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 책임 떠넘기기식 '한국판 양적완화'"

배근미 기자

입력 2016.05.10 14:46  수정 2016.05.10 18:11

경실련 "정부, 중요한 논의 미루고 '양적완화'에만 집중...책임 전가"

"구조조정 책임 금융위-산은 대신 국회·이해당사자 중심 협의체 구성돼야"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판 양적완화’가 한은의 발권력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0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학계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제시한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안을 발표했다. ⓒ경실련

“해운과 조선업의 구조조정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신호가 있어왔고, 그중에서도 대형 조선사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약 2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갑자기 해운·조선업을 언급하며 마치 백지수표를 주듯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든 것은 엄연한 책임 회피라고 봅니다.” (서울대 박상인 교수)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판 양적완화’가 한은의 발권력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0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학계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제시한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안을 발표했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국가재정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국회 동의 등을 거쳐야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그런데 현재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한국은행을 동원해 가장 간편하면서도 위험한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특히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이로 인한 대량해고나 구조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더욱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결국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은 시장을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 이에 대한 책임을 국민과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날 경실련이 발표한 기업 구조조정 원칙은 크게 5가지다. 우선 기업 경영실패의 책임과 비용은 부실책임이 큰 지배주주, 주주, 채권자 순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과 공적자금의 최후에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 또 정부의 역할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실업에 대한 대책 마련과 지역경제 안정화를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서울대 박상인 교수는 “조선·해운업종 뿐 아니라 앞으로 철강산업 등 다양한 산업들이 위기에 몰릴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식으로 원칙없이 정부가 나서 자금 지원을 하게 된다면 자칫 또 한 차례 외환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며 “아울러 이같은 국민 혈세 투입이 기업과 국가경제 내적으로는 경영진이나 대주주들, 더 나아가 국책은행들의 도덕적 해이까지도 악화시키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참석자들은 조선-해운업 부실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이 구조조정 추진에서 배제되어야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다수의 관피아를 형성하고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을 가중시킨 금융당국과 국책은행 주도로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대신 국회와 노동자,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포함된 독립된 논의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 협의를 구하고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이번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해고와 실업에 관한 지원책 역시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구조조정 자금 지원과 관련한 한시법인 기촉법의 폐지와 그에 따른 대안으로 파산법의 활성화 등이 또다른 대안으로 제시됐다.

경실련 금융개혁위원장 정미화 변호사는 "현 상황에서 구조조정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책은행, 부실기업 간에 이어지는 산업구조 시스템 상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라며 "마취제는 수술할 때만 조금씩 필요한 것이지 평상시에도 계속 사용하면 더욱 위험해진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판 양적완화'가 일종의 마취제인 셈"이라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배근미 기자 (athena3507@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