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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누님'과 '그레고리 형님'을 따라나서다


입력 2014.08.09 09:59 수정 2014.08.11 18:02        이석원 기자 (galamoi@dailian.co.kr)

<유럽에 미치다 18-로마②>'로마의 휴일'이 만들어낸 또 다른 역사

로마(Roma)를 거꾸로 쓰면 Amor, 즉 스페인어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된다. 누군가 만들어낸 말이라고 해도 나쁘지는 않다. 로마를 프랑스 파리처럼 낭만이 가득 찬 사랑의 도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로마는 세계 수많은 연인들의 밀어가 도시 여기저기에 녹아 있는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윌리엄 와일러 감독,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은 로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의 향기가 가득한 도시라고 외치고 있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 세례자 요한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지만, 로마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니 만큼 초대 교황인 베드로의 의미가 강한 곳이다. ⓒ이석원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 세례자 요한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지만, 로마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니 만큼 초대 교황인 베드로의 의미가 강한 곳이다. ⓒ이석원

성당 내부의 압권은 천정의 금박. ⓒ이석원 성당 내부의 압권은 천정의 금박. ⓒ이석원

자칫 거대한 역사와 압도적인 문화에 눌려 로마가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로마를 가보지 않고서 책이나 TV로만 접한다면 더욱 그렇다. 기본적으로 소개해야 할 역사의 현장, 고대 문화의 결정체가 너무 많다보니 로맨틱한 면이 가려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로맨스의 원어인 프랑스어 로망(Roman)도 어딘지 Roma에서 기원한 단어처럼 보인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기사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중세 문학작품을 이르는 말인 로망의 철자가 왜 로마와 비슷한지는 알 수 없지만, 로마 또한 로맨틱한 도시다.

화려한 금 장식이 인상적인 성당 내부는 마치 교황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더 힘써 치장한 듯하다. ⓒ이석원 화려한 금 장식이 인상적인 성당 내부는 마치 교황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더 힘써 치장한 듯하다. ⓒ이석원

베드로 성인(왼쪽)과 바오로 성인. 왼손에 세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베드로의 도상이다. 긴 칼을 들고 있는 것은 바오로의 도상이다. ⓒ이석원 베드로 성인(왼쪽)과 바오로 성인. 왼손에 세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베드로의 도상이다. 긴 칼을 들고 있는 것은 바오로의 도상이다. ⓒ이석원

‘황금의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산 죠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은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의미심장한 곳이다. 이 성당을 처음 세운 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그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다음 해 이 성당을 지어 교황에게 바쳤다. 1646년에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의 대가인 보르미니에 의해 개축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성당 내부에는 세례자 요한의 동상과 함께 가톨릭의 대표적인 사도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조각상, 그리고 이 성당을 처음 세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동상도 있다. 성당 내부 천정이나 기둥 등에 노랗게 빛나는 것들이 모두 금이다.

로마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모여 있는 공간은 콜로세움(Colosseo) 부근이다. 21세기 로마의 시간이 기원전 어느 시간에서 멎어버린 느낌이 가장 강하다. 역사의 도시 로마에 마음이 당기지 않는다면 그다지 발길이 닿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적잖은 사람들은 이 부근의 유적들을 가능하면 편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보려고 한다. 2000년 전에 정지해버린 남의 나라 역사에 굳이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콜로세움 주변의 로마 지도. 구글맵 콜로세움 주변의 로마 지도. 구글맵

콜로세움은 악명 높은 독재자 네로 황제의 궁전이 있던 자리다.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원형 극장을 세웠다. 콜로세움의 정식 명칭은 플라비오 원형극장(Flavio Amphithetre)이다. 콜로세움이라는 말은 ‘거대하다’는 뜻인데, 그 크기에 비해 건축 기간은 불과 8년 남짓. 역사를 알면 맥 빠지는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일 수 있겠다. 개인의 복수에 거대한 로마의 정치와 역사를 슬쩍 붙여 넣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도 볼 수 있었던 참혹한 살인 게임은 5세기 초 호노리우스 황제에 의해 금지됐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처음 콜로세움을 지었을 때는 모의 해전장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배수가 잘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검투장이 됐다. 총 둘레가 527m, 높이가 48m에 달한다. ⓒ이석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처음 콜로세움을 지었을 때는 모의 해전장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배수가 잘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검투장이 됐다. 총 둘레가 527m, 높이가 48m에 달한다. ⓒ이석원

