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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선수는 메달 박탈할 적폐인가?


입력 2018.04.11 09:44 수정 2018.04.11 10:02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과정에서의 공정성 지적해야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 금메달리스트인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선수의 올림픽 메달을 박탈하라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 화제다.

이승훈에 대한 반감은 평창올림픽 직후에, 이승훈의 ‘탱크’로 희생된 선수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 후부터 나타났다.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앞에 서면 공기 저항 때문에 체력이 소진되기 때문에 이승훈은 후방에서 체력을 비축하는 대신, 누군가가 앞에서 공기를 뚫고 나가는 탱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번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 결승전에선 정재원 선수가 탱크 역할을 했다며, 정재원이 이승훈의 금메달을 위해 희생당했다는 비난도 나타났다. 이승훈이 특혜를 받으면서 여러 선수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올림픽 메달을 땄으니 부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 하는 선수를 밀어주는 걸 꼭 ‘특혜’로만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애매하다. 대표팀을 한 팀으로 본다면, 팀 내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작전’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팀들도 그런 식의 작전을 수행한다고 한다.

올림픽 금메달이 특정 국가 내에서 특혜를 준다고 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자기 실력으로 따야만 하는 것이 올림픽 메달이다. 금메달을 땄을 정도면 분명히 실력이 세계 최고라고 봐야 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이승훈은 다양한 종목에 출전해 한국 선수 중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이 정도면 실력이 검증된 셈이다. 이런 선수를 밀어준 것도 특혜일까?

정재원 선수가 꼭 희생한 것인지도 애매하다. 팀추월에서 이승훈 선수가 막판에 앞장서서 공기 저항을 뚫고 팀을 이끌어 은메달을 따냈다. 덕분에 정재원은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상 최연소 메달리스트가 됐다. 팀추월 경기 후 정재원은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이승훈이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성적이 더 떨어졌을 것이다. 이승훈이 이끌어 은메달리스트가 되고 매스스타트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했다면 그게 꼭 부당한 희생일까?

이승훈에 대한 비난은 빙상연맹 전명규 부회장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전횡을 일삼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선수에게만 특혜를 주고 그렇지 않은 수많은 선수들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의적으로 빙상계를 쥐고 흔들었다면 한국 빙상의 그 엄청난 성취가 가능했을까? 전명규 부회장이 주도한 이후 한국 빙상이 국제무대에서 딴 메달이 7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엄격한 실력주의 없이 자의적으로 특혜를 주는 구조로는 이런 성적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메달을 따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보조적인 역할을 맡으라는 것이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거부할 경우 보복까지 나타난다면 문제가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선 앞으로 개선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 성과를 낸 사람들을 악마로 매도하는 방식이어선 곤란하다.

전명규 부회장은 어쨌든 유공자다. 그의 주도로 대한민국이 눈부신 성과를 냈다. 이 부분은 인정하고 존중도 해야 한다. 심각한 비위가 드러나지 않는 한 말이다. 다만 그의 방식이 옛날식 ‘압축성장 성과주의’ 체제여서 현 시대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면 이 부분만 지적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과도하게 한 사람을 악마로 몰아가는 느낌이다.

이승훈 선수를 매도하는 것은 더 말이 안 된다. 전명규 체제는 잘 하는 선수를 강력하게 밀어주는 체제였던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그 체제에서 그동안 메달을 획득해온 우리 간판 빙상스타들이 대부분 수혜자일 것이다. 그러니 이승훈 한 명만 매도하는 게 말이 안 된다. 과거의 성과는 그것대로 인정하고, 앞으로는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빙상계 문화의 민주성도 개선하자는 식의 건설적인 논의를 하는 게 좋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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