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명 의원 놓고 대정부질문...장관들은 무슨 죄냐

문대현 기자

입력 2014.11.04 11:06  수정 2014.11.04 11:10

<기자수첩>어떠한 이유로든 국회 일정 불참은 합리화 못해

31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정치에 관한 대정부 질문이 진행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3일 오후 외교·통일·안보에 관한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 곳에서는 휑하다 못해 스산하다는 기운마저 들었다.

지난 5월 2일 본회의 이후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여야의 의견 충돌로 국회가 파행되며 전체적인 국회 일정이 뒤로 밀렸고, 지난달 31일에야 정치에 관한 질문으로 대정부질문이 시작됐다.

뒤늦게 진행되는 일정인 만큼 국회의원들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예상됐지만 이는 큰 오산이었다. 이날 오후 3시경,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향해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 문제를 갖고 질의를 이어가는 동안 자리를 지킨 의원은 300명 중 50여명에 불과했다.

국회법 제73조 1항에에는 ‘본회의는 재적의원 5분의1(60명) 이상의 출석으로 개의한다’는 규정이 있다. 규정에 의하면 이날 대정부질문은 더 이상 진행 돼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모습은 안타깝게도 대정부질문마다 늘상 있는 일이다. 지난 4월 9일 진행된 교육·사회·문화 부문 대정부질문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은 겨우 2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의원들은 이런 참석률에 익숙했던지 그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나마 자리를 지키던 50여명의 의원 중 대정부질문이 이뤄지는 단상 쪽을 바라보는 의원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대한민국 입법 기관의 본회의장을 안락한 휴게실 정도로 생각하는 듯 꾸벅꾸벅 졸았고 그렇지 않은 의원들은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옆 의원과 함께 평상시 못 나눈 담소를 나눴다.

이런 상황에서 대정부질문이 권위 있게 진행될 리가 만무했다. 김 의원은 한 장관을 불러다 놓고 경기도 동두천 캠프케이시의 미 2사단 210화력여단의 잔류 문제를 놓고 “왜 당초 이전을 계획 해놓고 번복했는가”라며 날선 질문을 던졌지만 한 장관은 김 의원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뉘앙스로 “일시적인 잔류일 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고 냉랭하게 답했다.

정 총리도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 법을 만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김 의원에 질문에 “그건 입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다소 무성의하게 답했다.

텅 빈 본회의장에서 국회의 권위가 살 리가 없었고 의원들은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는 관료들을 향해 쓴소리조차 내뱉기 쉽지 않았다. 정부 권력의 횡포를 막고 견제한다는 애초의 목적은 온 데 간 데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에 관료들은 휑한 본회의장을 보면서 속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앞서 지난달 30일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때와 31일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만사를 제쳐두고 참석해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으려 했던 의원들은 대정부질문 쯤은 불출석해도 상관없는 가벼운 일정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부고 소식을 제외하고는 어떤 내용이든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처럼 의원들은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대정부질문에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할 바에 개인 입지 다지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최근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의원들은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잡는 데는 그다지 큰 효과가 없는 대정부질문 정도는 뒤로 하고 지역구 챙기기에 혈안을 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국회의원이 국회 일정에 불참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로서 입법권한을 행사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다. 선출직 공무원인 국회의원만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특권들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때 당당하게 특권을 가질 수 있다.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종종 자신의 질의 일정에 맞춰 지역 주민들을 본회의장으로 초청해 자신의 할약하는 모습을 과시하고는 한다. 초청된 주민들은 텅 빈 본회의장을 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정부질문은 오는 4일(경제)과 5일(교육·사회·문화) 이틀만을 남겨두고 있다. 더 이상 대정부질문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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