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경제적 부는 일반적으로 군사력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군사력은 경제적 부를 획득하고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역사학자 폴 케네디의 말처럼, 시장경제의 도입을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있고, 국부를 토대로 현대화된 군사력을 증강해 나가는 강대국의 전형적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호 의존과 상승효과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있고, 초강대국 미국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선한 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수잔 셔크는 중국이 개혁개방 30년의 성과를 토대로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깨지기 쉬운 강대국(fragile superpower)'이라고 진단한다. 강력하게 통제되고 있는 중국의 겉모습과 달리, 심각한 빈부격차와 같은 경제적 요인, 과도하게 증폭되고 있는 민족주의 성향, 대만,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불편한 관계가 중국의 체제 존속에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의 생래적 모순으로 인해 국가 사회 전반에 유연성이 부족하다. 이런 제반의 불안요소와 축적된 사회적 모순이 어떤 계기로든 한번 폭발하게 되면, 체제 자체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취약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수잔 셔크는 대외적으로 부강하지만 내부적으로 취약한 중국의 불안요소들이 작동되는 방식과 과정을 짚어준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중국의 모순과 문제점 그 자체의 조명에 있다기보다, 중국이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의 특징과 속성을 미국과 주변국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방점이 있는 듯하다.
수잔 셔크는 “중국을 국제적인 강국으로 만드는 동시에 국내의 정치적 위협을 관리하느라 분투하고 있는 중국지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주력한다. 중국 지도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국외자들이 잘 이해하고 공감할 때 중국의 평화적인 굴기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친중적 관점에서 ‘내재적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국무부 태평양 관계 부차관보로 중국 문제의 실무를 담당한 그녀의 경험이 배어있고 전반적으로 민주당의 친중적 시각을 대변한다. 이 책이 안고 있는 장점이자 한계다.
중국 공산당의 체제 수호 전략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잔 셔크가 지적하는 중국 내부의 내밀한 작동체계와 한계를 들여다보는 건 나쁘지 않다. 중국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든, 아니면 이를 바탕으로 한 대응적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서이든 중국의 블랙박스의 일면을 탐색하는 건 유용한 일이다.먼저 중국 공산당의 체제 수호 전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었던 1989년의 천안문 사건의 트라우마(trauma)는 중국 공산당의 사유방식에 ‘정치 안정’을 최우선시 하는 각인을 만들었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 체제 수호를 위한 세 가지 철칙이 정립된다. 중국 붕괴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중국 공산당지도부는 이 세 가지 방안의 고수를 위해 모든 통제력을 가동한다. 물론 이들의 섬기는 금과옥조는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첫째, 당지도부의 분열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당 총서기, 국가 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이라는 국가 3대 요직을 단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도 지도부 사이의 파괴적인 분열을 막기 위한 고안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체제가 절대 권력을 향한 생사를 건 치열한 암투를 낳고 권력배분을 위한 정치적 타협이 절대 부패의 씨앗이 되고 체제의 취약성을 은폐시키는 되는 건 역설적이다.
둘째, 대규모의 사회적 동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위구르, 티베트 등 소수민족의 봉기, 임금 체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시위, 토지소유권을 요구하는 농민의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쇠락하면서 민족주의가 인민의 정신적 공허감을 채워주고 있다. 민족주의는 중국 공산당에게 때로 중요한 대외적 무기가 되지만, 지나치게 강렬할 경우 공산당 일당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이런 불안요소를 관리하는 중국 공산당의 전략은 분명하다. 시위자들에게 동조하거나, 아니면 이들의 일부를 사회 경제 영역의 엘리트로 흡수한다. 한편 사회 불만과 독재정치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문화, 패션, 섹스 등의 부문을 개방하여 인민의 정치성을 완화시킨다. 때로 철저하게 탄압하는 강공책을 쓰기도 한다. 5.4 운동기념, 천안문 학살사건 기념 등에 대해선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활동가들을 집중 감시하여 억압한다.
사회 안정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중국 공산당의 전형적인 설득 논리는 “공산당의 통치가 없으면 중국 같은 큰 나라는 내전과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단순 논리는 인민을 세뇌시키는데 유효하고,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압박에 대해 주변국의 친중적 인사들이 애용하는 메시지가 된다. 과연 타당한 논리일까?
중국 공산당의 이런 방안은 일시적으로 사회적 동요를 억제하는 데에 효과적이지만, 이는 ‘억제된 안정’이라는 착시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사회적 불안요인이 차곡차곡 쌓여 폭발력을 응축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 공산당의 체제 수호 전략은 군이 늘 당의 편에 서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국 상무위원의 자리에서 인민해방군 장성을 배제함으로써 문민통제의 원칙을 실현하고 있는 듯하지만, 당 중앙위원회의 22%의 의석을 인민해방군이 점유하고 있어 민간 우위의 원칙은 불안정하다. 군부의 매파를 달래기 위해 국방예산을 대폭 증강해주는 것도 군부의 복종과 협력을 얻기 위한 당근책이다.
