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시간 : 2016년 07월 02일 08:16:35
'반일감정' 오키나와 옛국기가 '태극기'인 이유가...
류큐 역사 전문가 강효백 교수 "반일감정 한국에 버금"
동종 명문 '남해에 있는 나라' 곧 한반도 남쪽임을 명시
기사본문
등록 : 2014-11-18 09:57
  가
  가
    인쇄하기
목용재 기자(morkka@dailian.co.kr)
▲ 삼국(삼산)시대의 류큐왕국. 출처 http://image.baidu.com/

일본 오키나와 현 지사 투표에서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64) 후보가 아베 신조 정부를 등에 업은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75) 현 지사를 10만 표의 큰 격차로 압승한 것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일본 내에서 자신들의 권익강화를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다.

찬란했던 해상왕국인 ‘류큐왕국’의 후예인 오키나와 주민들은 중-일, 미-일에 의한 굴욕적인 이중종속시대를 보내고, 일본의 침탈과 일본 군부가 주도한 오키나와 주민 집단자결 사건 등을 겪으면서 역사적으로 반일감정이 누적돼 왔다.

지난 16일 일본 지선 투표에서 오나가 다케시 후보가 승리한 이유는 표면적으로 미군 기지 이전을 반대한 것이 주효했지만 근본 원인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누적된 반일감정과 오키나와 주민들의 낙후된 권익 때문이었다.

특히 중국이 “미국이 일본에 반환한 류큐군도는 국제법상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류큐 군도와 그 인근해역을 호시탐탐노리는 상황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 내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 오키나와 주민(류큐인)들의 문화·역사 등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를 진행, ‘데일리안’에 관련 연구내용을 연재한 바 있는 강효백 경희대 교수는 16일 본보와 통화에서 “이번 오키나와 지선의 결과는 류큐인들이 일본정부에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메시지”라면서 “중국이 계속 추파를 던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를 좀 더 소중히 대하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현재 상황이 일본 내 권익과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찬스라고 볼 수 있다”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 태평양과 관련된 나라 사이에서 오키나와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번 투표에서 실리를 따져 미군기지 반대를 외친 후보에게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 교수는 “오키나와 주민들은 50여개의 일본 현 가운데 생활수준도 가장 낮다”면서 “이들의 민족적 정체성 자체도 일본인이 아니고, 반일감정이 뿌리깊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정책을 찬성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 류큐국기(1854-1879).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Flag_of_the_Ryukyu_Kingdom.svg?uselang=zh
오키나와 인들의 반일감정 어디서 오나?

강 교수에 따르면 류큐인들의 ‘반일감정’의 뿌리는 상당히 깊다. 류큐인들과 일본과의 악연은 160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인을 받은 사쓰마 번주 시마즈 다다쓰네는 임진왜란 당시 류큐국이 협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침탈을 감행한다.

당시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있던 류큐 국왕 이하 100여 명의 고관들은 사쓰마 번으로 납치당했다가 복종의 맹약을 한 후 풀려난다. 이를 거부한 류큐국의 충신 정형은 명나라에 원병을 청하는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이 발각돼 기름 솥에 던져져 죽음을 당했다. 이로 인해 류큐국은 중국과 일본 양국의 이중종속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1872년에 접어들자 일본은 류큐국에 대한 완전한 복속을 획책하고 이에 위기를 느낀 류큐왕은 1877년 청나라에 3인의 밀사를 파견, 원조를 청하지만 거부 당한다. 절망에 빠진 류큐 밀사 임세공은 베이징에서 류큐왕국이 있는 동남방을 향하여 삼배한 후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한다.

결국 1879년 4월 4일, 일본의 군경 600여 명이 류큐의 수도 슈리성을 무력 점령하고 이 지역에 오키나와 현이 신설된다. 류큐왕국이 일본의 침탈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진 순간이다.

