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오늘도 외친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최종편집시간 : 2017년 09월 20일 20:39:36
그들은 오늘도 외친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유럽에 미치다⑩-이탈리아 나폴리>완벽한 2개의 얼굴을 지닌 2500년된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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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24 10:05
이석원 여행작가
▲ 나폴리 산타 루치아 항구. 세계 3대 미항으로 유명하지만, 그 미항이라는 말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다. 배를 타고 들어오며 보는 항구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석원

'Santa Lucia'

Sul mare luccica l'astro d'argento (은색별이 바다 위에 빛나고)
Placida e' l'onda Prospero e' il vento (물결도 조용하며 바람도 순풍이네)

Sul mare luccica l'astro d'argento (은색별이 바다 위에 빛나고)
Placida e' l'onda prospero e' il vento (물결도 조용하며 바람도 순풍이네)

Venite all'agile barchetta mia (오라, 경쾌한 나의 배로)
Santa Lucia, Santa Lucia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세상에서 나폴리 칸초네를 가장 잘 부르는 남자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산타 루치아’를 들으며 지중해에서 들어오는 배들은 나폴리(Napoli)의 첫 얼굴인 산타 루치아 항구를 바라보며 이곳이 왜 세계 3대 미항인지를 실감한다. 멀리 바라보이는 베수비오 화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서서히 낮아지면서 도시를 만들고, 눈앞의 해안선은 1년 365일 선명한 빛의 오렌지를 매단 가로수로 이어져 세상에서 더 없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리되지 않는 도시는 거친 듯하지만 그 나름의 묘한 질서를 지니고 있고, 그 탓에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신비로운 보물상자처럼 아름답고 강렬한 지중해의 태양빛으로 환해진다.

▲ 이탈리아 반도의 지도(구글 맵)

하지만 이와 같은 장면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중해를 거쳐 나폴리만을 통해 산타 루치아 항구로 들어와야 한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나폴리항은 결코 그런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그냥 평범한, 다만 조금 넓은 항구가 눈앞에 펼쳐지고, 도시에서 이어진 퇴색한 빛의 건물들이 그저 해안까지 시선을 밀어내고 있을 뿐이다. 다만 바다 위에 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유람선이나 점점으로 박힌 흰색 요트들이 “그래도 여기가 지중해 나폴리항이구나”하는 생각을 가능하게 해줄 뿐이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중심도시이자,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이탈리아 제3의 도시다.캄파니아 지방의 주도이면서 인근 시칠리아나 소렌토 등으로 통하는 길목이기도 한 나폴리의 역사는 무려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세기 경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쿰마인이 도시를 세우고는 ‘신도시’라는 의미로 ‘네아폴리스(Neapolis)’라고 부른 것이 나폴리의 시작이다. 이후 나폴리는 동고트 왕국과 비잔틴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노르만족의 시칠리아, 독일의 호엔슈타우펜 왕가, 그리고 아라곤 왕국과 스페인에 이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계인 나폴리-부르봉 왕조의 지배를 받는 등 그야말로 외세에 거의 모든 역사를 지배 당해왔다.

▲ 나폴리는 지중해를 감싸안은 나폴리만으로 이뤄진 해안도시다. (구글맵)

그러면서도 18세기 부르봉 왕가의 지배를 받던 시절엔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나 밀라노, 베네치아와 피렌체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왕국이 되기도 했다. 1861년 가리발디 장군에 의해 이탈리아가 통일된 후에도 나폴리는 이탈리아 도시 중 가장 콧대 세고 ‘잘난’ 도시로 군림한다.

바다를 통하지 않고 나폴리로 들어갈 경우 다소 험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 나폴리는,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 나폴리 중앙역 부근은, 나폴리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이라고 하면서도 서울의 1970년대를 보는 듯한 낡은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역 주변은 늘 수많은 자동차들로 혼잡을 이루는 도시 지옥이다. ⓒ이석원

▲ 나폴리 중앙역 부근의 거리는 쓰레기로 가득하다. 나폴리를 가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다. 기차로 나폴리를 처믐 접하는 여행객들이 나폴리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지니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석원

나폴리 중앙역을 빠져나와 처음 맞게 되는 나폴리는,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교통과 거리 청소라고는 100년 동안은 한 적이 없는 듯한 지저분한 거리, 그리고 적지 않은 경찰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대낮에도 뻔뻔히 외국의 여행객들의 가방을 터는 소매치기떼로 치장돼 있다. 지도 한 장이면 그 어디라도 찾아갈 수 있다는 ‘꽃할배’ 이순재도 눈앞의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종잡을 수 없고, 성능 좋다는 네비게이션 조차도 제 스스로 길을 잃어버릴 지경의 복잡한 거리는 한동안 나폴리 여행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 식당 바로 앞 풍경이 지독한 쓰레기라면 나폴리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심지어 도심의 나폴리 시민들은 지중해 연안 도시의 낙천적인 느낌보다 불친절하고 폭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석원

