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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한복 외교' 국익에 도움 안된다


입력 2013.11.02 10:21 수정 2014.02.11 11:17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방한한 외국 원수가 그랬다면...

선진국일수록 제나라 의상을 다른 나라가서 자랑 안한다

TV에서 돼지나 닭 등 가축이나 야생동물 사육장의 스트레스로 인해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을 보여주며 동물학대를 고발하고 있다. 계속 한 곳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가 하면 제 꼬리나 다리를 뜯어먹기도 하고, 심한 경우 제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다. 가끔은 작금의 한국 정치판과 시민단체들의 멱살잡이를 보고 있노라면 흡사 야생동물 집단사육장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실 한국인만큼 잘 참고 견디는 민족도 드물다. 조선 5백년이 그랬고 일제 36년이 그랬다. 동물농장인 북한의 예를 봐도 그렇듯, 반세기가 넘는 동안 저토록 독재에 억압당하고도 군말 없이 잘 견디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한국인만큼 ‘스트레스’란 말을 애용하는 민족도 지구상에 다시없을 것이다. 기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건 한국인들이 남에게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준다는 것이겠다. 그게 갑을(甲乙)문화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만큼 타인과 소통을 할 줄 모른다는 것, 다시 말해 매너가 부족하다는 말이겠다.

결국 몸에 밴 피식민지배근성으로 꾹 참기는 하지만 그게 어느 순간 엉뚱한 방향으로 터져 나온다. 해서 자기가 받은 스트레스 내지는 피해의식을 그 당사자가 아닌 주변의 다른 엉뚱한 사람들에게 폭발, 전가시킨다. 변태적 스트레스의 연쇄반응. 다들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는 매사에 습관화된 반사적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한(恨)’의 현대판 모드 ‘스트레스’

글로벌 매너를 꺼내 들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 아닌 글로벌(서구 것)이라며 지레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기실 매너의 궁극적 목표가 상호 소통을 통한 인간존엄성 추구다. 그렇다면 내것 네것을 따질 이유가 없을 터, 그만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해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이 에티켓이고 매너가 아닌가?

한 예로 예전에 한국은 차는 우측, 사람은 좌측 통행을 해왔다. 자동차 운전대가 일본식(영국식 우측)에서 미국식으로 바뀌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겠지만 차츰 익숙해지자 그게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수년전 이를 바로잡아 사람도 우측통행을 하자고 바꿨지만 아직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우왕좌왕 엉키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다.

첨단기술, 선진제도, 영어, 와인, 골프, 디자인, 오페라 등등 다른 건 모두 빨리빨리 따라 배우자면서 왜 유독 글로벌 매너는 귀찮아할까? 영어만 잘하면 외국인과 소통 잘 할 수 있다던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영어를 잘해서 그 자리에 올랐나? 뭘 배우던 그에 따른 매너까지 배워야 실은 제대로 배웠다 할 수 있겠다. 그 매너 속에 그 정신과 가치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걸 빠트리고 못 배웠으니 골프처럼 LPGA 우승하고도 오히려 어글리 코리안의 이미지만 남겨 코리아디스카운트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코드’란 단어도 글로벌 화두로 자주 회자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문화코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며 각종 교양강좌가 한창이다. 기실 문화코드 중 가장 기본이 바로 매너가 아닌가? 인격체로서의 소통 도구이니 말이다. 모든 나라 언어를 다 습득할 수 없어 영어를 먼저 익히듯이, 온갖 로컬 매너를 다 익힐 수 없으니 그 중 가장 널리 통용되고 품격 높은 글로벌 매너부터 익히자는 것이다.

지난 6월 중국 국빈방문 시 환영만찬 행사장의 종업원 복장과 대통령의 복장. 도우미임에도 불구하고 바른 자세에서 눈을 맞추고 한 손으로 당당하게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지난 6월 중국 국빈방문 시 환영만찬 행사장의 종업원 복장과 대통령의 복장. 도우미임에도 불구하고 바른 자세에서 눈을 맞추고 한 손으로 당당하게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애국도 지혜롭게 고품격으로!

상당수 외국인들이 ‘SAMSUNG’이 한국 기업인줄 모른다고 한다. 코리아를 앞세우는 것이 글로벌 경영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국적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게 한국기업인지 아닌지 못 알아본다고 해서 장사하는 데 무슨 문제?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비애국적인 기업이라 할 수 있는가? 만약 삼성이 ‘한국산’을 앞세웠다면 아무리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 해도 지금처럼 글로벌 프리미엄급으로 대접받지 못했을 것이다.

싸이의 ‘말춤’에 한민족이 원래 기마민족이었다거나 탈춤에서 나왔다느니 하는 애국적 사족 달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언제 네덜란드 문화 홍보대사 맡은 적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과 한국 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척 했다. 분명 한국 같았으면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국가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둥 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 하나 나서지 않고 있다. 덕분에 오히려 아쉽고 궁금해진 한국인들만 네덜란드를 찾고 있다.

