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마케팅 여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

김아연 기자

입력 2013.11.03 10:24  수정 2013.11.03 10:29

기업·맛집·공연 등 파워블로거에 "무료로 줄테니 홍보 부탁"

수백만원짜리 상품도 공짜…열심히 하면 한달 활동비 100만원

온라인 공간의 정보 흐름을 좌우하는 파워블로거가 제공하는 정보의 이면에선 기업-블로거 간의 금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bloggingpro.com
“인기 블로거가 되면, 맛집에서 공짜로 음식을 제공할 테니 홍보글 써달라고 먼저 연락이 와요.”

파워블로거를 활용한 ‘은밀한 마케팅’의 한 단면이다.

온라인 공간의 정보 흐름을 좌우하는 파워블로거가 제공하는 정보의 이면에선 기업-블로거 간의 금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블로그 마케팅’은 파워블로거가 기업의 요청에 따라 상품에 대한 리뷰를 블로그에 포스팅(글이나 사진 등을 게시하는 행위)하여 그 글을 본 네티즌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미 ‘블로그는 또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루 평균 블로그 방문자수가 2500~3000명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직장인 A 씨(28·여)는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 공연 공짜티켓을 여러 장 보내주며 홍보 포스팅을 요청해온다”며 “방문자수나 이웃수가 일정 수준 나오는 블로거들에게 흔히 이루어지는 접근”이라고 말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dbs***’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8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3번 연속으로 파워블로거로 지정됐다”며 “그런데 파워블로거 선정 이후로 자꾸 제품을 홍보해달라는 쪽지나 메일이 와서 블로그를 아예 접었다. 취미가 더 이상 취미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홍보대행사가 작성 가이드라인 제시하고, 포스팅 전 확인 절차도

특히 일부 기업이나 홍보대행사는 블로거들에게 보도자료나 포스팅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면서 기업의 구미에 맞게 포스팅을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활동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로드샵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인 S업체가 일부 블로거들에게 제공한 ‘체험 리뷰 작성가이드’에는 리뷰 작성기간이나 작성건수는 물론 ‘타사 제품에 비해 S업체 제품을 사용하면서 더 좋은 점’, ‘이미지/동영상 활용법’ 등 매우 구체적인 포스팅 작성 규칙이 포함돼 있었다.

홍보대행사와 기업 측의 이른바 ‘사전 검열 단계’도 있었다. 제품에 대한 확실한 홍보가 이뤄진 것인지 여부 등을 미리 확인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블로거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모 홍보대행사 직원 B 씨(25·여)는 “블로거가 제품 리뷰를 작성하면 대행사가 가이드라인에 잘 맞춰서 작성됐는지 1차 확인을 하고, 경우에 따라 기업 홍보팀이 제품의 기술적인 부분을 확인 한다”고 말했다.

수백만원짜리 상품도 공짜…열심히 하면 한달 활동비 100만원

블로거들이 포스팅하는 상품 리뷰 한 건의 가치는 20만~30만원 정도였다. 한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열심히 하면 활동비로만 한 달에 100만원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요즘은 ‘파워블로거’가 또 하나의 스펙인 시대”라며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제품을 무료로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블로거의 가장 큰 수익이고, 포스팅 건당 블로거에게 지급되는 돈은 부수적인 수입”이라고 밝혔다.

B 씨가 밝힌 포스팅 한 건당 활동비는 평균 20만~30만원이었다. 활동비 지급은 대체적으로 현금이나 상품권 형태로 이루어지고, 인터뷰나 촬영 등이 추가되면 경우에 따라 활동비가 오르기도 했다.

일부 블로거들에 의해 블로그가 특정 상품에 대한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홍보 공간으로 변질되자, 일각에서는 “믿을 수가 없다”, “명백한 허위광고 행위다” 등의 비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eye***’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파워블로거는 광고 회사나 마찬가지”라며 “블로그 리뷰는 기업과 짜고 치는 고스톱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직장인 C 씨(27)는 “살까말까 망설이는 제품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어느 블로그를 들어가도 다 비슷한 내용에 ‘무조건 좋다’식인 것 같다”며 “블로거들이 올려놓은 리뷰만 믿고 샀다가 후회한 적도 많다”고 했다.

"부족한 온라인 채널…파워 블로거 활용할 수밖에 없어"

홍보대행사 직원 D 씨(27·여)는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을 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찾아보는 곳이 블로그”라며 “온라인 채널이 다양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은 블로그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 씨는 이어 “블로거가 자발적으로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글의 퀄리티도 낮고 기업이 원하는 정보를 넣어서 써주지 않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블로거들을 활용해 제품을 홍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블로거들의 활동에 자유를 보장하되, 잘못된 정보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나쁜 블로거’에 한하여 제재를 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 실장은 “1인 블로그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파워블로거가 탄생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라며 “그러나 블로그 활동에 미리 규제를 정하고 이것이 과도한 제한으로 이어지면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거까지 위축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변 실장은 이어 “원칙은 자유에 맡기고, 루머 등과 같은 나쁜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활동 등에 대해서만 엄격한 룰을 만들어 놓으면 규제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업과 네티즌 사이의 거래도 올바른 정보만 제공한다면 경제적 이윤활동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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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연 기자 (withay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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