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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탈출형 외교’ 속사정 '텅빈 곳간, 돈 확보 비상'


입력 2014.10.03 10:18 수정 2014.10.03 14:56        김소정 기자

리수용은 러시아 횡단에 이란으로...강석주는 독일 벨기에 찍고 스위스로...

러시아를 방문한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 스피리도노프카 거리에 있는 외무부 영빈관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다.ⓒ연합뉴스 러시아를 방문한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 스피리도노프카 거리에 있는 외무부 영빈관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이 최근 리수용과 강석주를 동시에 내세워 외교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통치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 총회 참석과 더불어 이란과 러시아를 종횡무진하고, 강석주 국제담당비서가 유럽 방문에 나선 까닭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다시 고강도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이 벌이는 ‘탈피형 외교’의 목적이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당장 어려운 경제사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물꼬를 트려는 것인 만큼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에 북한 외무상이 15년만에 유엔 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 까닭도 자신들에 씌워진 인권탄압 국가라는 이미지를 회복시키려는 의도가 컸다. 그러면서 리 외무상은 그나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이득을 얻고 있는 이란, 러시아 방문에 집중하고 있다.

강 국제담당비서는 지난달 독일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을 열흘 일정으로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강 국제담당비서가 만난 20여명의 정당, 정부, 경제계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하며 “관계 발전 문제를 토의했다”고 보도했다.

지금 북한의 전방위 외교전에 대해 정부 측 고위 관계자는 “북한에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주민경제는 나아졌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국제제재로 인해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고갈된 상태로 알고 있다”며 “이 때문에 김정은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끌어모으라’,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라’는 두 가지 중대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금 북한이 펼치는 외교전은 정상적이고 통상적인 외교가 아니라 자신들의 어려운 경제 문제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이므로 바라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다시 도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중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유엔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남북·북미 관계도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으며, 북일 간 협상도 원활치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이 러시아에서도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못 얻을 때 김정은은 북한이 즐겨 사용하는 전형적인 ‘화전양면’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의도한 대로 결실을 보지 못할 때 무력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으며, 도발을 감행할 때에는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이나 4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그 시기는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난 이후 이르면 올해 연말을 넘기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리 외무상의 방러 결과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인 전망을 하지 않았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외교적 고립을 겪고 있는 만큼 북한과 긴밀하면 긴밀해질수록 오히려 국제외교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

북한이 러시아 방문 일정을 최장 10박11일로 잡으면서 좋은 관계 회복을 위해 공을 들이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등거리 외교를 펴기 위해서다.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리 외무상의 일정은 라브코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 외에도 트루트네프 부총리 겸 극동담당 대통령 특사, 니콜라이 표도로프 농경부 장관,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극동개발부 장관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리 외무상은 또 아무르스카야와 사할린, 하바롭스크, 연해주 지역을 찾아 지역 행정 대표들과 만난다고 러시아 외무부가 밝혔다.

리 외무상의 러시아 방문은 양국의 경제협력 논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양국이 협의한 내용 이상의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이미 북한과 러시아는 현재 1억2000만 달러 수준인 양국의 교역 규모를 2020년까지 10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옛 소련 시절 북한에 빌려준 109억 달러 가운데 90%의 채무를 탕감하는 비준안에 서명을 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나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북한에 대한 직접투자보다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나진항을 통해 물류를 해외로 신속히 이동하기 위한 의도가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봉영식 아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천연자원 수출길이 막히고 대금 결제마저 어려워진 러시아 입장에서는 오히려 중국이나 한국과의 관계 유지가 더 중요해보인다”며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러시아가 북한과 긴밀해지는 것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봉 선임연구위원은 또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북핵 문제는 선결 과제로 아무리 과거부터 푸틴 대통령이 북한에 우호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북한 구하기’에 나설 확률은 낮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번 리 외무상과 라브코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논의로 시작됐다. 이는 북핵 문제와 관련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 이행을 북한 측에도 간접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한편, 러시아 측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어떤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은 양쪽이 여러 문제에서 어떤 진전을 이룰지, 특정 수준의 접촉을 위한 여건이 어떻게 성숙될지에 달렸다”고 말해 북러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안전 지향’의 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쓸 수 있는 여러 카드 중 하나로 김 제1위원장의 방러를 허용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으나, 3대세습으로 정권을 이어받은 젊디젊은 북한 통치자와 정상회담까지 할 지에는 회의적이다.

이런 가운데 북중 관계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보인다. 최근 북한과 중국이 서로 양국의 경축일에 주고받은 축전 내용은 더 이상 혈맹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더욱 확실시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중국 국경절인 신중국 건립 65주년에 맞춰 중국 시진핑 주석에 보낸 축전에 양국의 ‘특수관계’를 반영하는 용어들이 대거 빠져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시 주석도 9월9일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을 맞아 김 제1위원장에 보낸 축전에서 북중관계의 기본 원칙인 ‘16자 방침’으로 알려진 ‘전통계승·미래지향·선린우호·협조강화’라는 표현을 생략했다.

이에 대해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1995년 발간한 외교백서에서 지난 60년간 사용해온 ‘혈맹관계’ 문구를 빼고 ‘전통적 우호관계’를 명시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면서 “지난 김정일의 마지막 방중 때에도 중국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김정일을 당 대표 자격으로 예우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을 안보상의 완충지대로 보지 않는다. 이제 자신들의 팽창 욕구를 충족시킬 대상으로 여기고 과거 ‘후원자’ 역할에서 ‘간섭자’ 역할을 하고 싶어하지만 북한은 체제 붕괴를 우려해 개혁개방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지금까지 북한을 방문한 중국의 최고위 인사는 리위안차오 국가 부주석이다. 리위안차오는 부주석이지만 정치국 위원으로 서열 8순위 정도에 불과하다. 과거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을 보낸 것과 분명 달라진 점이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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