국가대표선수라 하여 국가를 위해서 나가 싸운다? 아니다. 이제 그런 생각과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냥 저 좋아서, 저를 위해서 뛰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를 비애국자라 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해서 메달을 땄든 그냥 그걸로 박수칠 일이다. 성급하게 고래고래 ‘대한민국!’을 외쳐댈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다 은근하게 은유적이고 간접적으로 우리 문화를 알리되 때로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실리를 놓치지 않는다.

위대한 문화유산? 석굴암이나 반가사유상이 세계 최고라 한들, 그렇게 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했다 한들, 그들이 그걸 보고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까? 이집트 유적지와 박물관 둘러보고 나자 갑자기 지금의 이집트 국민이 위대해 보이던가? 아무리 훌륭해도 유산은 유산이고,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역사는 역사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는 말이다.

외국 순방 중 대통령이 한복을 입어서는 안 되는 이유

한국인들처럼 남의 눈치, 특히 성숙된 글로벌 선진문명사회인들의 ‘공정한, 객관적인 시각’도 존재하고 있음을 못 보고 막무가내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 대통령이니까 당연히 해외 순방 중 ‘우리’ 한복을 입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그게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기나 할까? 세계인들도 한국인들처럼 그렇게 곱게 봐줄까?

지난 중국 방문 때 박대통령이 노란색 상의를 입고 인민대회당을 찾아 정상회동을 하였다. 또 만찬에선 노란색에 황금빛이 들어간 한복을 입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황금색 한복을 손수 골랐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중국인들도 그리 생각할까? 아니나 다를까 중국정부는 긴급하게 만찬장에서의 사진을 언론에 유출하지 못하도록 한국정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에게 과거 황색은 황제의 전유 색으로 황족이 아닌 사람이 황색 옷을 입으면 바로 참수형을 당했다. 지금도 공식적인 자리에선 옷은 물론 넥타이에도 타부시하는 색이다. 만약 그때 그 황금빛 만찬복 입은 박대통령 사진을 중국인들이 보았다면 “뭐야? 자기가 측천무후라도 되는 거야?”라며 분개했을 게 틀림없다.

기실 중국인에게 한복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중국 내 수많은 소수민족 중 하나인 한족(韓族)을 통해 이미 익숙한 옷이다. 때문에 박대통령이 중국 국빈 만찬에서 노란 한복을 입었다고 해봐야 그들에겐 그저 한국이 중국 변방의 일개 소수민족국가임을 재확인일 뿐이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해 혹여 만주지역 한족(韓族)을 자극하여 민족의식을 새삼 일깨울까봐 염려했을 게다. 하여 부랴부랴 만찬장 사진 배포를 금지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비단 한복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든 자신의 전통복장을 지나치게 고집하다보면 글로벌 무대에서 자칫 오해받을 수도 있다. G20회원국 정도의 국가 최고지도자가 다른 강대국에 가서 전통복장을 자랑하는 것은 아직 글로벌화가 덜 된 미개국 내지는 개도국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약소국에서는 제국주의적 냄새가 난다고 속으로 언짢아 할 수도 있다.

잠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저개발국 정상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자신의 나라 전통복장을 입고 나선 모습을 보고 한국인들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반대로 미국이나 일본 등 우리보다 큰 강대국 정상이나 영부인이 한국에 와서 그런 차림으로 입고 나서면? 전자의 경우, 아, 뭘 얻으러 왔나보다, 후자의 경우, 뭔가를 강요하러 왔나보다는 생각이 절로 스쳐간다.

어느 나라든 그런 상황에선 삼류 언론에서야 별난 옷을 입고 온 한국 대통령이라고 사진을 실어줄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결코 그럴 리 없겠다. 그 나라 지성인들과 상류층 오피니언 리더들은 속으로 불쾌했을 것임에도 국익을 위해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이겠다.

세일즈 외교 제대로 하려면

한복 착용은 상대국의 문화에 호감을 가져주고 상대국의 상품이라도 사줄 것 같은 분위기 연출이 아니라, 자기네 문화만 선전하고 자기네 상품을 팔기만 하겠다고 온 속 좁은 이기주의자로 비칠 수 있다는 말이다. 차라리 순방국의 전통복장을 입어 주는 것이 오히려 상대국 문화를 존중해주어서 그 나라 국민들의 호감을 더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지난 번 베트남 국빈방문 만찬에서 박대통령이 아오자이풍의 서구식 세련된 정장을 준비해 입어주는 게 진짜 예의고 진짜 세일즈외교라 하겠다.

아무렴 우리만 한복이 있는 것 아니다. 세계 모든 민족은 나름의 전통복식을 다 갖고 있다. 선진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그들은 굳이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자기네 전통복식을 자랑하지 않는다. 소통에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게 매너다.

