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에 푹 빠져 북극 문턱까지 간 ‘오로라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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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8년 07월 22일 07:16:46
    오로라에 푹 빠져 북극 문턱까지 간 ‘오로라장이’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17> 우주 공학도 강명우 씨
    스웨덴 북단 북극권 키루나서 석사 과정 중인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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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1-13 05:00
    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 북극권인 스웨덴 북쪽 도시 키루나에서 우주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강명우 씨.(사진 = 강명우 제공)
    ‘이른 아침에 태어나’, ‘장밋빛 손가락을 지니고’, ‘사프란 빛 옷을 입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 매일 아침 ‘눈부심’의 파에톤과 ‘빛’의 람포스가 끄는 쌍두마차를 타고, 거대한 대양강(大洋江) 오케아노스 위로 날아올라 하늘을 여행하는 그녀. 그러나 군신 아레스와 사랑에 빠져 아프로디테의 분노를 산 에오스는 죽을 운명의 젊은 인간만을 사랑하는 저주를 받았다.

    그리스 신화 속 에오스가 로마 신화에서는 아우로라다. 1621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피에르 가센디는 겨울 북쪽 극지방 하늘을 뒤덮는 신비로운 빛의 물결에 아우로라의 이름을 붙였다. 오로라(Aurora)다. 본 사람보다 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오로라. 유럽에서는 ‘춤추는 신의 옷자락’이라고도 부르는 오로라는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보고 싶은 신비한 자연’으로 꼽힌다.

    그런데 오로라에서 춤추는 신의 옷자락은 보지 않고 ‘태양에서 날아온 대전입자가 지구 자기장과 상호작용하여 극지방 상층 대기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방전 현상’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스웨덴 북부 최대 도시인 키루나에서 ‘방전 현상’인 오로라를 공부하는 강명우(29) 씨가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성균관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강명우 씨가 현재 북유럽 명문 룰레오 공과대학교(Luleå Tekniska Universitet)에서 석사 공부로 택한 것은 ‘Space Technology & Science’,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주 공학 및 과학’이다.

    “인공위성 디자인, 제어 등 공학 부분부터 대기 과학, 천체 물리 등의 과학 부분까지 폭 넓은 분야를 접할 수 있는 공부입니다. 2개의 학기는 모든 학생이 같은 과목을 들으며 우주의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각자의 선호에 따라 남은 1년은 공학 또는 과학 분야를 선택합니다. 저는 과학 쪽에 흥미가 더 있어서 과학 트랙을 선택해서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 룰레오 공과대학교 키루나 우주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강명우 씨와 학교 친구들. (사진 = 강명우 제공)
    강명우 씨의 석사 과정은 유럽 8개 대학이 공동으로 만든 것이다. 그 중 메인 호스트 대학이 스웨덴과 독일이다. 그래서 총 4학기 과정 중 첫 학기는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했다. 그리고 2학기는 스웨덴 룰레오 공과대학교. 여기까지는 의무다. 그런데 선택이 가능해진 3학기도 강명우 씨는 스웨덴을 선택했다. 그런 결심을 한데는 오로라가 큰 역할을 했다. 강명우 씨는 세계적인 오로라의 도시 키루나에서 공부를 마치기로 한 것이다.

    강명우 씨의 학교는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를 10시간 900km를 달리면 도착하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국경 부근 룰레오(Luleå)에 있다. 그러나 실제 공부하는 곳은 여기서도 북서쪽으로 340km를 더 올라가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인 키루나(Kiruna)에 있는 룰레오 공과대학교 키루나 우주 캠퍼스다.

    “키루나는 북위 68도 북극권에 위치한 지역으로 12월부터 2월까지는 낮이 없는 극야(Polar night)를, 6월부터 8월까지는 밤이 없는 백야(White night)를 경험합니다. 지구 대기와 우주 환경을 연구하기에 최적이죠. 개인적으로도 어려서부터 우주, 별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휴학을 하고 천문대에서 일을 했죠. 그런 제게 스웨덴의 키루나는 ‘약속의 땅’ 같은 곳이었죠.”

    하지만 강명우 씨를 스웨덴으로 부르고, 또 석사 과정 내내 붙잡아 둔 것은 단지 키루나의 자연 환경만은 아니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온 우메오 대학교에서 본 스웨덴의 대학 교육 시스템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록 한 학기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명우 씨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짧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극 과학 (Arctic Science)’이라는 과목을 들으며 봤던 오로라는 환상적인 ‘덤’이었다.

