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까지 끌어들인 엽기 대한민국 잔혹사

이충재 기자

입력 2013.11.30 10:14  수정 2013.12.01 10:10

<교과서 논란 어디로 가나③>'DJ정부 전엔 모두 독재-탄압'

"사대매국에 미쳐 날뛰어" 북한까지 가세 좌파교과서 옹호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현대사를 독재와 학살의 역사로 쓰고 있다.”

‘역사 교과서 전쟁’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쟁이 시작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변혁을 겪은 굴곡진 역사의 배경이 펼쳐진다. 특히 1980년대 민주화 물결이 만들어낸 사회적 파장은 역사학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군사정권에 맞선 반작용으로 역사학계의 방향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외눈박이 사학’의 역사가 시작된 근원이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가속화된 사학계의 쏠림현상은 2000년에 작성된 제7차 교육과정의 한국근현대사 준거안에서 노골적인 편향성을 드러냈다는 게 우파학자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당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은 고등학교 국사와 달리 교과서 검정제가 도입됐다. 국정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누적된 국사학계의 관성이 한꺼번에 표출됐다. 이를 두고 한 우파학자는 “우리의 역사를 ‘학살의 역사’로 쓰고 있다”며 개탄했다.

2000년대 사학계 "좌파시각이 국사교육계 장악해 역사를 정치도구화"

2000년대 사학계는 최초의 정권교체와 함께 또 한번의 편서풍을 타게 됐다. 2002년에는 한쪽 시각으로 쏠린 내용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학생들의 손에 들리게 됐다.

정경희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서 ‘한국사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에서 “좌파의 시각이 국사교육계를 장악해 역사를 제멋대로 정치도구화 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역사교과서의 좌편향은 1997년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2000년에 들어서서 급속화되고 잇었다. 그 중심에 금성출판사가 있었다. 이에 대항의 의미로 2005년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교과서포럼이 출범해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의 대안교과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사진 위쪽은 지난 9월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 요구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금성출판사 등 7종 역사 교과서 저자들이고, 사진 아랫쪽은 지난 2008년 교과서포럼이 대안교과서를 발행할 당시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특히 금성출판사는 좌편향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당 출판사 교과서 내용이 발단이 되어 2004년 이후 한국근현대 교과서를 둘러싼 이른바 ‘교과서 파동’이 재점화 됐다.

당시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통일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대한민국을 건설한 세력을 조직적으로 폄하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1987년 이전의 모든 정권을 독재라고 비판하면서도 북한의 독재체제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법’이라면서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다”는 등 우파학자들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았다.

다시 멀리서 짚어보면,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에 편승해 ‘민중사학’이라고 불리는 좌편향역사학이 대두했고, 그 파급효과가 1990년에 발행된 제5차 국정교과서부터 조금씩 드러내다가 제7차 교육과정의 검정 교과서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이르러서는 노골적으로 ‘본색’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금성교과서 좌편향 논란에 우파 학자들 '대안교과서' 출간

우선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04년 10월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일부가 광복 이후 남한 역사를 반미 친북 반재벌의 시각으로 일관되게 기술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터였다. 권 의원의 문제제기 이후 언론들이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사회적 파장으로 확대됐다.

이에 우파 학자들은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일부 한국근현대 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기회주의가 득세한 실패의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결국 2005년에 박효종, 전상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를 중심으로 편향된 교과서를 비판하는 지식인 모임인 ‘교과서포럼’이 창립됐고, 포럼은 2008년에 대안교과서를 출간했다.

이어 2008년 9월 교과서포럼과 자유교육연합 등 우파 단체가 교육과학기술부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을 건의했고, 이를 수용한 교과부는 2008년 10월 국사편찬위원회가 제시한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금성출판사 등 교과서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 6.25전쟁 발발원인, 이승만 정부 폄하 등과 관련된 서술 55개 항목의 수정을 권고했다.