어쨌든 대통령까지 한복이나 한국 중소기업제품 홍보대사로 나서는 건 오버 센스다. 한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말이다. 정히 한복을 입고 싶으면 국내에서 입어야 한다. 또한 외국 정상이나 귀빈들에게 한복을 자랑하고자 해도 굳이 대통령 자신이 입을 일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나 있는 한국 문화예술인 중 글로벌 매너와 교양을 갖추었으면서도 한복에 잘 어울리는 여성을 한복 차림으로 초대해서 오찬이나 만찬 메인테이블에 앉히는 게 자연스럽다.

그도 아니면 지난번 박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 만찬장에서 멋진 중국 전통복식을 차려입은 만찬장 여성도우미를 벤치마킹하면 되겠다. 청와대처럼 국군의장대더러 ‘어서옵쇼!’를 시키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직설적인 방법보다 간접적인 방법이 훨씬 더 고품격 매너다. 아무튼 그런 홍보모델 역은 연예인 등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본연의 임무, 다른 큰일에 집중했으면 싶다. 박대통령이 이제 더 이상 한복을 싸들고 순방 나서는 일 없어야 한다. 이는 다음 정권에서 영부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려야?

아무렴 자기 문화는 원칙적으로 그 나라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남들까지 알아달라고 안달하는 건 오버다. 우리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다른 나라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듯이. 최고지도자가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직접 한복을 입고 홍보모델로 나서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따지고 보면 그건 무례고 몰염치로 오해받을 수 있다.

그러라고 자리 깔아준 것 아니다. 이는 외빈을 위해 정성껏 차려 놓은 잔칫상의 술이나 음식 마다하고 제 나라에서 가져온 소주, 불고기, 비빔밥, 김치 꺼내놓고 먹는 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겠다. 그렇게 한식 세계화까지? 물론 고(故) 육영수 여사나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처럼 박대통령이 한복을 평상복으로 입고 다녔다면야 뭐라 할 사람 없겠다.

‘우리 것’이 곧 세계적?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이젠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열등감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듯, 자기 문화의 우수성을 남에게 확인시키려 드는 조급증을 이제는 제발 버려야 한다. 엎드려 절 받기다. 그마저 우리끼리는 애국심의 발로(증명)라 하겠지만 그런 과정을 다 거친 선진 시민들은 그렇게 보아주지 않는다. 소국근성으로 본다. ‘한국은 아직 멀었어!’라고 생각할 뿐이다.

‘빨리빨리’는 열등감에서 나온 강박증

때와 장소도 못 가리는 애국심은 지난 런던올림픽 한일 축구전에서의 독도 세리머니와 같이 어글리 코리아 이미지만 심어줄 뿐이다. 이제까지의 무작정 애국주의는 글로벌 무대에서 그릇된 국가주의로 오인받기 십상이다. 입에 거품 물고 길길이 뛰는 것만이 애국이 아니다.

이제는 오히려 ‘코리아’를 뒤로 슬그머니 돌리고, 시민 개개인이 짐짓 조용하고 은근하게 제 자리에서 제 분수에 맞는 소양과 품격을 길러나가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겠다. 편협한 국가주의 내지는 소극근성에서 나오는 충동적 애국심이 아니라 대국적 세계관을 통한 자기완성, 인간존엄성 확보가 진정한 개인주의이고 애국이겠다. 그게 선진문명권 주류사회에 들기 위한 자격이다.

문화를 지나치게 즉물적으로 남의 나라와 비교하려 드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고, 유무형의 문화를 국민소득처럼 비교하려 드는 것도 우습다. 고작 2만 불의 나라가 5,6만 불 선진 국민들과 억지로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목을 빼들고 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꼴 또한 우습기는 마찬가지겠다. 가상하다만 그들 눈에는 가소롭고 가련할 뿐이겠다.

진정 중요한 것은 국민소득, 전통문화, 유물, 유적, 첨단기술, 노벨상, 올림픽 금메달 순위가 아니고 사람이다. 사람다운 사람, 품격 있는 인격체, 경계 없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인들이 친구가 되고자 스스로 찾아와 한국문화를 함께 즐기게 될 것이다.

글로벌 무대로 나가려면 패러다임을 바꿔야

60년대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하여 파독 광부들에게 준비해 간 선물을 나눠줬었다. 1인당 당시의 한국 담배 3갑, 그리고 삼립크림빵 1개씩. 최근 파독광부초청 사기사건으로 한국에 왔다가 곤란에 처한 그분들이 이 삼립크림빵을 먹어보고는 “50년 전과 똑같은 맛!”이라며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가슴 찡한 이야기지만 어쩐지 지금의 한국인들 역시 50년 전 그 패러다임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는 이제 한국을 더 이상 개발도상국으로 보지 않는다. 원조 또는 특혜를 주고 무매너를 애써 참아주며 기다려 줘야 하는 나라가 아니다. 당장은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견제해야할 나라로, 그리고 머잖아 인류의 공동번영과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갈 파트너 ‘큰 바위 얼굴’로 성장하길 기다리고 있다. 은근과 끈기를 되살려 점잖은 세계시민이 되어야 진정한 주류가 될 수 있다. 한(恨)바이러스를 극복해야 가능하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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