    한국에서 전공 시험을 칠 때는 1시간 15분 동안 기계식으로 암기한 내용을 적고 나왔는데, 스웨덴의 경우 항상 6시간 동안 시험을 쳤고 모든 수학과 물리의 공식이 제공됐다. 기계식 암기를 테스트 하는 것이 아닌 솔루션을 유추하는 논리적 과정을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항상 모든 공식을 외우고 시험에 들어가야 했던 한국과는 달리, 스웨덴은 가장 간단한 근의 공식도 시험에 제공되므로 공식을 외우느라고 힘을 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치른 시험 결과를 확인할 때도 담당 교수의 세세한 코멘트가 있죠. 그러니 한국에서는 학점 따기 위해 시험을 쳤지만, 스웨덴에서는 내용 이해를 위해 시험을 쳤다는 생각이 분명했습니다. 한국의 상대평가 방식 보다 스웨덴의 절대평가 방식이 저한테는 잘 맞았어요.”

    ▲ 최근에 강명우 씨가 직접 찍은 오로라 사진. (사진 = 강명우 제공)

    강명우 씨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오로라 박사’로 통한다. 아직 석사 과정인데 박사 소리 듣는 게 쑥스럽기는 하지만 한국적 정서이니. 강명우 씨는 스웨덴 내 한국인들의 다양한 커뮤니티에 오로라와 관련된 정보를 자주 올린다. 연간 평균 오로라 지수를 그래프로 보여주기도 하고, 오로라 지수 예보를 해주기도 한다.

    스웨덴에서 겨울이면 날씨 예보 때 오로라 예보를 하기도 하지만, 스웨덴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최대 공영 방송 SVT의 오로라 예보보다 강명우 씨의 예보가 더 믿음직스럽다. 지난 11월에는 “오늘 스톡홀름에 오로라 지수가 매우 높다”는 속보를 전해줘 어지간해서는 오로라를 관측할 수 없는 스톡홀름에 사는 한국인들이 밤새 하늘을 올려다보게도 했다.

    또 이맘때면 공부하는 틈틈이 오로라 투어 가이드를 한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이라 한국 사람들이 그립기도 해서 시작했다. 오로라에 대한 환상은 있지만 배경 지식이 너무 없어서 기껏 왔다가 오로라는 구경도 못하고 가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유였다.

    그럼 오로라는 왜 극지방에서만 관측될까? 강명우 씨는 “지구가 자석과 같아서 태양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끌려 들어오고, 극지방에서만 지구 대기와 부딪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보통 오로라는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 정도까지 보이죠. 그러니 낮이 긴 4월부터 9월까지는 오로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11월부터 2월까지는 온통 밤이라 오로라를 보기가 좋습니다. 오로라 관측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구름 없는 맑은 하늘인데, 11월부터 2월까지 맑은 날의 월별 차이가 없어 다 괜찮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니 그게 큰 어려움이죠.”

    스웨덴의 11월은 흔히 ‘죽음의 달’이라고 부른다. 보통 아침 9시는 돼야 날이 훤해지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오후 3시가 되면 이내 어두워진다. 12월도 사정은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루시아데이와 크리스마스 때문에 거리마마, 집집마다 예쁜 조명을 켜고 있어 위안이 된다. 그럼에도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은 ‘스웨덴의 겨울은 최악’이라고 힘겨워 한다. 그런데 그 기간이면 아예 낮이 없는 극야 속에 사는 강명우 씨는 어떨까?

    ▲ 겨울에는 낮이 없는 극야 현상이 나타나는 키루나는 오로라 관측에는 최적의 장소다. (사진 = 강명우 제공)

    “키루나는 겨울에는 해가 없고, 여름에는 해만 있습니다. 밤을 싫어하는 분들은 이 곳의 겨울을 싫어하겠지만 그 만큼 이 곳의 여름은 더 좋아할 수 있겠네요. 낮이 짧아서 겨울을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낮이 주는 매력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겨울이 주는 다른 매력에 더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자연을 탓할 수는 없잖아요?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면서 살아야죠. 오로라나 별들처럼.”

    강명우 씨는 스웨덴의 하늘에만 매료된 것이 아니다. 그는 투명한 정치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회 모든 시스템이 발달된 스웨덴 사회에도 큰 매력을 느낀다. 빈부의 차이가 적고, 장애인 등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숙영지까지 약 20km를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게 만든 유명한 아비스코 쿵스레덴 트래킹 코스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스웨덴 유학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높은 수준의 교육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수준 높은 시스템이 만드는 삶의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있기 때문이다. 경쟁을 최대한 낮추려는 스웨덴의 교육, 적은 노동시간과 높은 최저 임금 속에서 자연스럽게 높아진 독서량, 그리고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국민들의 수준 높은 문해력과 토론 능력 또한 전공 공부와는 다른 방향에서 경험할 일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스웨덴에서 배운 공부를 한국으로 가져가려 한다. 그는 석사를 마치고 나면 이곳에서 잘 배운 것을 한국에서 써먹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보이기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 관련 분야에서 일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사람 구경하기도 어려운 곳에서 그 극한 외로움을 참아가며 하늘만 올려다본 것이 제대로 쓰임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에서.”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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