한 사람들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프랑스는 말할 나위 없고, 밤 문화가 한국만큼 화려하기로 소문난 스페인은 주말이면 술 취한 사람으로 거리가 가득하다.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 역 주변의 주말 밤거리는 멀쩡한 사람보다 술 취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맥주 소비 1, 2위 국가인 체코와 독일도 그렇다.

    같은 유럽에서 사람들 간의 차이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이들 나라와 비교해 스웨덴에서는 술 취한 사람은 보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시스템 불라겟(Systembolaget)이라는 주류의 국가독점판매제도가 있다. 시스템 불라겟은 3.6도 이상의 술을 판매하는 국영 주류 판매처다. 즉 스웨덴에서는 일반 마켓에서 3.6도 이상의 술을 살 수 없다.

    스웨덴 술의 국가 독점 판매 역사는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스웨덴은 지금의 스웨덴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스웨덴은 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늘 좌절감과 패배감이 팽배해 술을 많이 마셨고, 숱한 알콜 중독자들은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결국 스웨덴 정부는 1850년 술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스웨덴에는 미국 이민 바람이 불었다.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기회의 땅’을 찾아 나선 것이다. 1930년 이전까지 스웨덴 인구 450만 명 중 150만 명이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이후 스웨덴 정부의 술 규제는 더 심해졌다. 세계 제1차 대전 중에는 한 가정 당 한 달에 2리터의 술만을 제공하는 주류 할당제를 실시한다. 심지어 맥주의 경우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살 수 있었다.

    스웨덴 정부는 1922년 금주법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기까지 했다. 월급날 술에 취한 남편이 집 앞 계단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우는 아내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도 등장했다. 포스터의 문구는 ‘월급날 저녁, 찬성에 표를 던져라’였다. 이런 웃지 못 할 포스터까지 등장했지만 다행히(?) 금주법 국민투표는 부결됐다.

    금주법의 위기를 겨우 모면했지만 주류 할당제는 더욱 강화됐다. 미국의 대공황 시대 금주법 보다는 약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술 줄이는 사회’는 1955년까지 이어진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는 1955년 주류 할당제를 폐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정부가 술에 대한 규제를 없앤 것은 아니다. 술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술 판매를 국가가 독점했다. 바로 시스템 불라겟이 탄생한 것이다.

    ▲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스템 불라겟은 영업시간이 길지 않다. 심지어 토요일은 오후 3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일에는 대개 오후 6~7시면 문을 닫는다. 대신 이곳에서는 세계의 어지간한 종류의 술을 다 만날 수 있다. 시스템 불라겟에 없는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도 없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판매량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스웨덴에서는 술을 사는 것이 불편하다. 아무 때나 술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집에 어지간한 술을 비축해두기는 하지만, 그러니 집이 아닌 곳에서 쉽게 술을 사서 마시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시스템 불라겟에서 산 술을 자신의 집이나 초대받은 집에서 마신다. 그러니 길거리에 술 취한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스웨덴에서 4월 30일은 ‘발보리매소아프톤(Valborgmässafton)’이라는 명절이다. 스웨덴 뿐 아니라 독일과 네덜란드, 핀란드와 발틱 3국 등 북유럽 국가들도 이 날을 기념한다. 그 전날을 스웨덴에서는 ‘발보리매소아프톤’, 또는 줄여서 ‘발보리’라고 부르며 밤새 공원 등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을 마신다. 이 날만큼은 스웨덴 전역은 길거리에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술에 만취한다. 밤새도록.

    또 미드솜마르(Midsommar)도 그렇다. 영어로는 미드 섬머, 즉 하지 축제다. 매년 6월 20일을 즈음한 시기,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 스웨덴 사람들은 또 다시 모두가 각 지역의 미드솜마르 축제장으로 나온다. 넓은 들판 한가운데 마이스통(Majstång) 또는 미드솜마르스통(Midsommarstång)이라고 부르는 기둥을 세워놓고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우스꽝스러운 집단 춤을 추면서 하지의 햇볕을 만끽한다. 그리고 가지고 나간 연어며 청어 절임 등 음식과 함께 아콰비트(Aquavit)라고 부르는 감자로 만든 전통 독주를 마신다. 이 또한 밤새도록.

    덴마크에 이어 세계에서 국민의 조세 부담률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인 스웨덴. 부가가치세율이 25%에 이르고, 소득세 최고 세율이 60%에 이르기도 하는 세금 천국 스웨덴. 그 세금으로 세계 최고의 복지를 누리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세금 부담을 안고 산다지만 그래도 세금 내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을텐데, 이 날만이라도 술에 취해 그것을 잊고 싶은 것은 아닐까? [스웨덴 스톡홀름 = 이석원 객원기자][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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