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오는 자동차들은 모두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제공하는 스포츠 쿠페도 있고,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하는 고급 세단도 있는가 하면,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고연비 차량도 있다.
이들에게 각각의 주종목이 아닌 부분에서의 능력을 놓고 평가를 내리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스포츠 쿠페에게 ‘왜 연비가 그따위냐’고 비난하는 것이나, 고연비 차량에 ‘허약하다’는 혹평을 내리는 건 ‘야구 선수의 서전트 점프 능력’을 논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다.
르노삼성의 소형 SUV QM3는 ‘극단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만큼 연비에 치중한 차다. 출시 전부터 르노삼성은 QM3의 ‘디자인’과 ‘연비’에 초점을 맞춰 마케팅을 진행했고, 퍼포먼스나 승차감, 정숙성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 차를 평가하는 데 있어 우선시해야 될 부분은 회사측에서 내세우는 장점의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것이다.
지난 6일 QM3를 시승하며 연비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소형 디젤차의 특성을 직접 체험해봤다. 시승 코스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동탄신도시까지 용인서울고속도로를 거치는 왕복 약 100km 구간이었다.
반환지점까지는 주최측에서 ‘연비대회’ 타이틀을 내걸어 승부욕을 자극한 관계로, 도로 정체를 유발시킬 정도로 연비운전을 했다. 오르막길은 조심스럽게 올라가고 평지에서도 시속 80km를 넘지 않았다. 내리막길에서는 아예 가속페달에서 발을 뗐다.
그렇게 해서 나온 연비가 27.0km/ℓ. 그러고도 1등은 못했다. 다른 시승자 중에 29.9km/ℓ를 기록한 이도 있었다. 그나마 연비 측정기의 한도가 30km/ℓ 미만으로 제한(대체 왜 그래놨는지 모르겠지만)돼 있기 때문에 그 정도가 나왔단다.
물론, 이걸 QM3의 객관적 연비라고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부러 연비가 높게 나오도록 운전을 했으니.
출발지점으로 복귀하는 길은 연비를 신경 쓰지 않고 평상시 습관대로 운전했다. 경로도 주최측에서 정해 놓은 길을 벗어나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서울 인근의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은 평일 대낮에도 정체가 심한 구간이다. 이날도 여지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정체가 조금 풀릴 기미가 보이면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차선을 옮겨 다녔다. 평상시의 출퇴근길과 큰 차이가 없는 주행 패턴이다.
중간에 판교 JC에서 빠져 시원하게 뚫린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로 진입한 뒤에는 가속페달을 마구 밟으며 그동안의 정체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누가 생각해도 ‘연비’는 포기한 운전 패턴이지만, 놀랍게도 연비는 19~20km/ℓ를 오가고 있었다. 반환점에서 리셋한 연비 측정기를 출발지로 복귀한 후 최종 확인한 결과 20.3km/ℓ로 표시됐다.
전반적으로 엔진 세팅이 도심 주행에 최적화된 느낌이다. 보통 도로가 막히면 완전히 멈춘 차체를 다시 움직이는 일을 반복하느라 연료가 많이 소모되게 마련이지만, 저속에서 높은 견인능력을 발휘하는 디젤엔진과 QM3의 가벼운 차체는 같은 상황에서도 연료 소모를 최소화해준다.
오히려 고속 구간에서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으며 적정 능력 이상의 속도를 끌어내는 상황에서 연비가 급격히 떨어진다.
물론, 이처럼 연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가속능력은 부족하다. 사실 90마력짜리 1.5ℓ 디젤엔진에 큰 기대를 건 건 아니었지만,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는 느낌은 국산 경차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QM3는 스피드를 즐기라고 만든 차는 아니다. 도심에서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난한 수준이다. 주말 나들이용으로도 부족함은 없다. 어차피 주말에 뻥 뚫리는 고속도로는 찾기 힘드니.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동급 형제차인 닛산 쥬크와는 파워트레인 측면에서 완전히 상반된 특성을 보인다.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은 쥬크는 덩치 대비 뛰어난 퍼포먼스를 내지만, 덩치 대비 과도하게 연료를 소모하기도 한다.
QM3 인테리어.ⓒ르노삼성자동차
외부 디자인은 이미 출시 전부터 국내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굳이 호불호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특히 차체와 루프, 그릴, 범퍼 등을 각각 다른 색으로 치장한 컬러는 가뜩이나 튀는 디자인을 더 튀게 만들어준다.
투톤 컬러는 실내 디자인에도 적용됐다. 시트와 대시보드 센터페시아 등이 모두 블랙과 레드, 혹은 화이트로 외부 색상과 ‘깔맞춤’돼 있다.
차체가 작은 소형 SUV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트렁크와 실내 수납공간은 부족한 편이다. 트렁크는 접이식 유모차 하나 넣기도 힘들 정도의 크기고, 그나마도 슬라이딩 방식의 뒷좌석을 뒤로 밀면 더 좁아진다.
센터콘솔은 음료수 병 하나 들어갈 정도 크기로, 사실상 수납공간이라기 보다는 암레스트(팔걸이) 역할이다. 그나마 ‘원판’인 르노 캡쳐에는 센터콘솔이 없었으나, 암레스트 기능을 원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QM3에만 접이식으로 추가로 달아놓은 것이라고 한다(실제 닛산 쥬크의 경우 센터콘솔 암레스트가 없어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QM3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모습. 설계상 없던 센터콘솔을 추가로 장착해 좌석 등받이 각도 조절 레버를 조작하기 힘들다.ⓒ데일리안
원래 없던 센터콘솔을 달아놓은 덕에 불편한 점도 생겼다. 앞좌석 등받이 각도조절 레버가 운전석은 오른쪽, 조수석은 왼쪽으로 붙어 있는데 센터콘솔이 레버를 가려 조작이 쉽지 않다.
수납공간이 부족한 대신 조수석의 글로브박스는 서랍식으로 장착해 활용도를 높였다.
총평을 내리자면 QM3는 전형적인 도심형 차량이다. 연비가 좋으니 출퇴근용으로 부담 없고, 튀는 디자인으로 개성도 표출할 수 있다.
대신, 수입차에 대해 막연하게 기대를 갖는 뛰어난 동력성능이나, 일반적인 SUV가 가진 넉넉한 적재능력은 포기해야 한다. 굳이 5명을 태우려면 태울 수 있지만, 2명 이하가 탑승해야 가장 편한 차이기도 하다.
가격은 SE 2250만원, LE 2350만원, RE 2450만원으로 3가지 트림이지만, 사전 예약주문 물량 중 3분의 2 가량이 최상위 트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가격은 2450만원으로 봐야 한다. 내비게이션 등 주요 편의 사양이 RE 트림에만 장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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