지금은 바닥이 모두 무너져 당시 검투사들의 대기실과 맹수의 우리, 그리고 무기고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과거 몇몇 영화에서는 네로 황제가 이곳 콜로세움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을 맹수에게 죽게 만든 것으로 묘사됐는데, 네로가 이용했던 경기장은 산 피에트로 대성당 근처의 네로 경기장이었다. ⓒ이석원 지금은 바닥이 모두 무너져 당시 검투사들의 대기실과 맹수의 우리, 그리고 무기고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과거 몇몇 영화에서는 네로 황제가 이곳 콜로세움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을 맹수에게 죽게 만든 것으로 묘사됐는데, 네로가 이용했던 경기장은 산 피에트로 대성당 근처의 네로 경기장이었다. ⓒ이석원

콜로세움의 한 쪽이 무너져있는 것은 지진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서 무너진 돌들은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비롯해 로마의 여러 다른 건축물의 자재로 사용됐다고 하니 콜로세움의 역사는 로마 곳곳으로 분산돼 계속되는 셈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이벌이었던 막센티우스와 벌인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 ⓒ이석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이벌이었던 막센티우스와 벌인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개선문. ⓒ이석원

콜로세움 바로 옆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Arco di Constantino)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비롯해 평양의 개선문, 서울의 독립문 등의 할아버지 격이다. 실제 나폴레옹이 파리에 개선문을 세울 때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고, 이후 다른 나라의 개선문들은 모두 이 양식을 본떠서 만들었다. 하지만 규모면에서는 파리의 개선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파리의 개선문처럼 꼭대기에 올라갈 수도 없다. 지진으로 콜로세움의 한쪽 벽도 무너졌는데 서기 315년에 만들어져서 1700년을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용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 부근에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사법 종교의 중심지인 포로 로마노(Foro Romano)가 있다. 포로 로마노를 찬찬히 살펴보려면 콘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에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적잖은 사람들은 이 낡고 오래되고, 거의 다 무너져서 가이드의 설명이 없으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 폐허(?)들을 찬찬히 보려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게 있다.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광장 쪽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옆 캄피톨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뒤쪽으로 가서 포로 로마노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것이다.

캄피톨리오 광장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과 현재 로마 시청으로 사용되는 세나토리오 궁전. 이곳에 오르는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원근법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코르도나타라고 불린다. ⓒ이석원 캄피톨리오 광장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과 현재 로마 시청으로 사용되는 세나토리오 궁전. 이곳에 오르는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원근법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코르도나타라고 불린다. ⓒ이석원

캄피톨리오 광장 뒷편에서 내려다보는 포로 로마노. 인증샷 포인트로 유명하다. ⓒ이석원 캄피톨리오 광장 뒷편에서 내려다보는 포로 로마노. 인증샷 포인트로 유명하다. ⓒ이석원

캄피톨리오는 영어로 국가의 수도를 의미하는 ‘Capital’의 어원이다. 광장에는 현재 로마 시장의 집무실과 시의회가 있는 세나토리오 궁전이 있다. 그리고 그 궁전 앞에 ‘명상록’의 저자로도 유명한 철학자이기도 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서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로마의 공화정을 이룬 인물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분)가 충성을 바치던 황제이자,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코모두스의 아버지이다. 서기 180년까지 로마를 통치한 5현제의 마지막 황제다.

그리고 캄피톨리오 광장 뒤편으로 가면 포로 로마노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사실 지금 보면 황량한 벌판 위에 돌기둥 몇 개가 놓여있는 것이 전부이지만 고대 로마의 한 중심지였다. ‘비너스와 로마 신전’, ‘티투스의 아치’,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 ‘베스타 신전’, ‘원로원’ 등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로마의 국교가 되기 이전 로마를 상상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가이드가 없다면 그야말로 처참한 폐허만 보인다.

