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국방부 차관(오른쪽)과 왕관중(王冠中)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 28일 오전 국방부에서 열린 제3차 국방전략대화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미국이 지지한데 이어 중국이 이어도를 포함한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을 일방적으로 설정해 선포하면서 외교·안보 분야와 관련, 한국이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때문에 지금 우리는 각각의 외교 이슈마다 상대국들에 휘둘리는 양상을 보이기보다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장기적인 외교·안보 로드맵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앞서 우리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청 의혹 이슈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견고했던 기존 한미동맹을 고려했을 때 미일간 신(新)밀월관계 형성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민감한 사안에 대해 뚜렷하지 않은 태도로 이익을 취한다는 국제정치학 용어)’을 견지하며 외교 이슈 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서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정부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중국마저 기습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하게 되면서 우리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의 실리는 찾지 못한 채 미중 간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진 격’이 아니냐는 원색적인 비난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특히 앞서 28일 우리 정부가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해 조정을 요구했으나 사실상 거부당하면서 논란의 불씨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 상당수는 현 사태와 관련, 정부가 매 사안마다 지나치게 감정적·즉각적인 대응을 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외교·안보 로드맵을 구축, 일관되게 독자 노선을 걸어야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29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CADIZ 논란의 핵심은 동북아 패권을 놓고 중국과 미일간 일종의 기 싸움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이를 중국이 우리나라를 겨냥한 영토분쟁으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이어 “현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우리 국민에게 침착한 자세로 이것이 절대 영유권 문제가 아님을 설명하되 자칫 (CADIZ 설정에 따라) 우리의 안보가 침해받을 수 있는 이어도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과 일본에 분명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이번 중국의 행보를 두고 지나치게 앞서 기우를 나타낸 부분도 있다”며 “통상 중국은 미일동맹에 비해 국력이 떨어지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향후 향상될 국력만큼이나 자신들의 안보영향력도 높아질 것을 예상, 그 포석으로 이 같은 행보를 보이며 미국과 일본에 일종의 (경고)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 센터장은 “그러나 중국은 어느 정도 메시지를 전달한 후 긴장을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한미일 비행기가 중국 CADIZ 안에 사전 통보 없이 진입했지만 중국은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즉, 중국은 구획 설정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을 뿐 실제로 추후 조치는 실행하지 않는 선에서 충돌을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28일(현지시각) 중국이 CADIZ에 대해 엇갈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서 한미일이 사전 통보 없이 전투기를 이 구역에 내보낸 데 대해 중국이 예상보다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전문가들 “정부, 미중에 일희일비 말고 ‘마이웨이’ 가야”
아울러 전문가들은 외교·안보 사안마다 정부가 ‘급한 불끄기 식 처방’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마련해 주변국에 휘둘리는 양상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과 미일이 서로 패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각 국에서 주장하는 사안마다 우리가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그런 모습을 보인 근본적인 배경에 대해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가령, 이번 중국의 CADIZ 설정은 우리보다는 미일을 겨냥한 해양전략의 일부”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1990년대부터 해양자원 개발과 해양 산업에 관한 법령들을 제정해왔다. 최근에는 ‘국가해양사업발전 12차 5개년 계획’과 ‘전국해양경제발전 12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해양강국을 선언했다. 중국은 2020년까지 해양강국을 목표로 2011년 정부 주도로 산둥성, 저장성, 광둥성을 각각 블루경제구, 해양경제발전시범구, 해양경제종합실험구 등 3대 해양경제종합실험구로 지정해 해양플랜트 같은 해양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이 우리의 영토문제가 맞물리는 건 문제지만 해당 사안은 사안대로 해결하되 사안마다 외교·안보 입장을 번복하는 것을 불필요하다는 것이 조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결국, 우리 정부가 미중과의 외교 전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에 의해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독자 외교·안보 로드맵을 갖고, 일괄적으로 시행해나가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새누리당과 정부는 중국 CADIZ 내 이어도 설정과 관련, 12월 3일 당·정협의를 열고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이어도를 포함시킨 확대 방침을 확정할 계획인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앞서 당ㆍ정ㆍ청은 중국이 28일 한중 국방전략대화에서 CADIZ를 재조정하라는 국방부의 요청을 거부한 뒤 서울 여의도연구원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논의한 끝에 이어도를 포함해 KADIZ를 확대해 고시하는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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