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부실공사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60년대 초 현재 모습의 아파트가 처음 지어진 이후 지금까지 늘 업계 과업으로 남아 있다. 그간 부실공사를 막기 위한 여러 제도 개선이 이뤄져 왔지만, 여전히 보다 선진화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에 정부와 업계 모두 공감하고 있다.
우선 최근 경기도 화성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하자문제가 대거 촉발되면서 가장 뜨겁게 거론되는 방안이 '후분양제' 도입이다. 후분양제는 공정률 80% 이상이거나 말 그대로 집을 다 지은 후에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현재의 '선분양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들은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부동산 투기, 가계 부채 급증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후분양제 의무화를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국회에서도 선분양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후분양제 도입 관련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공감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영 의원(국민의당)은 20대 국회 들어 지난 3월 주택법 개정안을 통해 후분양제 법안을 발의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공사 등 공공기관, 재벌 건설사의 후분양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중인 상태다.
같은 위원회 소속 이원욱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최근 들어 공동주택 부실시공 근절을 위해 선분양제 제도 개선을 위한 의원 입법을 준비 중이다. 이 의원은 "부실하게 시공한 건설사에 벌점을 주고 영업정지 처분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건설사는 선분양제를 규제하는 등 입주자 피해를 막기 위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간 후분양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정부도 문재인 정부 들어 일정 부분 태도가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 반대로 후분양제 도입이 쉽지 않았지만 현 정부 들어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후분양제 도입 건설사에 인센티브 제공 등의 단서 조항을 다는 등 선분양제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지난 3월 후분양제 도입 등을 포함한 '주택시장 발전방향'에 대한 연구용역을 착수해 현재 완료를 앞두고 최종 검수 작업을 진행중에 있다. 현재 주택시장에서 선분양제와 후분양제의 장단점의 분석한 내용으로 향후 정부와 국회에서 후분양제 도입시 판단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최근 총리실 산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도 후분양제 대한 연구 과제를 제안한 상태로 향후 수시과제로 진행할 계획이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장은 "큰 틀에서 보면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부실시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후분양을 도입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선분양제 구조 하에서 건설사들이 주택건설자금의 50~70%를 소비자들의 계약금 및 중도금 등으로 충당해 공사를 진행하는데, 강제적인 후분양제 도입으로 이를 차단하면 주택공급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규주택 공급량의 약 60%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건설업체는 신용도가 낮아 높은 금리부담과 위험 증가로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면서 "결국 소비자의 주택선택권 축소와 부담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바꿔 보면, 현행 건설사들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금융 지원만 보장된다면 후분양제로 전환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건설자금 조달방식의 개편과 허가에서 착공, 준공에 이르는 주택공급과정의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평가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후분양제 전면적 도입이 아니라면, 부실시공으로 문제를 일으킨 건설사에 대해 선분양을 제한하는 방안 논의도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는 현행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명시된 선분양을 제한하는 규정에 벌점제도를 연계해 제재의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현안보고에서 "부실시공에 대해 부과하는 벌점을 선분양 제한에 적용한다면 부실시공을 방지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제도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문제는 앞으로 후분양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하더라도 그 사이 지어지는 아파트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이에 시급한 과제로 감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꼽힌다. 현재 감리자 선정은 지자체가 하고 있지만, 비용은 사업주체가 지급하다 보니 감리자는 부실을 알고도 관계 유지를 위해 묵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장은 "지자체가 감리업체를 선정해도, 계약을 하고 감리 비용을 지불하는 주체는 결국 시행사(시공사)이다 보니 사업주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면서 "애초에 감리비를 제3기관에 예치해 놓아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시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최근 경기 화성시 내 신규 입주 단지에서 아파트 하자문제가 불거지면서 특별점검을 벌이고 있다.ⓒ경기도청
또한 지자체의 감리자 관리감독도 개선돼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지난 2014년 부터 감리자가 감리업무 착수 전에 사업계획승인권자(지자체)에게 감리계획서(공종별 감리일정 포함 등)를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현장 실태점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 인력 및 전문성 부족 등으로 관리감독 실효성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현재 부실시공으로 인한 아파트 하자문제 등에 대한 처벌 규제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과 주택법은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과 최고 영업정지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최고 수위 처분인 영업정지까지 내리는 전례를 찾기 어렵고, 대부분 벌금이나 관계자 형사처벌 등에 그치는 실정이다.
또한 건설기술진흥법에서도 콘크리트균열 발생, 공정표 검토 소홀 등의 사유로 시공사와 감리자에 부실벌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벌점제는 입찰 시 평가항목에 반영되는 수준에 그쳐 건설사의 불이익이 크지 않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건설업계는 부실시공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애초에 하도급 문제가 개선돼야 하고, 이를 위해 저가입찰 중심의 공공과 민간의 공사수주 방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공사대금이 현실화돼야 부실공사를 양산하는 불법 하도급이 근절될 것"이라며 "건설현장의 상황을 반영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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