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금융위원장이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과 금융 컨퍼런스'에서 발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화두로 던지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회의론도 함께 제기됐다. 현재 세계적인 경기 침체 여파로 국내 경제가 바닥으로 떨어져 활력을 잃은 가운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통일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독일 통일이 빨리 올줄 몰랐다"면서 시기적인 예측이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반도 정세도 마찬가지다. 동북아의 정세는 예전과 다르게 국제적인 역학관계가 복잡해졌다. 수 십년간 급속 성장한 중국은 세력을 확대하고 있고 일본의 지역패권주의는 주변국과 마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상황이 어려워 국제 정치 무대에서 고전하고 있다.
이에 앞으로 변화하는 국제정세가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사항이다. 예상치 못한 국제정세 변화에 얼마나 잘 대처하고 올바른 결정을 하느냐에 21세기 한반도의 운명이 달려 있다.
박 대통령도 대외변수에 따라 통일 시기가 빨리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현명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최근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두차례의 전체 회의, 분과 위원회별 세차례 공개세미나를 통해 국민과 통일준비를 소통했다.
경제분과 세미나에서는 우리경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통일대박이 가능한지에 대한 전망은 서로 달랐다.
하지만 통일독일의 10년을 살펴보면 통일대박이 충분히 실현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통독 후 기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주가 지표(독일 Dax 30지수)를 살펴본 결과, 통일대박을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직후인 1991년부터 10년간 ‘임금과 생산성 단위임금비용의 변화’를 살펴보면 통일에 소요되는 자금이 초기 5년동안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5년간 재원이 집중투자되면서 이자율이 올라가고 스탁 인덱스(Stock Index)의 흐름이 제자리 걸음을 햇지만 10년 후 정상으로 돌아오며 오히려 기업 가치가 다섯 배 이상 껑충 뛰었다.
다만, 독일 사례에서 보듯 5년간 금융시장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통일 이후 남북 경제 통합을 위한 ‘금융 청사진’을 공개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과 금융’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반도 통일과 금융의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신 위원장은 “통일은 한국경제가 한강의 기적과 같은 경제 재도약의 유일무이한 기회”라며 “한반도에 인구 8000만의 경제권이 형성되고 자원과 기술력이 만나 시너지를 내고, 군사적 비용의 축소로 인한 경제확대도 막대할 것”이라고 ‘통일대박론’을 강조했다.
우선 금융당국이 제시한 큰 그림은 우리나라의 1960~70년대의 성장모델을 북한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1200달러로 추정되는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20년 내로 한국의 절반인 1만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통일 후 금융정책을 통해 남북한 간 경제력 격차를 좁히는 일이 시급하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금융당국은 북한 경제를 재건하는 데 5000억달러(약 550조원)가량의 ‘통일 금융비용’이 필요 것으로 추산하고, 이 중 2500억달러 이상을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순수한 ‘통일비용’이 아닌 ‘재건비용’으로 북한에 투입되는 자금을 의미한다.
북한 재건비용 어떻게? "증세 아닌 정책금융기관 몫"
특히 이날 토론에서는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증세나 해외조달 방식이 아닌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재원마련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 위원장은 “해외 자금 조달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과거 1960년대의 경제개발 과정을 되돌아볼 때 증세보다는 금융을 통해 개발 재원을 조달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정책금융기관에게 중점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국민들의 부담을 저하시킬 수 있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위원은 이어 “일반적으로 공적개발원조(ODA)기관들의 자금은 레버리지가 평균 20배에 달하고, 기준을 강화해서 10배로 축소하더라도 직접자금 지출보다는 재정부담이 대폭 축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형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통일비용이 얼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조달 방식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간자본과 민관합동 방식이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고, 국제사회와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에 자본유입이) 되면, 여기서 우리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지 고민해야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논의 시작도 전에 '금액'만 부각..."500조원은 통일비용 아닌 북한개발비용"
이날 토론에서 금융당국과 전문가들이 우려한 또 다른 대목은 통일금융의 열기가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통일이 가까이 왔다”, “통일은 갑자기 온다”며 통일부가 나서서 남북통일 재원 마련을 위한 ‘통일 항아리’ 기금을 모금하는 등 불씨를 당겼지만, 지금은 잊혀진 구호가 됐다.
당시 통일 관련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정책과 대안, 논의 등은 대부분 유야무야 됐다. 무엇보다 통일 재원 마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서 ‘세금을 더 걷으려는 꼼수’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이번에 당국에서 “통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고 방어막을 우선 치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통일재원 500조원’이라는 금액이 부각되면서 또 한번 우려를 낳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윤덕룡 선임연구위원은 동서독 통합사례를 통해 통일대박의 시사점을 던졌다.
독일의 경우, 통일 직후인 1991년부터 10년간 ‘임금과 생산성 단위임금비용의 변화’를 살펴보면 통일에 소요되는 자금이 초기 5년동안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5년간 재원이 집중투자되면서 이자율이 올라가고 독일 DAX30지수의 일시적인 하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10년 후 정상으로 돌아오며 오히려 기업 가치가 다섯 배 이상 껑충 뛰었다. 금리의 경우 통일 직후인 1990~95년까지는 연 평균 7.00%를 넘어섰지만, 95년 이후 통일 이전인 4.00% 이하로 안정세를 되찾았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모든 언론에서 ‘통일비용 500조원’을 제목으로 쓰고 있는데,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이 금액은 북한에 대한 개발지원 추정비용이고, 남한소득의 60%까지 필요한 자금과 사회보장적 자금 수요”라고 설명했다.
이번 발표에 앞서 신 위원장은 “이번 발제는 정부의 확정된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고, 학계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며 “한반도 통일에 대비해 국내 학계-정책금융기관, 금융권의 보다 생산적인 통일 논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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