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오작교 ‘평창올림픽’…정치史 중심에 우뚝 선 스포츠

조현의 기자

입력 2018.01.07 05:00  수정 2018.01.07 07:04

북한, 평창 매개 23개월 만에 대화의 場으로

월드컵 4강 신화로 대권주자 발돋음 정치인도

DJ, 민심 다독이는데 국가대표 활약 적절활용

“이번만큼은 마음이 따뜻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탄생하길 기도한다.”

격투기 스타 정찬성이 지난해 2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UFC 복귀전을 마치고 외친 말이다. 그는 당시 인터뷰를 정리하려는 사회자의 마이크를 빼앗다시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나라가 혼란에 빠진 시기에 정찬성은 팬들로부터 ‘개념 선수’라는 칭찬을 받았다.

스포츠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달리 종종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됐다. 국내에서도 스포츠를 통해 정계에 입문하거나 국가 갈등을 해결한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23개월만에 남북회담이 성사된 가운데 그 매개는 평창올림픽, 스포츠였다. 물론 1972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하계올림픽에선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일명 검은 9월 사건. 팔레스타인의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이 11명의 이스라엘 올림픽팀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테러 진압 미비로 인해 대표팀 전원이 살해됐다. 이처럼 스포츠는 정치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몽준과 2002년 한일 월드컵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자료사진)ⓒ데일리안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4강 신화를 만들자,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그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월드컵 한국조직위원장이었던 정 이사장의 평균 지지율은 31.4%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20.7%)를 훌쩍 웃돌았다. 정 이사장은 노 후보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에 합의했다. 월드컵이 대선 정국의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전두환과 한국프로야구(KBO) 출범

전두환 전 대통령 (자료사진)ⓒ데일리안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1982년 한국프로야구(KBO)를 출범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81년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프로 스포츠 출범을 지시했다.

KBO는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려 정권의 정통성 시비를 무마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로 탄생했다는 분석과 함께, 프로 스포츠 정착을 통한 여가를 풍성하게 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김대중과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김대중 전 대통령 (자료사진)ⓒ데일리안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이 최대 과제였다. 1998년 우리나라가 방콕아시안게임에서 2위를 차지하자, 김 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던 국민에게 위안이 됐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당시 아시안게임 참가 선수단과의 오찬 자리에서 “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금융위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보여줬다. 여러분은 국가의 위신을 세우고 국민에게 용기를 줬다”고 강조했다

김영삼과 한·미 정상 조깅 회담

김영삼 전 대통령 (자료사진)ⓒ데일리안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매일 아침 조깅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7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경내 2.9㎞를 나란히 달려 화제가 됐다.

이어 그해 11월 미국을 찾았을 때 역시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뛰었다. YS는 한·미 정상 조깅 회담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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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의 기자 (honeyc@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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