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관없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7.03.05 06:30  수정 2017.03.05 07:32

<칼럼> 여의도, 이미‘문재인 대통령’, 샴페인 곳곳 터져

탄핵주도하며 대세론까지 생겼지만 비토 정서도 만만찮아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제19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이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얼마 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의 대통령선거(대선) 당선을 전제로 한 조각(組閣) 명단이 SNS를 후끈하게 달궜다. 실세로 분류되는 측근들이 대거 포진한 명단은 그럴듯해 보였다. 일부 인사들에 대해서는 조각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로 이런저런 비위사실까지 적시되어 있었다.

논란이 되자 문 전 대표 캠프 관계자는 최초 유포자를 고발하겠다고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여의도엔 이미 ‘문재인 대통령’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 이전에도 문 전 대표는 일부 방송 출연을 ‘보이콧’하다가 여야 대선주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곳곳에서 샴페인을 먼저 터뜨리고 있으며, ‘선거운동안하기 운동’을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 이른 샴페인 축제와 선거운동안하기 운동은 비단 문 전 대표만은 아니다. 여유 있게 앞서 있는 후보 진영이 간혹 사용하는 얕은 술수다. 지난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에게 큰 폭의 리드로 앞서 나갔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언론과 숨바꼭질이 다반사로 일어날 정도로 외부 노출을 피했다. 이미 다 이긴 선거이니 실수를 최대한 줄이자는 셈법이었다. 지난 2007년 대선도 그랬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선거에 돌입하기 이전부터 승리한 상태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측근들은 선거운동보다 당선 이후 인수위 구성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였다.

탄핵 민심 이면에 ‘문재인만 아니라면...’

문 전 대표가 이토록 자신만만한 데는 여론조사가 있다. 지난 1일 데일리안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전 대표는 37.6%를 기록해 압도적 1위다. 지난 3일 발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서도 34.0%로 2위보다 두 배 이상을 얻었다. 데일리안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대선주자 지지율 합계는 17.9%에 그쳤지만 범야권은 75.1%에 달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범야권 지지율 합계는 66.0%, 범여권은 9.0%에 불과했다. 여론조사로만 보면 문 전 대표는 당내 경선이 곧 본선일 수 있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문 전 대표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밀어내고 1위에 오른 것은 탄핵정국 조성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정, 약속, 신뢰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당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 안보, 민생 등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 몰표+진보 총망라+영남 개혁세력’이라는 야권 승리방정식을 만들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준비된 국정 능력을 입증한 끝에 당선됐다. 역대 대통령은 저마다 자신만의 정치적 자산으로 승리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문 전 대표의 정치적 자산은 오로지 ‘탄핵 주도권’이다. 박 대통령 국정실패의 반사효과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문 전 대표의 힘이 아닌 박 대통령의 실패 탓이 1위가 된 것이다.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은 그래서 불안하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닌 “남이 잘 못해서” 1위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25.0%~35.0% 전후를 오르내리며 박스 권에 갇혀 있다. 지난해 연말을 기점으로 이재명 성남시장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비록 한 달 천하였지만 문 전 대표와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시장이 가라앉자 이제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부상했다. 반 전총장의 불출마로 인한 충청권의 지지와 중도 및 보수층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 지사도 정체 내지 하락세로 접어들었지만 당내 경선에서 여전히 문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촛불 이후 ‘대통령의 자격’ 입증해야,

문 전대표의 지지율은 그대로인데 이 시장, 안 지사 등이 연이어 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탄핵민심 이면에는 “문재인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여론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 포착되고 있지 않지만 문 전 대표에 대한 거부 정서는 생각보다 널리 퍼져 있다. 문 전 대표가 설사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안 지사, 이 시장 등의 지지율이 그대로 옮겨갈지는 미지수다.

오는 10일 또는 13일로 예상되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이후가 문 전 대표에게는 본격적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이제 촛불이 사라지고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국민은 문 전 대표에게 물을 것이다. 문 전 대표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무엇이며, 어떻게 그를 실현할 것인지…. 과연 문 전 대표는 이에 대한 답변 준비가 충분하게 되어 있을까. 지금까지 문 전 대표의 행태로 보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국민은 문 전 대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노 전 대통령을 연상한다. 아직 문 전 대표만의 정치적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대규모 특보단을 발족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문 전 대표는 촛불 이후 스스로 ‘대한민국 대통령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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