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위기모면용 회담이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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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의 위기모면용 회담이어선 안 된다
    <칼럼>북 체제 연명시켜준 진보 정권들 남북 정상회담
    우리 민족끼리 통일 새시대 열겠다는 열망 과시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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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1-08 05:50
    이진곤 언론인
    ▲ 북한이 오는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리는 고위급회담에 나설 리선권 조평통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명단을 보내왔다.사진은 제38차 남북군사실무회담이 열린 2010년 9월 30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북한정책과장 문상균 대령(왼쪽)과 악수하는 북한 리선권 위원장(오른쪽,당시 대좌) 모습.ⓒ연합뉴스

    ❶김대중-김정일 간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가 붕괴위기를 피해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 전개된 세계 공산체제들의 도미노 붕괴가 북한 김일성에게 엄청난 위기감을 안겼으리라는 것은 그가 남북정상회담을 뜸들이지 않고 결심한 것만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회담 직전 김일성이 사망하고 말았다. 그 이후 조문을 둘러싼 남북 갈등 때문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 재임기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만약 YS가 정부 차원의 공식 조문을 결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정상회담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YS는 조문 불가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 체제 연명시켜준 정상회담

    그는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라고 역설했다. 이 같은 표현은 그를 ‘민족주의’ 이념가로 인식하게 할만했다.

    그는 또 북한과 조문 갈등을 겪으면서도 식량 등 지원에는 적극적이었다. 95년 6월 22일 6‧25종군 연예인과 작고 연예인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면서 북한에 쌀 15만 톤을 무상으로 준다고 밝혔다. 그는 ‘동포애적 입장’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이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줄 것이며 우리가 가진 게 없으면 외국에서 사서라도 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는 이데올로그가 아닌 행동가였다. 그는 정상회담을 포기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도리를 지켰다.

    아버지로부터 통치권과 함께 가난을 물려받은 김정일은 더 심각한 위기감에 몰려야 했다. 철권통치 체제의 강화, ‘고난의 행군’ 탈출은 그의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의 계산으로 ‘남조선’은 적어도 식량과 비료, 그리고 달러 공급처로서의 역할은 맡길만 했다. 게다가 YS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북측 레짐에 대해 아주 호의적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연구성과를 과시했다. 무엇보다 그는 십여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다만 그 이전까지의 평화상 수상자들의 예로 미루어 결정적 계기가 필요했다. 남북정상회담이야말로 ‘퍼펙트 골드’가 될 것이었다.

    그는 밀약한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문을 연기하라는 모욕적인 북측의 주문을 수용하면서까지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김정일은 이때의 회담 대가와 이어서 계속된 정부 및 민간차원의 지원, 그리고 금강산 관광 대가 등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고, 이것이 체제 안정에 큰 도움을 줬으리라는 것은 상식적 추론이다. 어쩌면 쓰나미에 휩쓸려가는 그에게 우리 정부가 동아줄을 던져 준 격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DJ에게도 큰 보상이 있었다. 꿈에도 소망했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것이다.

    ❷김정은은 그 아버지 김정일보다 더 핵무장에 광분하다시피 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3일 6차 핵실험, 11월 29일 ICBM급 화성-15형 미사일 발사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12일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언필칭 ‘핵보유국’의 통치자로서 그의 첫 성명이 지난 1일의 ‘신년사’였다. 그는 ‘핵단추’를 키워드로 삼았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훼손 있을 수 없어

    김정은의 당면 과제는 더 가혹해질 미국의 제재에서도 체제를 유지하는 일이다. 물론 북한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극히 낮은 만큼 경제 제재로 당장 무릎을 꿇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제재에 적극 동참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최소한의 ‘필요’가 있다. 그걸 충족시키지 못하면 체제의 존립이 위협을 받는 그런 재화는 어떻게 해서든 확보해야 한다. 그동안 이 필요에 응해준 나라가 중국이었다. 그런데 그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세관)이 지난 5일 대북한 철강, 공업기계 등 수출을 전면 중단하고, 원유와 정제유 등의 수출을 제한한다고 공고했다.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핵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포기 압력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체제의 존폐를 걸고 맞서든가 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김정은으로서는 절박한 시점이다. 돌파구를 찾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남북회담 제의로 표출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단 남북 당국 간 회담과 관련, 한국 정부의 뜻을 존중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어떤 결론도 수용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고집하는 한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비롯한 제재는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과 심각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물론 없지 않다.