로마에는 주객이 전도된 공간이 있다. 진짜 아름다운 것은 그늘 속에 가려져 숨어 있고, 별 것도 아닌 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공간,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Santa Maria in Cosmedin) 성당과 ‘진실의 입’이다. 7층 높이의 이 성당은 로마에 있는 성당 중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로마를 찾는 여행자 중 이 아름다운 성당을 보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지 이 성당 입구에 있는 맨홀 뚜껑을 보기 위해 어마어마한 줄서기를 한다. ‘진실의 입(Bocca del Verita)’이다.

진실의 입에 손 한 번 넣어보자고 줄서 있는 사람들. ⓒ이석원 진실의 입에 손 한 번 넣어보자고 줄서 있는 사람들. ⓒ이석원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멋진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이석원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멋진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이석원

사실 ‘진실의 입’은 순전히 ‘오드리 누님’과 ‘그레고리 형님’이 만들어낸 특수한 상황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형님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는 손이 먹힌 듯 장난을 치자 오드리 누님이 깜짝 놀라는, 그야말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애질’의 진수를 보여줬던 곳이다. 물론 역사적인 가치는 분명 있다.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부조해 놓은 이 ‘진실의 입’은 2400년 전에 만들어진 하수구 뚜껑이다. 그런데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지면서 진짜 아름다운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은 존재감이 미미해져 버렸다. 로마의 시장터에 세워진 이 성당은 6세기에 처음 만들어졌으니 1500년이 된 오래된 성당이다. 특히 이 성당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과 스테인드 글라스가 볼만한데, 실제 많은 사람들은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사진 한 장을 찍고는 성당을 스치듯이 지나치고 만다.

판테온과 나보나 광장 주변의 로마 지도. 구글맵 판테온과 나보나 광장 주변의 로마 지도. 구글맵

‘모든 신들의 신전’이라는 뜻의 판테온(Pantheon)은 원래 서기 27년 올림푸스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축가인 아그리파가 지은 일종의 종합 신전이다. 르네상스 최고의 건축가인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한 이 건축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비스럽다. 우선 높이가 43m가 넘는 웅장한 내부 공간을 떠받치는 기둥이 단 한 개도 없다. 그저 반원형의 지붕과 아치의 원리만으로 거대한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그리고 반원형의 지붕에는 지름이 9m에 이르는 오큘루스(Oculus)라는 뻥 뚫린 구멍이 있다. 채광창의 역할을 하는 곳인데, 비가 오면 그 구멍을 통해 실내로 비가 들이치기는 하지만 그 양이 미미하다. 비가 구멍을 통해 실내로 들이칠 때 실내의 더운 공기가 비를 밀어 올려 밖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미세한 양의 비가 실내로 떨어져도 대리석 바닥의 배수로를 통해 흘러가 실내가 젖는 일은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평가되는 판테온. ⓒ이석원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평가되는 판테온. ⓒ이석원

판테온의 오큘루스는 이 위대한 건축물의 신비로움의 압권을 이룬다. 채광창 역할을 하는데 신비한 과학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석원 판테온의 오큘루스는 이 위대한 건축물의 신비로움의 압권을 이룬다. 채광창 역할을 하는데 신비한 과학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석원

성당이라기 보다 넓은 회랑같은 분위기의 판테온 내부. ⓒ이석원 성당이라기 보다 넓은 회랑같은 분위기의 판테온 내부. ⓒ이석원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판테온은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된 후부터 성당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또 이곳에는 유럽의 주요한 성당들이 그렇듯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움베르토 1세 등 왕들의 무덤도 있다. 그런데 왕이 아닌 이의 무덤이 하나 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르네상스 3대 미술가로 꼽히는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성모 마리아 조각 바로 아래 놓여있었는데, 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지녔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판테온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은 ‘로마의 몽마르트’라고 불린다. 행위 예술과 화가들, 그리고 그들을 구경하는 여행자들로 늘 즐비하다. 원래 전차경기장이었던 곳을 17세기에 지금의 광장으로 조성했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테르트르 광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 그리기나 행위 예술을 구경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손가락에 예쁜 장식 매듭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너무 착하고 순박한 표정으로 손가락 3개를 드는데, 3유로가 아니라 30유로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 매듭은 쉽게 풀어지지도 않고, 어지간한 여행자는 별 수 없이 눈 뜨고 코 베어져야 한다.