나폴리에 왔으면 당연히 정통 나폴리 피자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또 하나의 고통일 수가 있다.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Eat Pray Love)’에 등장한 탓에 나폴리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조차 익숙한 정통 나폴리 피자집인 ‘다 미켈레(Pizzeria Da Mickele)’를 찾아가는 길은 차라리 고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낡고 지저분한 건물들 사이사이, 지도와 맞지도 않는 거리 표지판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길은 세계 최고의 관광지인지 쓰레기 하치장 주변인지 분간이 안간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불친절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고, 선한 사람과 소매치기의 구분도 모호하다.

그렇게 찾아간 ‘다 미켈레’는 식사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줄 선 사람들이 가득하다. TV 맛집 프로그램에 나온 다음 날 서울의 어떤 맛집 마냥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로 길바닥 앉아서 커다란 피자를 들고 먹는 사람들도 그다지 정겨워 보이지는 않는다.

▲ 블란디와 함께 나폴리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집인 '다 미켈레'. 대대로 이 집에서는 마르게리따 피자와 토마토소스와 마늘과 오레가노 향신료만으로 만든 마리나라 피자만을 판다. 번호표를 받고 줄 선 것은 익숙한 장면이다. ⓒ이석원

한 두 시간을 불필요한 고집 하나로 줄 서 있다가 들어가면 겨우 엄청나게 큰 마르게리따 피자를 맛볼 수 있다. 나폴리를 대표하는 마르게리따 피자는 대단히 단순하다. 크고 얇은 도우 위에 토핑이라고는 단지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소스, 그리고 바질 잎 몇 개가 전부다. 언뜻 봐도 흰색 치즈와 붉은색 토마토소스, 그리고 녹색 바질 잎이 마치 이탈리아 국기의 색깔을 떠오르게 한다. 이 단순한 피자에 마르게리따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왕후의 피자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나폴리 민중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지닌 사보이아 왕가의 마르게리따 왕후가 만들게 한 이 피자는 먹을 것이 부족한 이들에게 값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유명했다.

▲ 나폴리 피자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한 토핑과 화덕이다. 그래서 도우가 살짝 타는 경우가 많고, 또 그런 피자가 더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마르게리따 피자는 너무 짜다. ⓒ이석원

나폴리에서 피자는 무조건 1인당 한 판이 룰이다. 그런데 어지간해서는 한 판을 혼자 먹기가 쉽지 않다. 단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폴리 피자는 정신없을 정도로 짜다. 짜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해도 소용없다. 알았다 하고 나오는 피자는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짜다. 그러니 크기 때문이 아니라 짠 맛 때문에 한 판 다를 먹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이 피자가 19세기 후반 마르게리따 왕후가 먹을 때보다 더 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 파자에 자랑스레 자신의 이름을 붙인 왕후는 엄청 입맛이 짠 편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피자가 너무도 맛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방장의 목을 치지 않고 피자에 제 이름을 붙였을까?

▲ 나폴리 두오모 입구는 주변 거리의 지저분함과는 거리가 있는 깨끗함이 돋보인다. ⓒ이석원

▲ 유럽의 그 어느 성당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내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두오모.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자기 종교와는 상관없이 엄숙함이 몸을 감싼다. ⓒ이석원

▲ 두오모의 주보성인인 성 제나로를 모신 제대. 화려한 장식이 돋보인다. ⓒ이석원

다 미켈레에서 크고 짠 마르게리따 피자에 지친 여행자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폴리 두오모(Napoli Duomo)를 찾는다. 영어로 돔(Domb)이라는 뜻의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서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성당, 즉 주교좌 대성당을 뜻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두오모로는 밀라노 두오모와 피렌체 두오모 등이 꼽히지만 나폴리 두오모 또한 이곳 사람들의 신앙의 중심이다. 이 성당의 주보성인은 나폴리의 수호성인인 성 제나로. 성당 안에 모셔져 있는 성인의 피가 1년에 2번 액체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서 유명하다. 매년 5월 첫째 토요일과 9월 19일 이를 기념하는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해당하는 날 나폴리의 두오모를 찾은들 성인의 굳어진 피가 다시 액체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오모 바로 앞 쪽에서 시작해 산 마르티노 언덕 아래까지 이어지는 좁고 어두운 골목이 스파카 나폴리(Spacca Napoli)다. ‘둘로 나눈 나폴리’라는 뜻의 스파카 나폴리는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평민 주거지역으로, 나폴리 서민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높고 낡은 건물 사이로 좁은 통로 같은 골목이 길게 뻗어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건물과 건물 사이 줄에 걸린 빨래들이다. 그리고 건물 높은 층에서부터 두레박처럼 아래로 드리워진 바구니, 그 바구니에 든 돈을 받고 물건을 올리는 장면은 낯선 듯 낯설지 않는 정겨움을 준다.

