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남이 먼저였던 '남 바보' 소방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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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보다 남이 먼저였던 '남 바보' 소방관의 추억
    <의사자, 그 이름을 기억합시다⑤-박재석 소방교>남 위하는 희생정신 빛 발해 소방관 처우·예우개선 계기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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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5-12-20 10:25
    박진여 기자(parkjinyeo@dailian.co.kr)
    ▲ 박재석 소방사는 지난 1996년 3월 13일 경기도 용인시 신갈동의 한 아파트 지하탱크 가스사고 현장에서 순직했다. 온라인 순직소방관추모관 캡처

    시민단체인 ‘공익희생자지원센터’가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합니다’(푸른사람들)라는 제하의 공익희생자를 기리는 ‘휴먼북’을 지난달 24일 발간했다. 경찰 및 소방공무원, 의사자 등 안전한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다시 기억하자는 취지다. ‘공익희생자지원센터’는 공익희생자들이 상당수 임에도 불구, 국가차원의 선양사업이 미흡해 ‘휴먼북’을 발간했다. ‘데일리안’은 ‘공익희생자지원센터’가 펴낸 ‘휴먼북’을 토대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한 이들을 재조명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그 다섯 번째 순서로 1996년 3월 순직한 박재석 소방교의 발자취를 더듬어봤다.< 편집자 주 >

    1996년 3월 13일. 경기도 용인시 신갈동의 한 아파트 지하탱크를 가득 메운 유해가스 속으로 박재석 소방교가 뛰어 들어갔다. 땅이 보이지 않는 지하탱크로 진입하며 그가 의존한 것은 30분짜리 비치용 산소호흡기 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요구조자를 위해 포기, 그는 맨몸으로 요구조자를 들쳐 업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맨홀 뚜껑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요구조자를 구출한 뒤 곧바로 쓰러진 박 소방교의 얼굴과 몸 곳곳에는 이미 보랏빛 반점이 피어오른 뒤였다. 그는 끝내 유해가스에 의한 질식으로 숨졌다.

    박 소방교는 1992년 소방관으로 처음 임용된 뒤 경기 용인소방서에 자리를 잡았다. 사고 당시 소방경력 4년차였던 그는 보통 근무경력이 3년 이상이면 관리직으로 전환됨에도 굳이 현장에 앞장서 “나는 직접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게 제일 적성이야”라며 실전형 소방관을 자처했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동료들은 그에게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을 가진‘홍익인간’을 별명으로 붙이기도 했다.

    박 소방교의 ‘남다른’ 희생정신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평생 소방관을 업으로 삼았다. 생전 박 소방교는 “아버지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라며 아버지의 희생정신을 새겨 행동으로 실천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4년차 경력에도 모범표창이나 공로상을 받으며 지역에서 꽤 유명한 소방대원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사고 당시에도 박 소방교는 장비라고는 먼지 앉은 30분짜리 비치용 공기호흡기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체하지 않고 맨홀 안으로 자진해 뛰어들었다. 당시 소방대원들이 사용하는 공기호흡기 등은 모두 공용이거나 개수도 적어 먼저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팀이 장비를 챙겨가면 다음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팀은 여분의 장비가 없었다. 때문에 실전에 쓰이지 않는 비치용 장비에 의존한 채 출동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박 소방교는 하나 남은 30분짜리 공기호흡기를 착용하고 지하탱크에 들어가 자신의 호흡을 계산하며 요구조자에게 호흡기를 양보, 그렇게 본인은 어떤 보호 장비도 없이 유해가스에 질식해 끝내 숨졌다.

    이 사건으로 각 소방서의 열악한 환경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박 소방교의 순직과 직접 연관된 방독 장비의 양적·질적 부족함이 문제시되면서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국 121개 소방서에 근무하는 대원들 1만 6000명 전원에게 공기호흡기를 지급하라는 특명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 기존의 30분짜리 산소마스크가 현재의 1시간짜리 신형으로 교체됐다.

    이외에도 소방관의 처우나 예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곳곳에서 일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인제 의원은 박 소방교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5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해 경기 소방학교 내 추모공원을 조성, 박 소방교의 마지막 구조 활동을 묘사한 동상을 세웠다. 이후 이곳은 경기소방충혼탑이 건립돼 해당 지역 소속 순직 소방관들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공원으로 거듭났다.

    휴먼북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합니다’에서 박재석 소방교의 이야기를 쓴 김혜정(고려대 경제학과) 씨는 “당시 박재석 소방교의 순직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나 2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남을 위해 이렇게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는지 의문을 가졌다”며 사건이 있을 때만 반짝 영웅이 된 공익희생자들의 이름이 덧없이 잊혀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데일리안 = 박진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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