‘역사교과서 전쟁’에 북한 개입 "사대매국에 미쳐 날뛰는 사이비학자들"

‘역사교과서 전쟁’은 북한까지 개입하며 확전됐다. 2005년 1월 25일 교과서포럼이 출범하자 사흘 만에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인터넷 선전-선동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사이비학자들의 반민족적 궤변’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교과서포럼을 맹비난했다.

성명은 “남조선 학생들의 교과서에 주체사상이 실리고 주체사상이 구현된 우리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내용이 반영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며 “사대매국과 반북대결에 미쳐 날뛰는 이런 사이비 학자들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교과서 전쟁’에 대한 북한의 개입은 계속됐다. 총구의 방향은 특정 세력에 대한 공세와 지원사격으로 뚜렷하게 갈렸다.

2008년 3월 교과서 포럼이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발간하자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이를 두고 ‘보수세력의 용납 못할 역사왜곡행위’라고 또 다시 비난했다. 조선중앙방송은 “(대안교과서가) 과거 일제의 군사적 강점을 합병으로 미화했으며 남조선 미국 호상방위조약이 체결된 것을 방위를 위한 정당한 조치로 찬양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포럼이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친북좌파 성향과 그에 따른 역사 왜곡을 주장하자 일부 ‘한국근현대사’교과서를 감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교과서 포럼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2010년까지 계속된 논란…6.25전쟁 둘러싼 편향된 해석

교과서 파동을 불러온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2009년 새 교육과정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2010년 검정을 통과한 6종의 한국사 교과서가 2011년부터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근현대사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되면서 가장 편향성이 심각하게 제기된 것이 바로 6.25 전쟁이다. 사진은 지난 6월 25일 중국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이 6·25 발발 63주년을 맞아 대외 선전판에 붙인 사진. 미군 포로를 '미제 고용병'이라고 표현한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우파학자들은 “새 한국사 교과서에서 편향성이 더 심해진 부분도 있다”며 대표적인 서술 내용으로 ‘6.25 전쟁 중의 민간이 희생’에 대한 부분을 지적했다.

우파학자들은 제7차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와 2010검정 한국사 교과서 총 12종 중 대다수가 6.25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 희생문제를 다루면서도 ‘인민재판’이라는 용어를 명시하고 있는 교과서는 3종(7차 중앙교육, 미래앤컬쳐 한국사, 천재교육 한국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대신 남한과 북한 중에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알 수 없는 용어인 ‘학살’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고 했다. “남한이 북한의 남침에 의한 전쟁 피해자라는 사실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금성출판사의 경우, 6.25전쟁 중 아군에 의해 이뤄진 민간인 희생을 ‘학살’이라는 용어를 써서 부각시키면서도 적군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게 기술하고 있다”며 “교과서의 이러한 편향적 서술은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더욱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신천 학살' 역사적 사실 외면한 채 북한주장 그대로 담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과 접근방식에 있어서도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천재교육, 삼화출판사, 미래앤컬쳐 3종 교과서는 금성출판사와 함께 민간인 희생 부분을 ‘학살’이란 용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우파학자들은 “현행 한국사 교과서 가운데 일부에선 6.25전쟁 중의 민간인 희생에 대해 북한과 마찬가지로 학살이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과도한 서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는 국군과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이른바 ‘거창사건’과 ‘노근리사건’을 설명하면서 북한군과 중공군에 의한 대한민국 국민의 학살 행위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남북의 갈등 문제에 대한 편파적 해석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신천 학살’은 역사적 논쟁이 있는 사건이지만, 역사교과서에선 체로 거르지 않고 한쪽의 해석으로 설명된 내용이 실렸다.