이후 1945년, 류큐는 일본 영토에서 벌어진 유일한 지상전이자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으로 전락해버린다. 당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군은 원주민에게 집단자살 명령을 내리는 만행을 저질렀고 류큐는 미국에 의해 점령된다. 또다시 이중종속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강 교수는 “2차 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자 류큐는 일본으로부터 분리돼 미군정하에 들어갔다”면서 “류큐 군도가 원래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으며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이 섬들을 확보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또다시 류큐가 이중종속국으로 전락하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애매모호한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류큐가 독립을 한 것도 아니었고 여전히 류큐의 잠재주권은 일본에 있으면서도 승전국인 미국의 주권이 미쳤다.

강 교수는 “류큐는 아주 새로운 유형의 점령지이자 식민지였는데 미군정하의 류큐 주민 역시 매우 애매모호한 지위를 지녔다”면서 “류큐는 미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이었지만 주민들은 미국 시민권자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일본국적자도 아니었다. 또한 독립국 류큐의 국적자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류큐 주민이 일본 본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여권인 도항증을 지참해야 했다”면서 “도항증에는 국적 표시가 없고 류큐 군도 거주자라는 괴이한 법적 신분이 기재돼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류큐 군도는 미국의 ‘닉슨 독트린’ 이후 반환 협상을 거쳐 1972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반일감정은 최근 “오키나와 독립”이라는 목소리로 실체화돼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 지난 2006년 국립 류큐대학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75%의 류큐인 응답자가 주민투표를 통한 류큐 독립을, 25%는 독립에 반대하나 자치의 확대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5년, 18세 이상 류큐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0.6%가 자신을 ‘류큐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 21%만이 자신을 ‘일본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온갖 수모를 겪은 류큐인들이 일본에 쉽게 동화되지 않고 반일본 정서를 뿌리 깊게 갖고 있는 이유다.

▲ 류큐만국진량종(오키나와 현립박물관 소재). 출처 http://image.baidu.com/
오키나와 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은?…"일본보다 한국에 가까워"

류큐인(오키나와 인)들의 반일감정은 주권을 침탈한 일본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반일감정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류큐인들은 과거부터 우리민족과 긴밀한 관계였고, 민족적 정체성도 우리나라와 가깝다.

강 교수에 따르면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에는 류큐국 슈리 왕궁의 정전에 걸려있던 '류큐만국진량(류큐는 만국의 가교)' 동종(銅鐘)이 전시돼있다.

해당 종에 새겨진 명문(銘文)에는 “류큐는 남해에 있는 나라로 삼한(한국)의 빼어남을 모아 놓았고, 대명(중국)과 밀접한 보차(광대뼈와 턱) 관계에 있으면서 일역(일본)과도 떨어질 수 없는 순치(입술과 치아) 관계”라고 적혀있다.

이에 강 교수는 “동종의 명문은 국가의 정체성을 의미하는데 이들의 정체성은 조선인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류큐군도는 일본에서 보면 서쪽에, 중국에서 보면 동쪽에 있다. 한반도에서 봐야 정남쪽에 있는데 자신들을 ‘남해의 나라’로 규정한 것을 보면 정체성이 한국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데일리안 2011년 2월 5일자에 연재한 글에서 류큐왕국의 국기 문양이 태극임을 밝혀낸 바 있다.

☞ 관련기사 : "조선을 사랑한 류큐 국기는 ´태극기´였다"

강 교수는 “또한 일본에는 언어가 일본어, 오키나와어 두 가지로 구분돼 있다”면서 “특히 일본에 의한 오키나와 집단자결 사건, 이를 은폐하려는 일본 정부에 대한 한이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지역감정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어 강 교수는 “실제 오키나와 주민들의 인종 구성이 한국인 3분의 1, 일본인 3분의 1, 중국인 3분의 1 정도 될 것”이라면서 “이들은 스스로가 류큐인이라는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에 동화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식민지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데일리안 = 목용재 기자]
ⓒ (주)데일리안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