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등판’ 고원준…제2의 애니콜?

입력 2011.04.21 06:11  수정

‘8일간 4회 등판’ 투구수 148개

장기레이스 위해 규칙적 등판 필요

고원준이 지금 같은 페이스로 시즌을 치를 시 예상기록은 76경기 출장, 139.1이닝이다.

“동원아, 우야노 여기까지 왔는데!”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앞둔 롯데 강병철 감독이 최동원에게 건넨 말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삼성에 열세였던 롯데는 최동원이 혼자 거둔 ‘4승’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했다. 최동원의 선수생명과 맞바꾼 결과였다.

올 시즌 불펜투수로 변신한 고원준(21·롯데)의 최근 모습은 이러한 일화가 떠오를 만큼 걱정스럽다. 시즌 초반부터 등판 간격이 다소 짧고, 소화한 이닝도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고원준은 17일 LG전에서 3.1이닝 동안 공 47개를 던지며 무실점 호투했다. 하지만 이틀 만인 19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또 3.1이닝을 소화했다. 개막 후 14경기 중 8경기에 등판, 14.2이닝을 소화한 고원준은 전날까지만 해도 규정이닝(14이닝)을 채우며 평균자책점 1위로 올라섰다.

팀 내 선발투수들과 비교하면 코리(25.1이닝), 송승준(18.2이닝), 장원준(16.1이닝)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던졌다. 이재곤(11.1이닝) 보다는 오히려 2.9이닝이 많다.

불펜투수들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커진다. 마무리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김사율은 7이닝(7경기)을 던졌고, 임경완은 8.1이닝(9경기), 강영식은 4이닝(7경기)을 소화했다. 이닝 수만 살펴보면 필승조는 고원준 혼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게다가 이들이 부진할 경우 고원준의 부담이 얼마나 더 가중될지 걱정이다.

또한 고원준은 지난 8일간 4회 등판해 11이닝 동안 148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대략 200개 정도를 던지는 선발투수에 비해서는 적은 수다. 그러나 매 경기 긴장하고 몸을 풀어야한다는 점, 등판 때마다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148개는 엄청난 숫자다. 이러한 연투는 투수의 수명을 갉아먹는 주요 원인이 된다.

고원준이 지금 같은 페이스로 시즌을 치를 시 예상기록은 76경기 출장, 139.1이닝이다. 수치를 보면 문득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바로 ‘애니콜’ 시절의 임창용(당시 삼성)이다. 임창용은 23살이던 1999년 71경기에 나와 138.2이닝을 소화하며 13승 4패 38세이브를 기록했다. 선발투수로는 한 번도 등판하지 않은 점이 더욱 경악케 만든다.

하지만 임창용은 시즌 막바지로 향할수록 힘에 부쳐했고 결국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호세, 임수혁에게 결정적인 홈런포를 맞는 등 삼성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게 된 원흉이 되고 말았다. 이후 계속된 혹사 여파로 그는 일본진출 전까지 한동안 제 구위를 찾지 못했다. 고원준도 이렇게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아무리 젊다고 해도 관리는 필요하다.

마구잡이식 등판시기도 문제다. 고원준이 등판한 8경기 중 팀이 리드한 상황에서 나온 경우는 4경기다. 때문에 홀드는 없고 세이브 역시 고작 1개에 불과하다. 반면 올 시즌 두산의 뒷문을 맡고 있는 임태훈은 7경기에 나와 1승 5세이브를 거뒀다.

이제는 필승조든 마무리 투수든 빨리 낙점시켜 규칙적인 등판을 시킬 필요가 있다. 방만한 운영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눈앞의 승리 때문에 ‘원맨 불펜’을 운영하는 것은 더 이상 장기적인 레이스를 위한 판단이 아니다.

고원준의 투구는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상대타자를 압도하는 남다른 구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구위가 뛰어난 투수라도 혹사 앞엔 장사 없다. 혹사로 인한 구위하락으로 임창용처럼 수년을 고생할 수도 있으며 최동원처럼 30대 초반에 조기은퇴를 할 수도 있다.

배짱 투구하는 모습이 멋졌던 투수가 혹사로 인해 자신의 공을 믿지 못하고 도망가는 투구를 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앞으로 10년 이상 롯데를 책임질 선수다. 고원준에게는 그런 일이 없어야한다. [데일리안 스포츠 = 이광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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