신천은 북한이 미국이 ‘인민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해 이른바 ‘신천학살’로 알려진 지역이다. 북한 주장에 따르면, 신천학살이란 “1950년 10월 7일부터 12월 7일까지 미군이 신천군 주민 1/4가량을 잔인하게 학살한 만행”이다. 하지만, 북한의 주장과 달리 ‘신천학살’은 미군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해당 지역의 기독교들과 공산주의자 간의 대립, 좌익과 우익의 상호투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주장이 동시에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 수록한 한국사 교과서

결국 북한에서는 ‘신천대학살’이라고 부르지만, 남한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극명하게 상반되어 있어서 민감한 부분으로 기록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정확한 사실 관계를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가 1951년 그린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현재 프랑스 파리 피카소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데일리안

북한에선 ‘신천학살’사건을 반미주의교육의 대표적인 사례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01년 11월엔 조선중앙방송에서 황해도 신천군에서 한국 전쟁 중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59구의 유해가 새로 발굴됐다고 보도했고, 이를 미군이 저지른 학살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신천군에 신천박물관을 설립해 반미주의교육의 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천학살’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형인 가운데, 미래앤컬쳐와 천재교육의 교과서가 6.25전쟁 당시 양민학살에 대해 서술하면서 ‘신천 학살’을 묘사한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을 실은 것이 문제가 됐다.

이 그림은 6.25전쟁에 미국이 참전한 것을 비난하던 프랑스 공산당이 반미선전을 위한 작품을 공산당원인 피카소에게 의뢰하면서 제작되었다. 즉, 이 그림은 프랑스 공산당의 주문을 받은 피카소가 신천학살의 주범이 미군이라는 북한의 선전을 그대로 믿고 제작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북한의 선전선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미래앤컬쳐스 교과서의 경우, 해당 그림과 함께 “갑옷을 입은 군인들이 맨몸의 여성과 어린아이를 총과 칼로 공격하는 모습은 전쟁의 참상과 공포, 인간성 파괴 등을 표현하고 있다”는 해설을 곁들였다.

타깃은 '미국-이승만-박정희'…민주주의 역사의 시작은 'DJ부터'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선 기존의 국사 과목이 한국사로 과목명이 변경됐다. 이에 따라 2010년부터 검정을 거쳐 한국사 교과서 6종이 최종 선정되어 2011년부터 고등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한국사 교과서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보다 그 편향성이 더욱 심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우파학자들은 이를 두고 “제7차 교육과정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민중사학자들과 전교조 및 전역모 교사들이 문제의 한국사 교과서에 집필진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민중사학자들은 6.25전쟁을 ‘학살백화점’이나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에 비견되는 집단학살로 인식하고 있다. 그들이 6.25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집단학살의 잔혹성을 강조함으로써 그것이 국가 폭력이요, 정치적 집단학살이라고 강변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당시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민간인 집단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학살과 관련해 미국에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교학사 역사교과서 대표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좌파교과서가 대한민국을 흔드는 방법은 우리의 근본적인 이념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별거 아닌 이념이나 반공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키고, 참된 민주주의는 멀었다는 것이 좌파의 기본 전략”이라고 말했다.

특히 권 교수는 “좌파교과서에선 역대 정권에 대해선 불명예 뒤집어씌우기 전략을 하고 있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부터 독재였고, 40여년의 독재를 종식하고 김대중 대통령부터 민주적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했다.

좌파학자들이 교과서를 통해 ‘청소년들을 좌파적 이념에 빠지게 하고’ 결국 대선과 총선 등에서 좌파가 승리하는 기반을 닦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민국 잔혹사’를 부각시키기에 바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역사의 정치화’는 어느쪽에서 손을 뻗은 것이건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게 현재 ‘역사교과서 전쟁’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각이다. 군사정부 역사교육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교단의 움직임은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로 마침표가 찍혀야했지만 그 관성이 오래도록 지속됐다. 그래서 1980년대 민주화의 변혁과 함께 시작된 사학계의 쏠림 현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되짚어 봐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상황은 좌파세력이 민족주의를 통해 정체를 부정하고, 감성적인 측면을 강하게 동원해 역사의 이성적인 고찰이 어렵다”며 “좌파 민족주의세력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한, 대한민국의 정통적 역사는 끝내 쓰일 수 없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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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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