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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희생 없는 '비문연대', 얼마나 탄력 받겠는가?


입력 2017.05.02 06:30 수정 2017.05.02 09:03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김종인 깔아놓은 멍석에 누가 올라와 춤판을 벌일까

'빈 배'에 본인이 올라타는 바람에 배는 가라앉았다

지난 2016년 3월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정치인생을 담은 '김종필 증언록' 출판 기념회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다.(자료사진)ⓒ데일리안 지난 2016년 3월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정치인생을 담은 '김종필 증언록' 출판 기념회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다.(자료사진)ⓒ데일리안


대선전이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통합정부론’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공동정부론’이 명분 대결을 벌이고 있다. ‘통합’과 ‘공동’이 모두 세 규합을 겨냥하고 있는 점에선 공통적이지만 전자는 판세를 굳히려는, 후자는 뒤집으려는 의도를 각각 지니고 있다. 통합정부론이 지지를 받으면 문 후보는 당선 안정권에 들겠지만, 공동정부론에 힘이 실리면 판세를 뒤흔드는 합종연횡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안 후보의 제의에 따라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지난 달 30일 개혁공동정부 준비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김 위원장은 “개혁공동정부는 모든 반패권세력을 포괄해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핵심 목표는 안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등과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공동정부라는 결과물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대선 승리’와 ‘집권’이라는 원인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후보 단일화가 필수적이다. 후보는 그대로 두고 주변 인물들이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해본들 변죽만 울릴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 위원장이 짊어진 ‘공동정부’ 과제는 기존에 본인이 주장해온 ‘비문(문재인) 연대’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일단 멍석은 깔아놓았는데 과연 누가 신발 벗고 올라와 춤판을 벌일지는 미지수다. 홍 후보는 안 후보 추월을 넘어 문 후보와 1대1 구도를 자신하고 있고, 유 후보는 결연한 의지로 완주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는 홍 후보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후보단일화 대상에 홍 후보가 포함되는지 여부를 놓고 안 후보와 김 위원장이 알력을 보였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 셈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공동정부론 취지에 공감해 안 후보 지지선언에 나설 수는 있겠지만 홍·유 후보의 동참 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에 가깝다. 김 위원장은 개점휴업 상태에서 파리만 날릴 공산이 높다.

이런 국면에서 김 위원장의 위상은 역대 선거에서 쌓은 그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최악이다. 그는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아 1순위 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당선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지난 해 20대 총선때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요청으로 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 민주당을 원내 1당으로 올려놓는 등 총선 승리를 일궈냈다. 그러나 이번 대선 정국에선 장고 끝에 악수를 거듭하며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추락시키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3월8일 “이 당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라면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한 달 가까이 침묵을 지키다가 지난 4월5일 "통합정부로 위기를 돌파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면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1주일 뒤인 4월 12일에는 “통합정부를 구성해 목전에 다가온 국가 위기를 극복해보겠다는 대선 후보로서의 제 노력은 오늘로 멈추겠다”면서 출마포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4월30일까지 18일간 정치 활동이 거의 없었다.

‘비문연대’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다. 당시 문재인 후보에 맞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 사이에서 나돌던 화두였다. 당시는 당내 인사들 간의 연대 문제였기 때문에 정체성이 문제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비문연대는 이념과 지향점이 다른 공당의 후보들 간 단일화를 겨냥하고 있다. 각 당과 후보들 사이에 정체성의 이질감이 크면 클수록 이를 상쇄하고 융합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대의명분이 더욱 절실하다.

비문연대. 문재인이란 특정 정치인에 맞서기 위해 다수 후보들이 연대한다는 것은 모양새도 안 좋고 명분도 떨어진다. 안 후보도 한때 자강론을 내세우며 비문연대를 멀리했던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약점을 감추기 위해 ‘반패권연대’, ‘개헌연대’ 등 고상하고 거창한 개념들이 만들어졌으나 여전히 결실을 맺지 못했다. 포장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내용물에 대해 웬만하면 다 알고 있으니 후보들 이해타산을 압도할 만한 구심력은 작동되지 않았다. 오히려 문 후보에게 ‘적폐연대’란 공격의 빌미만 제공했다.

되돌아보면, 비문연대의 성공을 위해 길을 나선 김 위원장의 행보는 민주당 탈당까지는 좋았다.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탈당은 곧 의원직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주위에 ‘의원직까지 내던지면서 도모하려는 거사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한 달 뒤에 내놓은 비장의 카드는 고작 본인의 대선 출마였다.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처럼 ‘빈 배’를 띄워야 후보 단일화와 '킹 메이커'의 길이 열렸을 텐데, 본인이 올라타는 바람에 모든 가능성과 함께 배는 가라앉고 말았다. 정국 상황과 민심의 주소를 완전히 오판한 악수였다. 그러니 1주일만에 출마포기 선언이 나온 것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공동정부’라는 은박지로 비문연대를 감싼다고 해도 광(光)이 날 리가 만무하다. 김 위원장 본인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진 데다, 연대 자체의 가치와 명분을 끌어올릴 만한 불쏘시개가 거의 없다.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할 여지가 남아 있을 때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한 차원 높은 목표 달성을 위한 동력으로 사용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정치적 자산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비문연대의 추진력을 만들어낼 밑천이 없는 셈이다. 앞으로 깜깜이 1주일은 후보단일화나 합종연횡 같은 중대변수 없이 각 후보들이 아전인수격으로 주장하는 추세 싸움으로 흘러갈 공산이 높다.

정치는 대의명분이 중요하다. 일종의 포장술이다. 설혹 같은 내용물도 포장에 따라 성패의 가능성이 달라진다. 없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 제단을 쌓고 정성이 담긴 제물을 바쳐야 한다. 외부에서 희생양을 구할 수 없으면 자신의 허벅지 살이라도 베어야 한다. 명분을 소홀히 하는 경향 때문에 정치인 자신을 위한 정치가 일상화하고 작금의 선거판에선 막말과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하고 있다. 대선을 계기로 정치의 품격을 복원해야할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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