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 분노의 질주...더 적극적으로 멍때리고 싶다

최종편집시간 : 2017년 08월 20일 21:32:35
매드맥스, 분노의 질주...더 적극적으로 멍때리고 싶다
<김헌식의 문화 꼬기>뇌를 쉬고 싶게 만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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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22 10:16
김헌식 문화평론가(codessss@hanmail.net)
▲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과학적으로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멍 때리기는 뇌가 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멍 때리지 말라는 말은 더 이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냥 멍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하면서 멍을 때리는 문화콘텐츠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무엇을 보거나 그리면서 멍을 때리는 것이다. 멍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멍을 때리는 것은 또 하나의 몰입 현상이다. 인위적으로 멍을 때리려 노력을 하면, 오히려 산만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한 대상이나 주제에 대해서 몰입을 할수록 오히려 뇌는 쉬게 된다. 뇌가 피곤한 이유가운데 하나는 익숙하지 않거나 많은 일들을 동시에 처리해야 할 때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익숙하고 무난히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나 단순한 과제를 만날 때는 뇌가 오히려 즐거워질 수 있다. 색칠 관련 책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이러한 현상 때문이었다. 색을 칠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빠져 있다 보면, 다른 잡 생각이나 심리적 불안감, 부담감이 덜해지고 스스로 이뤄낸 성과에 나름 성취감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영화에서도 곧잘 관찰된다. 오락영화가 각광받게 된 이유는 바로 멍을 때리기 위해서이다. 영화관을 가는 목적은 이제 제법 뚜렷해졌다. 단지 즐겁고 재밌는 영화를 보겠다는 의지보다는 멍을 때리기 위해서 극장에 간다. 예컨대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는 주인공들이 쉴 새 없이 자동차를 타고 액션을 선보인다.

수시로 바뀌는 자동차들은 상황에 맞게 멋진 자동차 액션을 통해 짜릿한 쾌감을 준다. 영화 전체는 대사나 스토리의 치밀성보다는 복수와 재복수의 단순한 구도 속에서 시각적 자극이 충만한 장면의 구성에 치중한다. 즉, 관객들은 정신없이 두 시간 여 동안 종횡무진 공간을 누비는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는 후련해 한다. 영화 ‘매드 맥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자동차 추격 씬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된다.

다양한 자동차보다는 주인공을 쫓는 악당과의 전투가 연이어 이어지면서 추격 자체에 몰입하게 만든다. 쫓고 쫓기는 자의 공방 속에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상황은 의외의 색다른 설정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이어 펼쳐진다. 꿈을 찾아 악당의 손을 벗어나려는 주인공과 그것을 저지시키려는 악당이라는 매우 단순한 구도이지만, 관객들은 쉽게 몰입하고 그 속에서 멍을 때리게 되는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의 경우에도 그 경향성은 쉽게 인지될 수 있다. 이런 영웅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액션의 강화에서 볼 수가 있다. 그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서 액션을 통한 몰입, 즉 멍 때리기를 유도할 수 있다. 한 두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명의 캐릭터가 등장할 수록 화려하거나 현란한 장면들이 자주 배치될 수 있는 명분과 실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에 이런 영화 유형은 배경이나 공간을 매개로 어떤 감성을 자극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지점에 있는 것이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가운데 아무것도 기억하거나 담아두려는 것이 아닌 셈이다. 그냥 그 자체로 몰입하고 모든 것을 오히려 내려놓으며 탈출하려고 노력하는 셈이다. 어벤져스를 통해 무엇인가 기억으로 마음에 축적을 남기려는 시도는 그렇기 때문에 무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서울의 관광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았다.

이제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구분은 이런 멍 때리는 영화를 통해서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상업영화라해도 멍을 때릴 정도로 몰입을 시키지 못하면 크게 선호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상황을 벗어나 잠시 뇌를 쉬는 문화콘텐츠이다. 그만큼 우리 현대인들의 뇌는 피곤에 찌들어 있다. 쉼 없이 뇌를 써야하는 생활인들에게 다시 뇌를 고도로 활용해야 하는 영화는 피로감만을 주는 것이다.

오히려 평소에 뇌를 쓰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뇌를 많이 쓰는 영화를 선호할지 모른다. 그러나 뇌를 많이 쓰는 영화가 나쁘다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영화는 매우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맞는 관객들을 찾아가는 방식을 따로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뇌를 쓰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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