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재계 상생경영…'중소기업 인큐베이터' 역할 자처

박영국 기자

입력 2013.10.30 11:24  수정 2013.10.30 11:29

"협력사 성장이 대기업 경쟁력 강화" 인식 확산…2, 3차 협력사도 직접 챙기기

지난 16일 현대·기아차가 협력사들과 기술교류를 위해 마련한 'R&D 테크 데이'에 참석한 현대차 연구원들과 협력사 직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현대자동차

재계의 상생경영이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생색내기 식의 협력사 지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협력사들이 본질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직접 거래관계가 없는 2, 3차 협력사들까지 직접 챙기며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최근 재계 상생경영의 트렌드는 기존 1차 협력사에 집중됐던 대기업의 지원을 2, 3차 협력사에게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집중되고 있다. 2, 3차 협력사들의 성장이 1차 협력사들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대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상생협력의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삼성그룹이 지난 6월 발표한 ‘상생협력 생태계 조성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향후 5년간 총 1조2000억원이 협력사 지원에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삼성그룹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1차 협력사에 대해 공동기술개발과 경영관리·품질·생산관리 등에 대한 무상 컨설팅을 하고 저리대출 또는 무상지원 형식으로 500억원을 지원해 '글로벌 톱5'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2차 협력사에 대해서는 제조현장과 프로세스 개선, 생산기술 개발, 임직원 교육, 현장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올해만 150억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협력업체에 대한 교육과 컨설팅의 장이 될 상생협력아카데미를 설립하기로 했다. 총 1000억원을 들여 수원에 교육컨설팅센터를 세워 교육센터, 전문교수단, 청년일자리센터, 컨설팅실, 상생협력 연구실 등을 설치하고 협력업체의 경쟁력 제고를 지원하는 종합센터 역할을 하도록 할 방침이다.

1차 협력업체들이 2차 협력업체들을 지원하는 생태계 조성도 삼성그룹의 상생협력 방안 중 하나다. 1차 협력업체 평가때 2차 협력업체와 표준하도급계약서 체결 여부를 반영하기로 했으며 1차-2차 협력업체 간 60일이상 어음 지급을 금지하고 현금성 결제비율을 올리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또 삼성과 1차 협력업체의 단가 조정 내용을 2차 협력업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협력사들의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이 그룹의 주력인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토요타, 폭스바겐 등 경쟁사들과 맞설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신념 하에 주로 R&D 측면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협력사와의 동반성장협약을 바탕으로 매년 창의적이고 실질적인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영,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 놓인 협력사들이 지속적인 성장 및 기술개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이미 올해 초 1차 협력사에만 제공되던 동반성장펀드와 상생 금형설비 펀드를 2차 협력사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1, 2차 협력사간 거래관행 개선을 위해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1차 협력사에게도 2차 협력사와의 거래관행 개선을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2차 협력사에 대한 교육 확대를 위해서 협력사 교육관리포털을 개설해 사이버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의 교육을 지원할 수 있도록 교육자료 제공 등을 통해 1차 협력사의 자체 교육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또, 현대·기아차는 1, 2차 협력사간 동반성장 활성화를 위해 1차 협력사 300여사와 2차 협력사 5000여사가 참여하는 동반성장협약을 체결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등, 2차 협력사의 경쟁력 제고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SK가 협력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위해 개설한 '상생CEO 세미나'에 참석한 중소기업 CEO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SK

SK그룹 역시 협력사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상생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 SK그룹의 최고 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동반성장위원회를 정식으로 발족, 그룹 차원의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다.

SK그룹 상생 경영의 특징은 협력사 자체 뿐 아니라 개별 임직원들의 자기계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데 있다. 협력업체 임직원들을 위해 미니 MBA 형식으로 8주 동안 진행되는 ‘동반성장 MDP’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같은 적극적인 상생 경영에 힘입어 SK그룹 계열 SK종합화학은 지난 21일 ‘2013 동반성장주간’ 기념식에서 성과공유 부문 최고 영예인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앞서 지난 5월에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동반성장지수’에서 SK텔레콤, SK C&C, SK종합화학 등 3개 계열사가 최고등급인 ‘우수등급’을 받기도 했다. 이는 대기업 집단 중 가장 많은 숫자다.

LG그룹도 주요 계열사별로 다양한 동반성장 정책을 마련, 실천하고 있다.

LG전자는 R&D지원을 위해 협력회사와 ‘그린 파트너십’을 맺고 2011년부터 5년간 LED, 태양광 등 중장기 신사업 연구개발에 8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LG유플러스는 4G LTE 디바이스 및 어플리케이션 개발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LTE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열고 개인 및 중소기업 개발자들에게 지원을 하고 있다. LGCNS는 신성장 사업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중소기업과 공동 개발하고 전문인력에 대한 임금도 보전해주고 있다.

2, 3차 협력사들을 위한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기존 1차 협력사를 위해 3400억원의 동반성장 펀드를 운영해오던 LG그룹은 지난 4월 2, 3차 협력사 자금 지원용으로 2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추가로 조성했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화학·LG생활건강 등 LG그룹 4개 계열사는 지난 4월부터 IBK기업은행과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 500여개 2, 3차 협력회사를 지원하기로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대기업과 협력사간 상생에 대해 사회적 책임 측면만 너무 강조했던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협력사들의 경쟁력 강화가 필수라는 인식 하에 적극적으로 협력사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고, 협력사들을 위한 투자가 사회공헌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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