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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낙인' 교학사 교과서 죽이기 인민재판


입력 2014.01.03 16:55 수정 2014.01.03 17:02        이충재 기자

저자 이명희 "교학사 선택이 죄짓는 일처럼 됐다" 개탄

보수시민단체들 "민주주의 후퇴 주장하며 비민주적 행태"

3일 오전 서울 강북구 창문여고 앞에서 서울지역 진보 교육단체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3일 오전 서울 강북구 창문여고 앞에서 서울지역 진보 교육단체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교과서 선택’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교학사 죽이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보수진영에선 일부 세력이 교학사 교과서에 의도적으로 ‘친일-독재 찬양’이라는 부정적인 굴레를 덧씌우고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학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3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교학사 채택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후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인데,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 봐야 한다”며 “지금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대한 인민재판을 하는 것보다 더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검인증을 통과한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을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며 “오죽했으면 정상적으로 교학사를 선택한 학교에서 다시 채택철회를 하고 있겠는가”라고 개탄했다.

"교학사 선택한 고교 교장 '공황상태'…정상적인 채택 불가능한 상황"

특히 이 교수는 전날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한 고교 교장이 “견디기 힘든 고충”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뒤 각종 압박에 시달리며 “잠도 못자고 거의 공황상태였다”는 것.

이 교수는 “그 교장선생님은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교과서 선택을 했는데도 (외부의 압박 등으로 인해) 너무 힘들어 하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몇 개의 학교라도 교학사를 선택한 게 신통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각종 단체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한 학교에 찾아와 항의하고 압박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교학사를 선택 하겠는가”라며 “민주주의 후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그럴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고교 교과서 채택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나라학교에서는 학교설립 주체가 교과서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반면 이를 피고용자들이 선택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라며 “채택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각 학교 별 교과서 채택 작업은 ‘교과 교사의 추천→학교운영위원회 심의→학교장의 확정’ 등 3단계다.

그는 “학교를 기업으로 보자면, 인풋(input)결정을 노동자가 하는 셈”이라며 “이 같은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학사에 대한 '마녀사냥'이고 '신메카시즘'이다"

현재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교 대부분이 외부의 ‘항의’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채택포기 및 재검토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비롯한 진보 시민단체에선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경희 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종북몰이 하지 말라’고 외치던 이들이 현재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한 학교를 향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며 “‘교학사 선택 = 친일 학교’라는 신종 메카시즘”이라고 비판했다.

“교학사 교과서가 나오기 전부터 ‘안중근은 테러리스트, 유관순은 여자깡패, 김구는 탈레반’이라고 서술했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나왔는데, 이것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는 지난정부에서 벌어진 ‘광우뻥’ 사태와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큰 병에 걸릴 것처럼 호도했는데, 국민들의 뇌리에는 실제 그 거짓이 자리 잡았다. 이번에도 사실 확인도 없이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이라는 인식이 잡힌 것이다.”

그는 대외적인 상황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한일 간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친일 교과서’공세가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학사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쓰였고, 그래서 검증을 통과했다”며 “정말 친일 입장에서 서술을 했다면 교과서가 검증을 통과했겠느냐”고 되물었다.

"'교학사 = 친일' 인식 굳어져 먹히지 않는 상황"

바른역사국민연합은 “전교조와 좌파시민단체, 민주당, 좌파언론이 집필되지도 않은 교학사교과서를 ‘친일, 친미, 독재옹호 교과서’라고 호도한 결과로서는 당연한 귀결”이라며 “교육부의 권고를 모두 수용해 수정 및 보완되었음에도 채택을 문제 삼는 것은 전교조나 좌파언론의 전위대에 불과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좌편향 된 한국사교과서를 그냥 밀어붙이자는 집단의 논리에 학부모마저 부하뇌동해서 되겠는가”라며 “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역사문제에 있어 객관적인 판단을 해야 하고, 교학사교과서를 두고 진영논리로 마녀 사냥하는 집단행위를 이제 그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특정 문장을 인용해 ‘친일 낙인찍기’를 한 것이 민족감정을 자극했고,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이다’는 인식이 굳어졌다”며 “이제는 사실을 말하려고 해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교학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이 저조해도) 조금도 흔들릴 필요가 없다”며 “교학사 교과서 하나가 있음으로 인해서 (나머지 7종 교과서들이) 얼마나 좌편향인가 비춰주는 거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은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런 논란의 과정에서 역사의 진실에 비판정신이 녹아들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 원장은 “특정세력에 의해 역사가 쓰이면 그것이 좌든, 우든 간에 역사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며 “그런 면에서 역사가 어느 특정세력의 정파적 편견에 사로잡혀 마음대로 재단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교학사 채택 고교 '채택포기'잇따라…학교측 "학부모 반대 무시 못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교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발에 잇따라 ‘채택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3일엔 서울지역 진보 교육단체가 교학사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진 학교에 대해 채택철회를 촉구하자 해당 학교 측이 “다른 교과서를 선정했다”며 진화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학교측은 “학부모들의 반대를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가장 많이 채택한 경기도 지역의 경우, 이날 6개 고등학교가 모두 이를 철회하거나 사실상 백지화했다.

양평 양서고는 이날 오전 교과협의회를 열어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다른 교과서를 2014학년도 한국사 교과서로 결정했다.

수원 동우여고도 긴급 교과협의회를 열고 교학사 채택철회를 결정했다고 밝혔고, 여주 제일고는 학교운영위 등을 거쳐 다른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했다.

동우여고에서는 지난 2일 오전 일부 학생들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항의 대자보를 붙였고, 한 국사 교사가 ‘외압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동원고에서도 3일 오전 학생들이 작성한 항의 대자보가 붙었다.

이에 일부 지역 교육청은 일부 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는 과정에 외압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특별감사 실시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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