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이긴 하나 기적은’ 도박 접고 아름다운 탈락

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

입력 2013.03.06 08:26  수정

9말 의식한 도박없이 스포츠정신 입각

1라운드 탈락으로 세 가지 교훈 얻어

[대한민국-대만]대만전 역전승은 이기고도 기쁘지 않은 이상한 상황으로 전개됐지만, 탈락이 확정적인 순간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대표팀의 투지는 태극마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0-2로 끌려가던 8회말 기적 같은 역전이 일어났다.

선두타자 이승엽이 좌중간을 가르는 인정 2루타로 포문을 열었다. 다음 타자 이대호의 좌전 적시타로 이승엽이 홈으로 들어와 1-2 추격전을 펼치며 궈홍치를 압박했다.

5번 김현수는 헛스윙 삼진, 6번 전준우는 2루수 라인 드라이브로 물러나며 투아웃에 몰렸다. 2사 1루 기회에서 추격의 불씨가 꺼지려는 찰나에 강정호의 극적인 좌월 역전 투런 홈런이 터졌다. 뒤집기에 성공한 극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대표팀 벤치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6점차 이상의 승리가 아니면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9회초 수비에서 장원삼이 선두타자를 출루시키자 상황이 복잡해졌다. 차라리 1점을 더 주고 3-3 동점을 허용하면 9회말 반격에서 6점차 승부의 모험을 걸 수 있게 된다.

한국팀 벤치는 도박보다는 스포츠 정신 그 자체에 충실했다. 끝판대장 오승환을 투입, 세 타자를 맞이해 삼진 두 개를 곁들이며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고의 동점 허용은 스포츠맨십이 아니다. 한국 대표팀은 정정당당한 승부와 아름다운 탈락을 택했다.

대만전 역전승은 이기고도 기쁘지 않은 이상한 상황으로 전개됐지만, 탈락이 확정적인 순간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대표팀의 투지는 태극마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지난 두 번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터라 예선 1라운드 탈락의 후유증은 적지 않을 수 있다.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의 말처럼 한국 대표팀은 이번 탈락에서 세 가지 값진 교훈을 얻었다.


대만 야구의 가파른 성장세

한국은 그동안 일본을 따라잡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대만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작년 아시아시리즈에서 라미고 몽키스에 한국 대표팀 삼성이 0-3 완패했을 때, 삼성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자위했다.

하지만 이번 WBC 예선 1라운드에서 나타난 대만의 조직력과 공수 짜임새는 몇 년 전과는 달랐다. 단순히 힘을 앞세운 타격에서 벗어나 정교함도 갖추기 시작했다. 한국의 힘과 일본의 세기를 융합한 야구를 추구한다는 느낌마저 줬다.

허술했던 수비의 짜임새는 오히려 한국 대표팀을 위협할 정도였다. 정근우가 대만전에서 기록한 2개의 주루사 모두 대만의 정교한 중계 플레이에서 나온 것이다. 1회말 2루 도루 때 중견수 앞으로 빠진 송구를 재빠르게 잡아 3루로 뿌린 대만 중견수 린저쉬엔의 정교한 송구는 위협적이었다.

5회말 이대호의 우중간 안타에 홈으로 파고들 때 타이밍으론 세이프였지만, 대만 포수 가오즈강의 완벽한 블로킹에 가로막혀 득점에 실패했다. 과거 일본이나 한국이 선보였던 정교한 수비 플레이가 대만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만이 결코 한국보다 한 수 아래의 팀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한국은 이제 위의 일본만 바라볼 게 아니라 아래의 대만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번 대회에서 얻었다.


돔구장 인프라의 필요성 절감

이번 WBC 예선이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이유 중 하나는 날씨와 무관치 않다. 대만 타이중은 3월 평균기온이 20도 정도다. 올해는 이상기후로 쌀쌀했지만 국제경기를 열기에 괜찮은 기온이다. 일본은 대신 돔구장이 많다. 한국만 제외하고 대만과 일본에서 WBC 예선 1라운드 A,B조 경기가 열리는 이유는 바로 기온 문제다.

대만이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에 힘입어 네덜란드와 호주를 완파하고 한국에 종반까지 앞서는 선전을 펼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홈 어드밴티지다. 홈 어드밴티지에는 자연스레 홈 텃세도 수반되기 마련.

한국은 대만전에서 두 번의 아까운 심판 판정 손해를 봤다. 김현수 타석에서 발생한 타격 방해 문제와 그 이전 타석에서 스트라이크존 판정 논란이다. 대만은 이번 예선전에서 홈 어드밴티지를 분명히 누렸다. 한국전만 아니라 호주전에서도 그런 논란은 지속적으로 빚어졌다.

심판도 경기력의 일부라고 한다면 홈 어드밴티지도 경기력의 일부일 수 있다. WBC 예선이 계속 3월에 열릴 경우, 한국은 예선 라운드에서 홈경기를 전혀 가질 수 없다. 돔구장과 같은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국이 향후 WBC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홈에서 라운드 경기를 치러야 한다.


'팀 코리아 기적' 원천은 병역면제가 아니어야

이번 WBC 예선은 이전 두 차례보다 뭔가 벤치의 투지나 응집력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박희수가 삼진을 잡고 들어와도 벤치에서 격려하고 다독이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강정호의 역전 투런포가 터졌을 때도 과거처럼 소위 '오버'하지 않았다.

지난 2009년 WBC에서 헬멧이 부셔져라 투지를 보였던 이용규 역시 투수 앞 땅볼을 치고 1루로 가지 않아 박찬호 해설위원으로부터 따끔한 지적을 받았다. 물론 상대가 일본이 아닌 대만이라는 특수성도 참작해야 한다.

이번 대표팀은 소집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팀은 많이 차출한다는 불만으로 선수를 부상이라는 이유로 교체한 게 몇 차례나 된다. 류현진이나 추신수 등 메이저리거들은 소속팀 적응과 이적 문제로 WBC 불참했다.

과거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진 국제경기에 한 선수라도 더 병역 미필자를 참가시키려던 구단과 선수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이번 대표팀에 참가한 선수들은 대부분 병역 면제를 받은 선수들이다.

과거 WBC와 베이징올림픽에서 보여준 팀 코리아의 기적과 몸을 던진 허슬플레이가 애국심이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면 참으로 애석할 지도 모른다. 태극마크의 결연함이 아니라 병역면제가 동기를 부여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있었다면 지난 영광이 초라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태극 마크를 달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감독과 코칭 스태프, 그리고 모든 선수들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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