    만약 미국이 1973년 월남 철수 때와 같은 선택을 한반도에서도 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당장 일본이 핵무장으로 맞서려 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이를 막을 명분이나 실리가 없어진다. 아마 한국은 그때쯤 미국‧일본과 거리를 두면서 중국과의 안보 연대를 과시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이 그럴 가능성은 없다. 최대한의 압박 원칙을 고수할 게 확실하다. 북한으로서는 핵으로 맞서면서 시간을 버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현 상황을 잘만 컨트롤 하면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 법하다.

    이럴 때 유용한 패가 있다. 90년대 체제 몰락의 위기에서 기사회생케 해 준 바로 그 카드다. 그래서 김정은이 크게 선심 쓰듯 평창올림픽 참가 및 이를 위한 남북 당국 회담을 제의한 것일 수 있다.

    ❸한국을 회생의 디딤돌로 삼을 여건은 조성돼 있다. 문재인 정부와 그 주변의 정치세력들은 과거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때보다 훨씬 더 과감해졌다. 반면 보수세력은 지리멸렬 상태다. 이제는 공공연히 자유민주주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국회 헌법개정특위 자문위원회가 마련했다는 헌법 개정안 초안의 내용이 그 단적인 예다.

    “자문위는 헌법 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를 뺐다. ‘자유시장경제’ 대신 ‘평등한 민주사회’가 강조됐다. 제4조에서는 통일 정책의 전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꿨다.”(조선일보. 1월 2일).

    이 정도가 아니다. 경제 조항에서는 노동자‧노조의 권리, 이를 위한 기업의 의무 등을 개정하거나 신설해서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헌법을 국가의 기본법이 아니라 노동자 및 노동조합 권리장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태도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대한 야당의 반발을 ‘발목잡기’라며 자문위를 엄호하고 나섰다. 여당, 나아가 정권의 뜻도 다르지 않다는 말이겠다.

    대한민국 정체성 기필코 지켜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라는 기본틀이 벗겨져 버리면 우리의 정치체제는 지난 70년간 경험해 온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평등민주주의‧계획경제체제’로 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문재인 정권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진보좌파의 이념적 특징 가운데 또 하나는 ‘이승만에 의해 성립된 대한민국’의 부정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일이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년 4월 13일이고 48년 8월 15일은 단지 정부수립일 뿐이라고 한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을 유력한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한다.

    미안하게도 이 표현은 87년의 제9차 개정 헌법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48년 제헌 헌법 이래 7차 개정헌법까지는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로, 8차 개정헌법에서는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로 돼 있다. 9차 개정헌법 이전에는 어디에도 ‘법통’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19년에 건국한 것이 맞다면 정부 또한 그 때 수립된 임정이 계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48년에 새로이 수립될 까닭이 없었다. 19년 건국설은 48년 9월 9일에 건국했다는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로 확고부동하게 규정하는 셈이 되는데 진보좌파도 이 사실은 인정한다는 뜻인가.

    정부가 혹시라도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포기까지 염두에 두고 북한과 사이에 연방제 통일의 접점을 찾으려 한다면 이야말로 반역행위가 된다. 아무리 당당한 ‘적폐청산 정부’이지만 국기를 허물면서까지 북한과의 접근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9일 열리는 ‘남북고위급 회담’은 다만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만을 의제로 해야 옳다. (북한의 핵 포기를 요구할 수 있다면야 누가 말리겠는가.) 혹시라도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민족끼리’ 통일의 새시대를 열겠다는 열망(?)을 과시하는 회담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는 순간 우리는 호랑이의 등에 타는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할 일이다. 그 등이 북한의 것이든, 중국의 것이든! (미국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지는 마시라. 해방 이래 지금까지 의지해 왔지만 그게 호랑이의 등이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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