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휴전 사흘 전인 1953년 7월 24일.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입대한 남한군 남복(설경구)은 전쟁의 운명을 가를 일급 비밀문서를 정해진 장소와 정해진 시간에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죽더라도 임무를 완수하고 죽어야 한다"는 명령과 고향에 두고 온 착한 아내, 갓난아기가 남복의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나 임무 수행 중 적의 습격으로 동료들뿐만 아니라 목숨이 달린 비밀문서까지 모두 잃는다.
북한군 탱크병 영광(여진구) 역시 갑자기 군인이 됐다. 열여덟, 평범한 학생에서 탱크 부대 막내가 된 그는 전쟁으로 형제들을 잃고 북에 홀로 있는 어머니와 연인 옥분이가 그립다.
영광은 남으로 진군하던 도중 무스탕기의 폭격으로 사수를 잃고 혼자 남는다. 이리저리 헤매던 찰나, 우연히 남북 비밀문서를 손에 쥐게 되고, '탱크를 버리면 총살'이라는 상관의 말을 떠올리며 탱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남한의 남복과 북한의 영광은 그렇게 서부전선에서 맞닥뜨린다. 두 사람은 남과 북, 서로 다른 방향을 보지만 최종 목표는 같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 남복과 영광은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부전선'은 농사짓다 끌려온 남한군 남복과 북한 탱크 부대 막내 영광이 전쟁의 운명이 달린 비밀문서를 두고 대결을 벌이는 내용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영화는 끔찍한 전쟁의 과정보다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가고 싶어하는 남복과 영광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전쟁 영화 특유의 무겁고, 잔인한 부분을 줄였고 남복과 영광이 비밀문서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경쾌하게 풀어내 관객들의 웃음을 자극한다.
서로에게 총을 겨누던 두 사람이 차츰 가까워지는 장면은 뻔하지만 뭉클하게 다가온다. 두 사람을 엮어 주는 건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다. 가족과 다시 만나기 위해 살아남아야만 하는 사연은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자아낸다.
설경구 여진구 주연의 영화 '서부전선'.ⓒ롯데엔터테인먼트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때문에 "집에 가자", "살아야 한다" 같은 평범한 대사와 "우리가 알고 목숨 걸었냐?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대사가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냇가에서 장난치며 놀던 남복과 영광이 날이 어둡자 반딧불이 빛이 나는 길을 같이 거니는 장면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여운을 준다. 두 사람이 헤어지기 직전 탱크를 배경으로 담배를 피우며 미소를 짓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웃는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 모습인 듯 자연스럽다.
코믹으로 흐르던 영화는 극 후반부에 이르러 갑자기 눈물과 감동이 뒤섞이는 전개를 보여준다.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지만 설경구 여진구 두 배우 덕분에 비교적 매끄럽게 표현된다. 어쨌든 코믹, 눈물, 감동이 버무려져 추석을 겨냥한 가족 영화로 안성맞춤이다.
무려 29살 나이 차가 나는 설경구와 여진구의 연기 호흡엔 엄지가 올라간다. 영화 출연을 결정하기 전 "상대 역으로 여진구를 캐스팅해달라"는 조건을 내건 설경구는 "여진구는 그간 함께했던 여배우 중 최고 여배우"라고 여진구를 치켜세웠다.
설경구는 말이 필요 없는 연기력으로 후배 여진구를 이끌었고, 여진구는 나이보다 성숙한 연기력으로 설경구를 믿고 따라갔다. 순진무구한 여진구가 눈물을 글썽거릴 땐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온다. 설경구의 말마따나 순박하고 순수한 영광 역은 여진구 외엔 떠오르는 배우가 없다.
'7급 공무원'(2009), '추노'(2010),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의 각본을 쓴 천성일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천 감독은 "대부분의 전쟁 영화에는 전쟁을 지배하는 영웅들이 있는데 '서부전선'에는 영웅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마음에 남는 영화"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이어 "전쟁은 미시적으로는 비극인데 거시적으로는 코미디라고 생각한다"며 "전쟁에 대한 미시적, 거시석 관점을 담으려고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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