나보나 광장은 1년 365일 늘 다채로운 행사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석원 나보나 광장은 1년 365일 늘 다채로운 행사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석원

나보나 광장 중심부에 있는 피우미 분수와 산타 그네제 교회. 각각 17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건축가인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만든 것이다. 베르니니가 일생의 라이벌인 보로미니의 교회을 폄하하기 위해 그 앞에 분수를 만들고는 "언젠가는 무너지고 말거야"라고 저주를 했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로마의 대표적인 '뻥'이다. 보로미니의 교회는 베르니니의 분수보다 뒤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석원 나보나 광장 중심부에 있는 피우미 분수와 산타 그네제 교회. 각각 17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건축가인 베르니니와 보로미니가 만든 것이다. 베르니니가 일생의 라이벌인 보로미니의 교회을 폄하하기 위해 그 앞에 분수를 만들고는 "언젠가는 무너지고 말거야"라고 저주를 했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로마의 대표적인 '뻥'이다. 보로미니의 교회는 베르니니의 분수보다 뒤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석원

거리의 화가와 행위예술가, 그리고 비록 값은 비싸지만 기꺼이 지갑을 열게하는 노천 카페가 즐비한 나보나 광장은 '로마의 몽마르트'라고도 불린다. ⓒ이석원 거리의 화가와 행위예술가, 그리고 비록 값은 비싸지만 기꺼이 지갑을 열게하는 노천 카페가 즐비한 나보나 광장은 '로마의 몽마르트'라고도 불린다. ⓒ이석원

나보나 광장에는 네투노, 모로, 그리고 피우미라는 3개의 분수가 유명하다. 각 분수들을 중심으로 광장은 늘 편안하고 한가하다. 로마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지간히 빡빡한 일정에 쫓기는 여행자도 이 곳에 오면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게 된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 1층 카페에서 한 잔에 15유로나 하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호사도 누려보고, 로마가 2000년의 역사로 팍팍한 도시가 아니라 젊음이 솟구치는 곳이라는 걸 실감하기도 한다.

로마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기는 곳이 있다.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다. 1726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분수 설계 공모전을 열었을 때 1등을 한 니콜라 살비가 만들었다. 넵투누스(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와 ‘진실의 입’의 주인공 트리톤을 모티브로 아름다운 조각이 돋보이는 트레비 분수도 ‘로마의 휴일’이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짓’은 오드리 누님과 그레고리 형님이 창시자다. 게다가 이곳에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만들어내면서 로마 관광사업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을 중심으로 한 로마 지도. 구글맵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을 중심으로 한 로마 지도. 구글맵

나폴리 궁전의 벽면에 만들어진 트레비 분수. 로마의 수로가 끝나는 부분이라 지대가 낮다. 이곳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이석원 나폴리 궁전의 벽면에 만들어진 트레비 분수. 로마의 수로가 끝나는 부분이라 지대가 낮다. 이곳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이석원

트레비 분수 주변에서 군밤을 파는 이탈리아 할아버지. 장사를 하겠다는 것보다도 사람들을 구경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에 더 몰두하는 듯 하다. ⓒ이석원 트레비 분수 주변에서 군밤을 파는 이탈리아 할아버지. 장사를 하겠다는 것보다도 사람들을 구경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에 더 몰두하는 듯 하다. ⓒ이석원