▲ 스파카 나폴리는 유럽 골목 예술의 정점에 있다. 특히 다른 중세도시들이 주로 귀족들의 주거지로 인해 형성된 것이라면 스파카 나폴리는 서민들의 삶으로 그려진 소박한 수채화다. ⓒ이석원

▲ 복잡한 듯 하지만 잘 정리된 구획처럼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스파카 나폴리의 특징이다. ⓒ이석원

▲ 스파카 나폴리 한 켠에 있는 스파게티 재료 가게. 이 집의 주인인 살바토레 할아버지는 3대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의 여행 프로그램에도 많이 소개가 돼 제법 유명해진 탓에 여행객들을 맞는 살바토레 할아버지는 유머 감각도 상당하다. ⓒ이석원

조금 전 중앙역 부근 도로에서 봤던 지저분한 거리와 건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는 풍경이면서도 스파카 나폴리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어린 시절 서울의 골목 풍경을 닮은 그리움이 풍겨나기도 한다. 스파카 나폴리는 전혀 꾸미지도, 가꾸지도 않은 나폴리의 완벽한 민낯임에도 불구하고 지저분하다는 느낌보다는 소박하다는 느낌으로, 복잡하다는 느낌보다는 다양하다는 생각이 머무는 곳이다. 군데군데 나폴리의 고대와 중세 유적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져 있는 풍경은, 문화유적이 특별하다는 생각보다 2500년의 시간이 늘 공존한다는 이상한 일체감으로 작용한다.

▲ 몬테산토선 푸니콜라레의 플랫폼. ⓒ이석원

▲ 푸니콜라레를 타면 차내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푸니쿠니 푸니쿨라'가 들릴 법도 한데,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이석원

스파카 나폴리를 천천히 걸어서 포르첼라 거리(via Forcella)까지 나오면 나폴리의 고지대인 산 마르티노 언덕이 나온다. 언덕이라지만 경사도 급하고 길이도 짧지 않아 그곳을 오르려면 ‘푸니콜라레(Funicolare)’라는 특별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산 텔모성이 있는 산 마르티노 언덕을 오르는 푸니콜라레는 모두 3개 노선이 있는데, 그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이 몬테산토선(Funicolare di Montesanto).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불러서 잘 알려진 나폴리 칸초네 ‘푸니쿠니 푸니쿨라’가 바로 이 푸니콜라레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나폴리의 한 부자는 1879년 나폴리 인근 베수비오 화산을 오르는 최초의 푸니콜라레를 만들기로 했는데, 당시 그곳의 관광 가이드들이 푸니콜라레 설치를 극렬히 반대했다. 그래서 시공자인 부자와 투자자들은 가이드들을 설득하고 시민들에게 푸니콜라레를 홍보하기 위해서 루이지 덴차라는 사람이 만든 노래가 ‘푸니쿠니 푸니쿨라’다.

▲ 나폴리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산 텔모성과 산 마르티노 국립박물관. 산 텔모성은 오랜 시간동안 감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유럽 최고라고 극찬받기도 한다. ⓒ이석원

▲ 나폴리의 든든한 '기댈 곳'인 베수비오 화산이 멀리 보인다. 해발 1281m로 유럽대륙 유일의 활화산이다. 산꼭대기에는 지름 500m, 깊이 250m의 분화구가 있다. 서기 79년 8월의 대분화로 폼페이를 죽음의 도시로 만들었다. ⓒ이석원

