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입력 2013.08.21 09:23  수정 2013.08.21 09:51

<김헌식의 문화 꼬기>MBC 다큐 '김광석을 부른다'엔 김광석은 없고 노래만...

지난 19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 '나는 지금 김광석을 부른다'는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다각적으로 조명했다. '나는 지금 김광석을 부른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그를 부르는 것이기도 하면서 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내포했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은 존박에게도 해당하면서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불러내는 것이다.

존박은 현 시대를 의미했고 그의 노래들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통해 미래에도 불릴 것을 암시하고 있다. 시청자를 대변하는 존박은 스스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직접 부르는 장면은 이를 상징한다. 이 다큐는 전체적으로 많은 팬들의 김광석에 대한 성원을 담아내고 있고, 그의 노래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음을 드러내려 했다. 그의 요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호평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은 일관되었다. 일관된 이런 감성적인 접근은 다른 점들을 놓치게 하는 것이었다. 김광석의 노래와 삶을 감성 다큐 방식으로 다룬 점은 당장에 마음의 울림을 낳지만 그것이 정말 김광석을 위한 것인지는 따로 봐야 할 문제였다.

그가 공연장을 통해 관객들과 호흡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를 염원하는 팬들이 존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돌 그룹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가요 풍토에서 김광석이 가지고 있는 공연사적인 맥락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가수의 공간은 바로 무대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비틀즈와 같은 공연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러한 점이 배제된 미디어 중심의 케이 팝은 장기적으로 위기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주는 노력들은 언제나 부족해왔다. 이는 오로지 개인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회를 탈색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자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타살에 대한 논란이 있다. 그만큼 그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는 그를 아끼는 팬이나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는 떠돌고 있는 점이다. 그가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다.

김광석이 태어나 살던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 만들어진 '김광석 거리' 벽화.ⓒ데일리안 이석원 기자

또한 그의 노래에 대한 저작권 소유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있고, 그에 대한 잡음과 갈등이 존재한다. 즉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행태들에 대한 팬들의 분노는 여전히 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유명한 노래를 둘러싼 수익 배분 문제는 그동안 법정 다툼을 통해서 매체에 알려지기도 했고, 이는 그의 이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

이러한 점은 그와 그를 다룬 공연 제작에도 많은 문제점을 발생하게 했다. 그렇기에 그와 그의 노래를 활용하여 뮤지컬 등의 작품을 제작할 수 없는 배경이 존재하고 있다. 각자의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그와 그의 노래들을 찢어발기는 일이 현실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다큐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의 흔적들을 찾고 그를 따랐던 팬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점에 머물렀다. 정작 그가 생전에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를 외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후에 어떤 문제들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여전히 그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은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뜻을 잘 받아들여 공연을 만들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그의 노래들을 활용하여 만든 어느 뮤지컬은 청와대 경호원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단 그의 노래들이 청와대 경호원들의 이야기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의 노래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맥락에서 사용된다.

상황과 장면에 맞지 않게 그의 노래들이 틀어지는 것이다. 이는 그의 노래들을 정말 아끼는 팬들은 물론 그에 대한 무례였다. 그의 노래들을 작품의 전체에 일관되게 사용한다면 그의 삶은 물론 가사의 내용들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적 현실에 어느 정도 부합해야 한다. 노래의 상상적 현실과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장면들은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만약 그가 살아 생전이었다면, 그런 뮤지컬 내용을 찬동했을까 의문이 간다. 물량 공세와 후광 효과의 시대라지만, 그를 아끼는 팬들의 그에 대한 여전한 성원이 있기에 그런 점들이 감히 가려질 뿐이었다. 겉만 화려한 졸작이 성공한 것은 그의 흔적은 무엇이라고 찾아보고 싶은 팬들의 힘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그를 활용한 각자들의 이익투쟁과 분투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정말 그의 삶과 노래들이 그 가치와 격에 맞게 가치를 작품이나 사회적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를 둘러싼 감성적인 접근이 아니라 이성적인 접근이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가 생전에 고통받았을 내용, 그가 사후에 고통을 받고 있는 내용들을 가감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