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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이미 넘어갔는데 "단 1명의 인명피해도..."?


입력 2014.04.23 10:20 수정 2014.04.23 10:28        조소영 기자/김지영 기자

우왕좌왕했다는 정부, 무엇이 문제인가

'첫 보고' 무너지자 이후 대응도 '부실'

ⓒ데일리안 ⓒ데일리안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등 총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침몰한지 23일로 8일째가 되면서 지친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은 메말라가는 한편 사고 초기 미흡한 대응을 보였던 정부를 향한 ‘원망의 눈초리’는 짙어지고 있다. 사고 당시 정부는 왜 우왕좌왕했을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내야 할 관계 부처 수장 등은 무엇을 하고, 어떤 보고를 받고 있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가운데 ‘데일리안’은 지난 20일 공개된 세월호와 진도VTS(해양교통관제센터) 간 교신 내용과 지금까지 알려진 각 부처의 사건보고 시각 등을 토대로 당시 주요 인사들의 행적을 살펴봤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다시 짚어보자는 것이다.

배는 침몰중인데 '문자' 보고에...

16일 오전 8시 55분, 세월호는 이미 침몰 직전의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세월호는 이때 제주VTS(해양교통관제센터)에 “배가 넘어간다”고 신고했다. 8분 후인 9시 6분경에는 해경이 관할하고 있는 진도VTS와 교신, “침몰 중이니 해경을 빨리 부탁한다”고 말했다. 9시 17분이 됐을 때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세월호는 진도VTS에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규모 참사’ 그림자가 짙게 깔리던 순간이었다.

이로부터 8분 후인 9시 25분, 재난안전의 총괄사령탑 역할을 맡은 안전행정부에서는 강병규 안행부장관에게 유선전화로 해당 사고를 최초 보고했다. 세월호로부터 첫 신고가 들어온 지 30분만이었다. 안 장관은 충남 아산에서 열린 경찰간부후보 졸업 및 임용식 참석을 위해 경찰교육원장실에서 대기 중이었을 때 이 전화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21일자 ‘세계일보’에 따르면, 한 행사 참석자는 “강 장관이 행사 참석에 앞서 경찰교육원장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다행이다’고 말해 승선자 전원이 구조됐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짐작이 갔다”고 말하고 있다. 해경은 비슷한 시각(9시 30분) 사고 해역에 도착해 세월호에서 빠져나온 승객들 위주로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후 강 장관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문자’로 ‘세월호 사고’를 처음으로 보고했다(9시 31분). 상황은 이때부터 꼬인 것으로 추측된다. 배는 침몰중이고, 구조 활동은 어려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강 장관은 ‘사실상 부실보고’에 따라 사고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문자 보고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사람이 잘못된 답을 말하면 그 뒷사람도 줄줄이 틀린 답을 말할 가능성이 높은 한 종영된 TV프로그램의 게임처럼 이후 상황은 이 보고에 맞춰 흘러가는 모습을 보였다.

9시 40분 해양수산부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가동한 후 41분부터 세월호는 진도VTS의 응답 요청에 묵묵부답이 됐다.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들은 9시 37분~38분 마지막 교신 직후 탈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교신 내용은 “침수상태 확인 불가하고 일단 승객들은 좌현으로 탈출할 사람만 탈출하고 있다”로 급박했다. 안행부는 이때서야(9시 4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시켰다.

상황은 화급했지만, 이날 알려진 강 장관의 모습은 느긋했다. 10시에 있을 경찰 행사 참석 전 가진 간담회에서 그는 해경 간부로부터 다시 세월호 침몰 사태에 관한 보고를 들은 것으로 보인다. 이 간부는 이날 행사에 해양경찰청장상을 수여하기 위해 참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 장관은 이 간부가 “헬기를 이곳으로 오게 할까요”라고 건의하자 “해수부 소관인데 안행부가 너무 나서면 해수부장관이 같은 장관으로서 (입장이) 어려울 것”이라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1일 안행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와 관련, 헬기 사용을 거절한 적도, 해수부장관의 입장에 대해서도 얘기한 바 없으며, 행사에 끝까지 참석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당초 행사종료 시간은 11시였지만 헬기 준비시간을 감안해 10시 35분에 종료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강 장관이) ‘초기 보고가 들어와 상황 파악 중’이라는 내용만 들었을 뿐 사고 현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은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다시 실망을 안겼다. 결국 강 장관에게 대규모 인명피해가 날 시급한 상황에 대한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시인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16일 오후 정부서울종합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 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16일 오후 정부서울종합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 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 정보마저 '구식'?

박근혜 대통령은 중대본이 가동된 9시 45분을 전후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최초 보고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이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철저한 수색을 지시했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한 시각이 10시 30분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다.

단, 안행부로부터 청와대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고가 보고됐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안행부는 9시 31분께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에 사고 관련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련 질문에 “내가 아는 게 없다”며 확답을 피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시작부터 잘못된 보고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가장 최신 정보에 맞닿아야할 대통령이 배가 사실상 침몰한지 1시간여 지난 시점에서야 “여객선의 객실과 엔진실까지도 철저하게 확인해서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때는 배가 상당 부분 기울고,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한 시각으로 추정되는 9시 37~38분을 지난 시점이다. 결국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즉각 잠수대원들을 투입시켜 실종자를 수색하도록 하는 게 맞는 지시다.

이와 관련, 16일 오후 “지금 상황(실종자 속출)으로 봤을 때 대통령이 오전에 보고를 잘못 받은 게 아닌가”라는 지적에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지시는 구조에 만전을 기하라는 의미였다고 선을 긋기는 했지만 이후 상황을 살펴본다면 첫 보고가 잘못됐다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일부 맞다면, 이외에도 어떤 ‘부실보고’에 따라 청와대가 ‘구식정보’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박 대통령의 움직임 이후 각 부처는 좀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더 많은 인명을 구할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간 뒤였다. 10시 35분경 강 장관은 경찰 행사 참석 후 헬기를 통해 현장으로 이동했고, 11시 10분 이주영 해수부장관도 현장으로 움직였지만, 상황은 뒤엉킨 상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경기교육청이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 문자를 날린 데 이어 중대본은 이날 밤 8시 45분까지 탑승·구조·실종자 수 등을 수도 없이 바꾸며 가족의 애간장을 녹였다. 앞서 박 대통령이 오후 5시 30분 중대본을 방문해 “구조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지만, 무의미했다.

가족들의 성난 마음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향했다. 중국·파키스탄 순방 후 밤 9시 50분 전남 무안공항에 귀국한 정 총리는 10시 20분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가진 후 17일 오전 12시 30분경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에 들렀다. 정 총리는 여기서 거친 항의와 함께 물세례 등을 받았다.

가족들의 본부 간 혼선이 크다는 지적이 있고 나서야 이날 오전 9시 정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구성됐다. 오후 1시 30분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구조 현장을 방문해 독려했고, 5시 20분에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위로 방문했다.

이날 박 대통령과 함께 단상에 선 김 청장에게는 욕설이 쏟아졌다. 가족과의 대화를 마치고 단상을 내려가는 박 대통령을 향해서는 “(공무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가지 말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부실보고부터 시작된 정부의 ‘갈지(之)자 행보’에 대한 외침이었다. 생존자에 대한 희망의 끈을 서서히 놓고 있는 지금도 이 사태는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조소영 기자 (cho1175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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