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소사이어티 칼럼>조선왕조 500년이야말로 우리가 탈출했던 ‘과거의 지옥’
땀 흘리며 운동하는 외국인에게 고종황제가 말했다. “그렇게 힘든 일을 왜 신하들 시키지 않고 직접하느냐”고. 조선말기 최고 존엄의 수준이다. 시대상황을 고려해 운동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랬을 거라고 이해해야 할까. 아니다.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한심하다. 전 세계가 문호를 개방해 앞으로 나아갈 때, 문 걸어 잠그고 힘든 운동은 신하들 시키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나라는 유감스럽지만 망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극 속 조선은 착하고 화려하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한복, 지적인 선비, 어진 임금과 그를 존경하는 백성 등 완벽하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한글, 오백 년 역사의 기록까지 더해지니 우리의 자부심은 한층 높아진다. 이런 생각이 모아져, 능력은 충만한데 착하기까지 해 타국의 시기질투를 받았던 조선은 늘 당하기만 했고, 결국 나쁜 일본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일본이 나빴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이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한 착한 나라였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남 탓하기 전에 조선의 실상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아프고 불편하겠지만 자화자찬만 늘어놓는 역사보단 객관적인 역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모두 다 가난한 나라, 헬 조선왕조
조선시대 사람들은 거의 다 가난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최대치로 잡아도 전 국민의 80퍼센트 정도가 점심 또는 하루 한 끼를 일상적으로 걸렀다고 한다. 상인계층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의 경제생활을 영위했을 뿐 절대 부자는 없었다.
“사회의 상류층(사대부) 인사들마저도 끼니를 건너뛰고, 종이가 없어 책을 쓰지 못하고, 여차하면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리거나 꾸면서 살아야 하는 나라.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중에서-
지배계급이 이 정도인데, 일반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조선의 지배층은 성리학적 관념에 사로잡혀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만을 강조했다. 중국과 일본에서 경제적인 풍요와 선진 문물을 보았음에도 애써 무시했고, 변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라꼴은 엉망이고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모두 다 가난했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다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신분 차별이 엄격했다. 양반과 노비,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것은 물론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해서 선비, 농민, 물건을 만드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순으로 차별했다. 나라의 부를 좌우할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천대했다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1904년 청계천 풍경. 인터넷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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