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베를린 올림픽의 슬픈 금메달의 주인공이자 그 시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손기정이 세월의 무상함속에서 우리들 기억 속에 점점 잊혀지거나 왜곡되고 있어 주변의 안타까움이 더해가고 있다.
손기정을 기념하기 위해 2005년 6월에 발족된 재단법인 손기정기념재단은 유품을 보존·관리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설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열악한 실정.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과 월계관은 현재 육영재단에 기증됐고 나머지 유품들은 손기정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다.
30일 기자가 찾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월드컵경기장에 위치한 손기정 기념재단은 현재 약 20평쯤 되는 좁은 사무국 한 쪽에 창고라는 팻말을 붙이고 그 속에 손기정의 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유품이 몇 개인지 그 수가 아직 파악된 상태는 아니다. 재단의 예산과 인력상황이 유물을 관리하기에는 영세한 수준이라 아직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유품의 부식이 눈에 띠게 진행되고 있어 재단 사무국 직원들의 고민이 말이 아니다.
옛 사진과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노트는 종이가 너덜너덜 해지고 사진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손기정은 1930년대 청년시절부터 자신과 관련된 기록과 사진, 우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집을 해왔다.
손기정기념재단 사무국에는 각종 상패와 액자, 메달, 기념품을 비롯해 평소 그가 입었던 옷, 신발, 안경 등 생활용품들도 보관돼 있다.
최근 일각에서는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출전 당시 일장기를 가슴에 붙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친일파라고 부르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손기정이 이후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 서울특별시 육상경기연맹 이사장,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사실로 단순히 체육계의 거목으로만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손기정의 유족들과 지인 및 그의 팬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있다.
손기정의 외손자 이준승씨는 “우리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생활속에서 억압받은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영웅이었다”라며 “그런 분이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다 못해 이제는 ‘양정고등학교 선배’ ‘체육계의 원로’ 심지어는 ‘친일파’ 로 인식이 폄하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런 이유에서 그의 유족들과 주위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고 위해 2005년 손기정기념재단을 발족했다.
손기정기념재단은 손기정기념건립, 사이버 기념관 운영, 손기정 선수관련 추모모임, 각종 대회 주최 및 후원사업, 육상꿈나무 지원사업 등을 목적사업으로 하고 있다.
손기정기념재단은 올해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7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지난 9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손기정 동상 제막식’행사가 열렸다.
당초 기념재단은 손기정 동상을 베를린 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잠실 메인스타디움에 동시에 세우려했으나 예산확보에서 어려움을 겪어 국내행사로만 축소하게 됐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오른 모습을 담은 빛바랜 사진.
베를린 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왼쪽)과 승리를 기념한 투구. 투구는 국가보물 994호로 지정돼 있다.
평소 수집이 취미였던 손기정옹이 자신의 기사가 담긴 기록물을 꼼꼼하게 스크랩해두었다.
창고 한켠에 정돈되지 못하고 방치된 유품들. 좁은 공간과 적은 인력으로 손기정옹의 유품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손기정은 ‘평화’의 키워드”
재단법인 손기정 기념재단 이준승 사무총장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
“손기정은 ‘평화’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이준승씨는 손기정의 외손자이자 손기정 기념재단 사무총장이다. 이 사무총장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역사 속에서 의미하는 바를 ‘평화’라고 표현했다.
“손기정이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약소민족이 이루지 못한 꿈을 마라톤을 통해 나타낸 ‘염원하는 평화’를 상징했다면 해방이후에는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의 모습 속에서 ‘남북의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는 최근 손기정에 대한 친일파 논란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다. 이 사무총장은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다는 사실 하나로 손기정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올림픽 출전당시 마라톤 경기에서 마지막 메인스타디움으로 들어오면서도 전력질주를 하는 모습, 시상대에 올라서도 고개를 숙이고 침울한 표정을 보인 점이나, 싸인을 할 때 꼭 korea라고 서명했던 사실들이 어떻게 친일파와 연결될수 있는가”라며 반문했다.
이 사무총장은 “손기정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생활속에서 억압받은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영웅으로 인식됐다”라며 “그런 분이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다 못해 이제는 ‘양정고등학교 선배’ ‘체육계의 원로’ 심지어는 ‘친일파’ 로 인식이 폄하되고 있다는 사실은 유족들이나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역사 속에서 점점 축소되는 손기정을 세상에 알리고 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해 기념재단을 통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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