▲ 산타 루치아 항구 근처에 떠 있는 요트의 모습. ⓒ이석원

▲ 산 마르티노 국립박물관 정원에서 바라본 산타 루치아 항구의 모습이다. ⓒ이석원

스파카 나폴리에서부터 나폴리에 대한 조금 전의 부정적 인식이 바뀌기 시작하는데, 푸니콜라레를 타고 오른 산 마르티노 언덕의 광장에서는 비로소 나폴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더럽고 복잡하고 무서운 도시가 넓은 그림으로 잡히기 시작하면 이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중세도시의 정겨움이 펼쳐지는 매력적인 도시로 바뀐다. 게다가 한 쪽으로는 베수비오 화산을 품은 대도시에서, 또 다른 한쪽으로는 지중해를 품은 멋진 해양 휴양지가 되기도 한다. 산 마르티노 국립박물관 앞 광장과 그 위에 있는 산 텔모성(Castel Sant’Elmo)은 나폴리를 가장 아름답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은 굳이 산 마르티노 국립박물관 안에서 유물을 감상하기보다 광장을 둘러싸 낮은 담벼락에 앉아 나폴리 시내를 감상하기도 하고, 젊은 사랑을 만끽하기도 한다. 특히 산 마르티노 광장에서 보는 나폴리의 석양은 특별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나게 되는 잘 다듬어지고 꾸며진, 곱게 화장한 나폴리. 산 마르티노 언덕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 산타 루치아 항구 부근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곳엔 플레비쉬토 광장을 중심으로 레알레 궁전과 움베르토 1세 아케이드, 산 프란치스코 성당 등이 잘 정돈된 근세의 신도시를 이룬다.

▲ 움베르토 1세 아케이드는 1890년에 세워졌다. 이 아케이드를 세운 움베르토 1세가 마르게리따 피자의 주인공인 마르게리따 왕후의 남편이기도 하다. ⓒ이석원

▲ 아케이드의 내부에는 고급 부티크에서부터 기념품 가게까지 다양한 상점이 들어서 있다. 특히 이곳에는 세계적인 명화들의 모사화 상점이 많다. ⓒ이석원

▲ 움베르코 1세 아케이드는 단순히 상업의 공간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유희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석원

1890년 도시를 정비하면서 세운 거대한 상가 건물인 움베르토 1세 아케이드는 예나 지금이나 나폴리를 대표하는 쇼핑 타운이다. 철제 구조물이 받치고 있는 천정은 유리로 만든 돔으로 돼 있고, 아케이드의 내부는 늘상 사람들로 가득하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나서도 아케이드의 내부는 젊은이들의 유희로 가득하다.

소렌토와 카프리,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등으로 갈 수 있는 항구인 모로 베베렐로 항구에 접한 누오보성(Castel Nuovo)는 나폴리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다. 1282년 프랑스 앙주 가문의 왕 샤를 1세가 나폴리를 점령했을 때 처음 건설한 누오보성은 그 거대함 때문에 일종의 위축감이 들기까지 한다. 특히 해질 무렵 성 바로 아래에서 성을 올려다볼 때 목격하게 되는 연붉은 하늘은, 짙붉은 성벽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뭇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 프랑스 앙주가문의 샤를 1세가 처음 만들고 에스파냐 아라곤 왕국의 알폰소 왕이 완성한 누오보성. '새로운 성'이라는 뜻의 누오보성은 샤를 1세가 나폴리 왕국의 수도를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나폴리로 옮기면서 세운 것이다. ⓒ이석원

▲ 누오보성은 19세기 벽두 나폴레옹이 나폴리를 점령했을 때는 나폴레옹의 사령부와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석원

앙주 가문이 건설한 누오보성은 200여년 뒤 에스파냐의 아라곤 왕국의 손에 떨어지면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보완된다. 특히 성의 정문으로 쓰이는 개선문은 아라곤의 왕 알폰소가 자신의 모습까지 새겨 넣으며 나폴리 지배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통영을 가면 늘 듣는 말이 ‘한국의 나폴리’라는 말이다. 도대체 나폴리가 어느 정도로 아름다운 항구 도시길래 통영 위에 나폴리를 덮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나폴리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실제 겪은 나폴리는 완벽하게 2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세계 3대 미항이라지만, 배 위에서 바라본 것만 따져서는 감히 세계 제1의 미항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 하지만 쓰레기와 도둑, 무질서와 혼돈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이탈리아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는 도시.

▲ 나폴리에는 기원전의 시간과 고대를 거쳐 중세를 통과해 근세를 지난 현재의 시간이 공존한다. 멀리 중앙역 부근 높은 빌딩들의 무리는 나폴리가 현재도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도시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이석원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한다. “Vedi Napoli e poi muoia!”,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는 뜻이다. 그들은 왜 나폴리를 보고 죽으라고 했을까? 나폴리를 보기 전에 죽는 것은 억울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는 나폴리로 보고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라는 뜻도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외치고 있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고.

글 이석원 여행작가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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