중국 공산당이 직면한 취약 요소들
중국 내부에는 ‘깨지기 쉬운(fragile) 요소들이 많다. ’깨지기 쉬운‘ 요소가 곧 중국의 취약점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통제되지 않는 위력을 확인시켜 준다. 수잔 셔크는 중국의 대내외적 행동방식이 어떤 요인들에 의해 추동되는 지를 보여주어 중국지도부가 직면한 어려운 상황을 이해시키려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노출되는 중국 공산당의 과오를 일부 지적하지만, 핵심적 의도는 미국과 주변국들에게 중국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데 있음은 분명하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중국의 내부적 관점에 흡인되어 정작 중국에 대해 주문할 사항과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반면에 중국 내부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과 요구를 정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국에서의 민족주의는 언론과 인터넷, 정부 당국의 세 영역의 암묵적 카르텔에 의해 격렬하게 질주하기도 하고, 때로 ‘의도된 절제’를 유지하기도 한다. 중국 공산당은 필요에 따라 민족주의를 부추기거나 과도한 분출을 통제하기도 한다. 언론과 인터넷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의 민족주의가 겨누는 과녁은 미국, 일본, 그리고 대만이다.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당 대변지 성격의 '환구시보'를 통해 1999년 유고슬라비아의 인종 학살을 막기 위해 나토와 미군이 폭격을 하는 와중에 중국 대사관이 오인 피폭된 사건을 미국의 의도적 도발로 왜곡 규정하고, 격렬한 민족주의를 암암리에 선동했다.
중국 공산당은 '환구시보'나 인터넷을 통해 대내외 이슈에 대한 여론 동향을 파악한다. 또 이들 매체를 활용하여 미국, 일본, 대만의 위협을 과장하거나, 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민들의 민족적 정서를 부추기는 ‘애국자 놀음’은 대외관계를 악화시키거나 정치적 후유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민족주의를 촉발시키는 대표적인 사안은 일본인에 의해 자행된 야만적인 난징대학살,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의 영토분쟁 등이다. 이런 이슈는 쉽게 ‘애국심의 징표’가 되어 인민들을 민족주의로 격동시킨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일본과의 대외관계에서 민족주의를 적정하게 통제했지만, 장쩌민의 경우 대일 이슈 관련하여 촉발된 자국의 민족주의의 질주를 제어하지 못해, 외교적 실패를 초래하기도 했다.
대만과 중국의 양안 문제에 관련하여 미국이 중국의 민족주의를 촉발시킬 사안은 대만과의 군사적 관계다. 미국은 1979년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단일의 중국으로 승인하면서, 그 대신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제정하여 대만의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자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런 상황은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언제든지 대만과의 군사적 대립에서 미국과의 분쟁 위험을 안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양안일중(兩岸一中)’의 원칙과 대만의 독립국가 지향은 양안 사이의 군비 경쟁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은 명확하다. 중국이 <반분열국가법>을 제정 대만이 분리 독립할 경우나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비평화적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적시함으로써 무력 사용의 의지를 단호하게 천명한 것이다.
저자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대만 문제를 정권 존망의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고, 애국심의 징표로 삼고 있음을 주지시킨다. 이는 대만의 독립파들에 대한 미국의 제어를 완곡하게 요청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대만 문제는 미국에게도 간단치 않다.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으로서는 대만을 중국의 의도에 완전하게 내맡길 수도 없는 입장이다. 대만과 중국의 양안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의 최전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내재적 접근보다 주변국의 입장을 살펴야
강대국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이 공존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중국 공산당이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공식적 지지를 중단하고 과거 ‘100년의 치욕’의 피해를 부각시키기보다 현대 중국이 이룬 성취를 강조하는 긍정적 민족주의를 배양할 것을 권고한다.
나아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대중, 군부, 정보 및 통제 주체들의 무모한 행동을 제어하고 균형을 맞춰줄 사영기업의 육성을 강조한다. 사영기업가의 공산당 정치 참여를 확대시키면 국제적 충돌 상황을 무마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강화와 언론 통제의 완화, 대만정부와의 대화를 촉구한다.
하지만 수잔 셔크의 전략적 조언은 핵심 사항을 비껴간다. 중국 정부의 대외 정책이 민족주의에 휘둘리지 않게 유연해지려면, 언론 자유를 확대하고 군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만정부와의 대화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근본적인 한계를 탈피하는 혁명적 체제변혁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잔 셔크의 미국에 대해 주문은 다분히 중국의 내재적 접근법에서 나온 듯하다. 중국의 대중과 군부, 공산당 지도부간의 단단한 공조체제의 산물인 “민족주의적 열정이 공격적인 형태로 전환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 민족주의의 파괴력을 상기시키며 미국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완곡한 경고에 다름 아니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증진을 촉구하는 것을 자제하고 중국의 다양한 국제적 행위에 관심을 두자거나,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력 과시를 자제해야 하며, 일본이 군사 강국이 되도록 방조하지 말라는 권고도 같은 맥락이다.
수잔 셔크는 중국의 행동방식과 패턴의 위험성과 파괴력, 불가피성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강조하고 변호하면서도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행동방식과 패턴이 만들어지는 국내외적인 복잡한 이해관계와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나아가 중국의 대국화와 군사력 강화가 선제적으로 파생시키는 주변국에 대한 자극과 압박을 외면하고 있다. 특히 주변국들의 관점에 소홀한 것이 아쉽다. 저자의 권고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물론 저자의 희망하는 대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존중해주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을 하는 ‘선한 강대국’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국가 운영 전략이 민주적으로 감시받고 조정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언제든지 주변국가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드러낼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 상존한다. 과거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더구나 중국 공산당에겐 자신들의 영도적 지위를 영속시키는 것이 제1의 통치철학이다. 중국 공산당의 혁명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의 통치체제가 민주적 방식으로 혁신되고 투명성이 제고될 때 대외관계가 예측가능하게 되고 국제적 갈등의 소지도 줄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중국의 파열이 가져올 엄청난 파장과 세계적 재앙을 연상시키면서, 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 미국 및 주변국들에게 중국에 대해 ’내재적 접근‘을 압박하고 있다. ‘깨지기 쉬운 강대국(fragile superpower)' 중국의 취약점을 폭로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깨지기 쉬운 강대국‘이 깨지지 않도록 미국과 주변국이 중국을 배려하고 신중하게 응대할 것을 주문하는 사용설명서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판도라의 상자 중국>은 의도적으로 잘못 붙여진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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