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게 지난 2012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 우선 김재철 전 사장과 노조는 거듭된 갈등을 보이며 장기간의 파업 등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거듭된 시청률 하락으로 위기를 맞았던 MBC는 파업으로 인해 더욱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반드시 파업 등 노사 갈등만이 MBC의 위기는 아니었다. 한때 드라마의 왕국이라 불리던 MBC만, 또 리얼리티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개념을 안방극장에 도입해 예능계를 주도했던 MBC지만, 2012년 MBC는 드라마부터 예능, 그리고 보도까지 총체적인 난국을 겪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2013년이 MBC에겐 확실한 반등의 한 해가 되고 있다. 3년여의 암흑기를 통과한 일요 예능 프로그램 '일밤'의 확실한 부활을 필두고 예능계가 되살아났으며 류현진의 맹활약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단독 확보한 MBC 스포츠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방송국의 꽃으로 불리는 드라마국 역시 확연하게 살아난 분위기다. 그렇지만 MBC 드라마 부활의 중심이 여전히 막장 코드라는 부분이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물론 2013년 상반기 MBC 드라마가 모두 막장 드라마라는 얘긴 아니다. 수목드라마 '보고싶다'(극본 문희정, 연출 이채동), 월화드라마 '마의'(극본 김이영, 연출 이병훈),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극본 강은경, 연출 신우철) 등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도 좋은 평을 받은 드라마들도 있다.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2013년 상반기 MBC 드라마의 핵심은 바로 일일드라마 '오자룡이 간다'(극본 김사경, 연출 최원석)와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극본 구현숙, 연출 주성우)이었다. 또 아침 드라마 '사랑했나봐'(극본 원영옥, 연출 김흥동)도 있다. 세 편 모두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다.
'오자룡이 간다'의 애초 기획 취지는 건강한 청년 오자룡(이장우 분)이 일과 사랑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정작 드라마 내내 오자룡은 그다지 한 일이 없다. 그냥 긍정적이고 매사에 열심일 뿐이다. 오히려 악역 진용석(진태현 분)이 드라마의 중심이었다.
사실 이런 식의 드라마는 오자룡의 시련과 성장이 제대로 그려져야 한다. 드라마 '마의'의 백광현(조승우 분)이 대표적이다. '마의'는 광현의 시련과 극복, 그리고 성장이 반복되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드라마 초반부는 시청률이 조금 덜 나올 지라도 주인공의 시련을 제대로 그려내야 한다. 그렇지만 오자룡은 친부모도 아닌 부모에게 친자식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건강한 청년이다. 일과 관련된 시련이 드라마 초반부에 잠시 나왔지만 금세 사랑을 통해 재벌가의 사위가 된다. 그제야 악연인 손윗동서 진용석에게 시련을 겪기 시작하지만 이미 드라마의 중심은 진용석이 된 뒤다.
결국 '오자룡이 간다'는 오자룡의 성장 드라마가 아닌 진용석의 악인 드라마가 됐다. 우수개 소리로 ‘오자룡은 뭔가를 제목처럼 늘 어딘가로 가기만 할 뿐 하는 일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진용석이 홀로 악행을 벌이다 또 홀로 쓰러진다. 선한 오자룡이 악한 진용석과 싸워 이기는 내용보다는 진용석의 악행 자체가 드라마의 중심이 되면서 시청자들은 진용석을 욕하는 재미로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오자룡이 간다'는 결정적인 막장 코드인 오자룡의 ‘출생의 비밀’도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따라서 '오자룡이 간다'는 대표적인 악인 코드 막장 드라마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오자룡의 비중은 진용석의 모친(이휘향 분) 보다도 적을 정도였다.
악인 코드 막장 드라마로는 아침 드라마 '사랑했나봐'도 있다. 역시 김보경이라는 악역을 통해 아침 드라마 치고는 대박 수준인 18.8%(닐슨 코리아, 전국기준)의 높은 시청률을 만들어 냈다. 이번에도 여주인공 한윤진(박시은 분)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은 끊임없이 최선정(김보경 분)에게 농락당하기만 했다.
결국 선악 구도로 나눠져 있는 탓에 이장우와 박시은이 주인공이었을 뿐 실질적인 '오자룡이 간다'와 '사랑했나봐'의 주인공은 진태현과 김보경이었다. 묘한 우연의 일치는 MBC 상반기 대박 드라마의 ‘선한 팀 대표’ 박시은과 ‘악한 팀 대표’ 진태현이 실제 연인 관계라는 점이다.
최근 종영한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은 ‘막장 종합 선물세트’였다. 드라마 초반부는 착한 며느리 민채원(유진 분)과 악한 시어머니 방영자(박원숙 분)의 이야기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시집살이는 기본, 채원을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허위로 불륜 관계까지 만들어 냈을 정도다. 당시 방송가에 관련 예능 프로그램이 여러 개 생길 정도로 주요 방송 키워드로 떠오른 ‘시월드’가 드라마의 중심이었던 것. 또 다른 드라마의 중심인 국수집은 엄팽달(신구 분)과 부모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자식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역시 또 하나의 비정상적인 집안이 등장한 것 역시 막장 요소였다.
드라마 중반부는 민채원과 이세윤(이정진 분)의 사랑이야기였다. 이혼녀와 총각의 사랑, 평범한 국수집 손녀와 재벌 2세의 사랑만으로도 드라마틱한데, 이세윤은 채원의 전 남편의 여동생이 오랜 기간 짝사랑해온 남성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갈등 고리다.
‘홍주’(심이영 분)의 등장은 새로운 형태의 막장 코드였다. 힘겹게 채원을 몰아내고 아들 김철규(최원영 분)를 더 잘 나가는 재벌가의 딸 홍주와 결혼시킨 방영자는 막 나가는 며느리로 인해 엄청난 ‘며느리살이’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구도는 최종회에 이르러 방영자가 며느리 때문에 정신병원을 찾는 모습까지 이어진다. 며느리를 ‘시집살이’ 시키며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시켰던 시어머니가 결국은 새로운 며느리를 만나 힘겨운 ‘며느리살이’ 끝에 정신병원을 찾게 된다는 복수 설정인데, 지금껏 한국 드라마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형태의 막장 코드였다. 이 과정에선 방영자의 아들 김철규가 한국 드라마 사에 길이 남을 마마보이였음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출생의 비밀이 주요 키워드가 된다. 이로 인해 채원과 세윤은 결혼을 앞두고 남매 사이가 된다. 세윤의 친모가 채원의 새어머니인 양춘희(전인화 분)임이 드러난 것. 평범한 국수집 손녀인 이혼녀와 총각인 재벌 2세의 사랑이 하루아침에 로미오와 줄리엣 구도로 돌변한 것. 결국 이세윤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를 거쳐 하반신을 쓰지 못한 위기까지 거치며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다.
'백년의 유산' 속 막장 코드는 대략 ‘시집살이’ ‘며느리살아’ ‘마마보이’ ‘악역’ ‘출생의 비밀’ ‘재벌가와의 사랑과 결혼’ 등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결국 '백년의 유산'의 막장 코드는 ‘막장종합선물세트’라고 정리할 수 있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가 MBC 드라마의 부활을 선도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MBC 드라마가 막장 코드를 벗고 한 차원 다른 드라마를 보여줄 수 있느냐다. 그만큼 MBC의 2013년 하반기 드라마들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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