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치쇼' 벌일 시간에 쌍용차 구매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게 퇴직자 조기복직 돕는 길
이유일 쌍용차 사장이 지난 2012년 9월 20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전체회의장에서 열린 국회 환노위의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치인은 연예인과 유사점이 많다. 연예인이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살 듯, 정치인은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 생명을 유지한다.
연예인은 인기가 시들해질 때면 ‘쇼(show, 사전적 의미로 구경거리)’를 통해 다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다. 콘서트 개최나 예능프로 출연과 같은 공식적인 ‘쇼’건 스캔들이나 노출 등 노이즈마케팅 방식의 ‘쇼’건 구경거리를 만들어 줘야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다.
정치인들도 연예인과 같은 방식의 ‘쇼’를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특정 성향의 지지층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정당이나 개별 정치인은 지지층의 성향에 맞는 ‘쇼’를 벌여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쌍용자동차는 진보 정당과 정치인에게는 ‘쇼’를 벌이기에 매우 훌륭한 소재다. ‘쌍용차 사태’로 불려온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이 국민들(특히 진보 성향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고, 당시 쌍용차에서 내몰려 지금까지 복직을 요구하는 이들이 수천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를 무대로 펼쳐지는 정치쇼의 제물로는 이유일 쌍용차 사장이 선택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이번 국감 증인으로 이유일 사장을 채택한 것이다.
‘회사 정상화와 해고자 복직 문제 점검’이라는 훌륭한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 사장의 증인 채택을 통해 환노위가 내세운 목적을 실현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정치쇼’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지난해 9월 국감을 앞두고 열렸던 국회 ‘쌍용차 정리해고 청문회’의 ‘재탕’에 불과하다. 당시 증인으로 참석했던 이유일 사장은 국회의원들에게 2009년 인력구조조정과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구조조정 인원 전원을 당장 복직시킬 여력이 없는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후에도 대선을 전후해 수없이 이어진 정치권과 노동계의 의혹 제기와 해고자 복직 압박에 쌍용차는 똑같은 해명을 수없이 내놓아야 했다.
구조조정 인원에 대한 복직 절차도 회사 상황에 맞게 단계적으로 밟아가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구조조정 인원 중 무급휴직자 454명 전원을 복직시켰고, 1904명의 희망퇴직자에 대해서도 신차 X100이 생산에 들어가는 내년 10월을 전후해 복직을 검토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내놓았으며, 최근 희망퇴직자 복직 검토 태스크포스(TF)도 구성했다.
정치권과 노동계의 요구대로 당장 모두 복귀시켰다가는 회사가 흔들릴 수 있다. 쌍용차는 구조조정 사태 이후 올 1분기까지 적자행진을 지속하다 2분기 들어 겨우 소폭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환차익 효과가 일부 작용한 결과다.
회사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번에 수천 명의 인건비가 추가로 소요된다면 경영 악화로 기존 4000여명의 직원들의 일자리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제쳐두고 쌍용차에 전원 복직을 압박하는 게 ‘절대선’이라고 쳐도 이유일 사장을 데려다 압박할 일은 아니다.
정치권과 노동계는 어쩌면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누렸던 ‘국감 효과’의 재현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시 국감장에 끌려온 조남호 회장은 온갖 수모를 당한 뒤에 정리해고자 복직 서약서를 쓰며 백기 투항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과 쌍용차는 다르다. 조남호 회장과 이유일 사장은 더더욱 다르다. 조 회장은 오너고 이 사장은 CEO다. 조 회장은 경영 악화를 감수하고도 정리해고자들을 복직시킬 권한이 있었지만, 이 사장은 그럴 권한이 없다.
한진중공업 사태처럼 누군가를 데려다 윽박질러 백기 투항을 받아낼 생각이라면 그건 마힌드라 그룹 회장이나 마힌드라 그룹이 보유한 쌍용차 지분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외국 기업인에 대한 국감 출석 요구는 불가능한 일이다.
구조조정에 내몰린 옛 쌍용차 근로자들의 고달픈 삶은 너무도 안타깝다. 하루 빨리 이들을 복직시켜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쌍용차라는 일터 자체를 뒤흔드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먼저 쌍용차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후에 복직이 이뤄져야 1904명의 희망퇴직자는 물론, 그들의 두 배가 넘는 숫자의 현직 근로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해줄 수 있다.
진정으로 쌍용차 희망퇴직자의 조기 복직을 돕고 싶다면 ‘정치쇼’를 벌일 시간에 쌍용차 구매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게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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