트레비 분수 주변의 거리의 화가. ⓒ이석원 트레비 분수 주변의 거리의 화가. ⓒ이석원

거기에 더해 로마 사람들은 동전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던지게 만들었다. 분수를 등지고 서서 오른손에 동전을 들고 왼쪽 어깨너머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첫 번째 동전은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를, 두 번째 동전은 평생의 연인을 만나기를, 그리고 세 번째 동전은 이혼 또는 연인과의 결별을 빈다는 것이다. 입장료를 받지도 않으면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다. 물론 로마시는 정기적으로 이 동전들을 모아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한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은 ‘로마의 유적’이 아니라 ‘로마의 휴일의 유적’이다. 이곳이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린 것은 과거 이곳에 교황청의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광장에는 별로 볼 것이 없다. 그러나 로마의 젊은이든, 젊은 여행자든 이곳에 꾸역꾸역 모여드는 이유는 스페인 계단 때문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누님이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촬영한 후 계단은 젊음의 공간이 됐다. 반쯤 기댄 모습으로 키스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실제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영화와는 달리 이 계단에서는 법적으로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재수 없으면 로마 경찰에게 걸려 혹독한 벌금을 떼기도 한다.

스페인 광장은, 광장이라고 하기에도 작아보인다. 이곳도 밤에 더 인기가 있는 공간이다. ⓒ이석원 스페인 광장은, 광장이라고 하기에도 작아보인다. 이곳도 밤에 더 인기가 있는 공간이다. ⓒ이석원

오드리 헵번의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해진 스페인 계단. 계단 위 하얗게 보이는 게 삼위일체 교회다. ⓒ이석원 오드리 헵번의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해진 스페인 계단. 계단 위 하얗게 보이는 게 삼위일체 교회다. ⓒ이석원

이 계단의 정식 명칭은 이탈리아어로 ‘Scalinata della Trinita dei Monti(언덕 위의 삼위일체 교회로 오르는 계단)’이라 불린다. 계단 위 언덕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교회가 삼위일체 교회(Trinta dei Monti)이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 ‘아말피 여신이 보수’에 이 교회의 모습이 자세히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이름이 워낙 길고 어렵다보니 사람들은 스페인 광장에 있는 계단이라고 해서 그냥 스페인 계단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아마도 로마 시민이라고 해도 이 계단의 진짜 이름을 외워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하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지만 그 자체가 위대한 역사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 헬레니즘 문명이 서양 문화와 역사의 시작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고대 로마가 없었다면 그저 지중해 연안의 외진 문명으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문명을 칭송하면서도 고대 로마를 더 많이 공부한다. 자신들의 사실상 뿌리가 거기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만큼 2400년의 로마 역사는 위대하고 찬란하다.

그래서 로마를 짧은 시간동안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미국 디즈니랜드 따위를 다 둘러보는데도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는데, 로마를 불과 며칠, 몇 주에 둘러보고 알려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1590년에 교황이 된 그레고리오 14세는, 3주일을 못넘기고 로마를 떠나는 사람에게는 “안녕히 가시오”라고 인사하고, 3개월 이상을 머물렀던 사람에게는 “로마에서 다시 봅시다”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스페인 계단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콘도티 거리. 로마에서 가장 비싼 명품숍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석원 스페인 계단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콘도티 거리. 로마에서 가장 비싼 명품숍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석원

캄피톨리오 광장 뒤편에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2000년의 로마를 그리게 되고, 스페인 계단에서 콘도티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세계 패션의 최강국을 떠올리게 된다. 카라칼라 욕장에서 1800년 전 로마인들의 향락을 느낄 수 있다면, 트레비 분수 옆 젤라토 가게에서는 21세기 젊은이들의 달콤한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그만큼 로마는 어떤 때는 다소 부담스러우리만큼 무거운 역사책으로 다가오지만,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으로 안기게도 만든다.

이탈리아어로 처음 만났을 때 인사가 “차오(Ciao)”이고 헤어질 때 인사도 “차오(Ciao)”인 것은 2400년 전에 시작한 로마가 21세기에도 어쩌면 같은 모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이석원 여행작가·기자

이석원 기자 (galamoi@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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