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 않는 자 저주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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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워 않는 자 저주 받아 마땅하다
    <칼럼>3.1정신은 일본의 절망 미리 경고한 준엄한 인간메시지
    스스로 미래 위해 축소·왜곡·은폐한 반인륜 행위 빨리 속죄할 것
    기사본문
    등록 : 2010-03-01 08:24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제암리의 어떤 살육 사건을 기억하는가. 중국이 난징 대학살을 끝까지 기억하듯이, 우리도 인간 반역의 일제 만행을 기미년 학살과 마찬가지로 관동대지진 집단살인을 3.1절마다 되풀이하여 왜구(倭寇)의 살인만행을 계속 기억해 나갈 것이다.

    “젖먹이를 안고 숨진 젊은 엄마, 도망치다 쓰러진 노인네들, 시꺼멓게 얼룩진 이 참상이 그대에게는 보이지 않느냐. 만일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저주받아 마땅하리라, 동해의 섬나라여.”

    일본의 영문학자 사이토 다케시의 ‘어떤 살육 사건’이라는 양심과 정의에 기초한 시(詩)의 일부다. 당시 조선군사령관 우쓰노미야(宇都宮太郞)의 1919년 4월 18일자 일기는 지금의 일본 정부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다.

    "간부 회의에서 저항을 해 살해한 것으로 하고, 학살·방화 등은 시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밤 12시 회의를 끝냈다.” 학살·방화를 자인하는 것은 일본의 입장에 심대한 불이익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정부 차원에서 사건을 철저히 축소·왜곡·은폐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바로 보고 분노하면서 힘을 키워 우리를 지키는 것이 91년 전 우리 선열들이 갈망했던 올곧은 3.1독립정신이 아닌가.

    본질을 기억하라 "어떤 살육 사건"

    기미년 대한독립만세의 학살이 마무리될 즈음 1923년 9월 1일, 하늘도 무심하지 않게 대지진은 동경 일대를 덮쳤다. 이때 재난극복이 어려워지자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을 왜곡하기 위해 각 경찰서에 또 왜구(倭寇) 근성의 지침을 하달했다.

    “조선인들은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다.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다”고 하자 언론은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라고 선동했다.

    이 때 조선인 학살자 시체들은 대부분 암매장되거나 강에 버려졌다. 죽은 자는 약 6천 명 이상이었으나, 일본정부의 공식추산은 겨우 233명이었다. 이 천인공노할 만행은 “비 온 김에 청소”라는 왜구(倭寇)들의 기습약탈 판박이 그 자체였다.

    결국 자경단의 칼부림은 경찰이 부채질한 것이다. 당연히 이 잔혹한 학살 사건으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신대와 징용과 징병의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책임회피와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우리는 아직까지도 관동대지진 학살 사건에 관해 어떠한 사과 한마디조차 일본에게서 듣지 못했다. 그러나 강제징용과 징병, 물자수탈, 국권강탈, 생명유린, 정신대 강제동원, 독도 침탈 등 우리가 일본에게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 할 일들은 아직도 널려 있다.

    앞날을 위해 일본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 역사와 선열들이 겪었던 식민지 약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바로 3.1정신이다. 그래서 3.1 대한독립만세는 인간적 양심과 정의의 시각을 통해 일제의 야만성과 폭력성과 반인륜을 고발하는 단축키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3.1정신은 일본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는 유비무환의 교훈

    한자의 도적 구(寇)는 떼도둑, 약탈(掠奪), 노략질(擄掠)을 뜻한다. 오죽했으면, “내가 죽으면 호국 용(龍)이 되어 왜구(倭寇)를 막겠으니 바다에 묻어 달라”고 했을까. 이처럼 신라 문무왕(文武王)의 유언이 입증하듯이 왜구는 고대부터 우리의 살과 피를 빨아 먹은 흡혈 아귀(餓鬼)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왜구의 후손들에게 우리가 너무 아둔하고 내일을 볼 줄 몰라 식민지 침탈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왜구의 흔적을 지우려고 조선을 삼키기 이전부터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말살하고, 변조·왜곡·은폐하는데 골몰했다. 정부 차원에서 엄청난 돈과 오도된 학자들을 투입하여 조직적으로 삼국 시대 이전의 한민족 역사를 모조리 허황된 얘기꺼리로 둔갑시키고 말았다.

    단군과 부여의 웅대한 민족문화사가 모조리 왜구들의 침탈에 난도질당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일제는 우리에게 “단결력이 약한 민족, 조센징은 도리가 없다. 사대주의 표본, 독립심이 없고 무능한 인종” 등으로 열등의식을 심기 위해 역사는 물론 교육에도 고의적이고도 악랄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왜구(倭寇)의 족속이라는 열등의식을 우리에게 덮어씌운 양심과 진실을 저버린 광분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런 왜구(倭寇)들의 칼날에 난도질당한 삐뚤어진 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91년 전 기미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피를 흘렸던 선열들이 지금도 땅을 치며 통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역사정신의 회복을 외면하는 아둔한 민족 정체성 훼손과 분열이다.

    왜구(倭寇)와 불구(佛寇)…왕실도서와 조선왕실의궤

    일제는 역사와 우리 민족정신과 관계되는 책 수십만 권을 불사르거나 약탈해서 어디엔가 숨겼다. 최근 조선왕실의 도서 660책이 일본 궁내청에 있다는 사실과 이를 반환하라는 소리가 불거졌다.

    그런데 남의 땅을 침략해 그 나라 책을 도둑질하고서도 돌려주지 않는 국가가 무슨 문화강국을 외치고, 지구촌 선진국을 자처할 수 있나. 그 책을 궁내청에 숨겨 놓고도 마음이 편한가.

    이는 분명 왜구(倭寇)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반증하는 짓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나 문화유산 관계자들도 반환, 영구임대, 교환 등을 떠들면 안 된다. 테러 집단과 떼도둑과는 어떠한 협상도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원칙의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은 왜구(倭寇)와 떼도둑 소리 듣기 싫으면 조용히 돌려주면 그만이다. 이는 조선왕실 의궤를 도둑질한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불구(佛寇) 소리 듣기 싫으면 빨리 돌려주면 된다. 아둔하게 우리가 먼저 영구임대 같은 소리하면 진짜 바보로 전락하게 된다. 일본과 프랑스는 이런 약탈을 마무리 짓지 않고서는 절대로 문화강국과 글로벌 선진국을 떠들 수 없다. 언젠가는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 행복과 안전은 공짜가 없다

    1905년 11월 17일 초겨울, 이등박문(伊藤博文)은 주한일본공사 임권조(林權助)와 함께 군대를 동원하여 고종을 협박하면서 가장 반대했던 참정대신 한규설을 군대를 동원하여 겁박하고, 군대를 외무부로 보내 외무대신의 관인을 강제로 가져다가 조약안에 날인·공표해 버렸다.

    이것이 을사늑약(乙巳勒約)이다. 모든 잘못은 국력과 통합을 외면한 힘이 없는 우리의 업보였지만, 조약에 찬동한 자는 을사5적신 외에도 왕족과 상당한 지배층들이 이등박문(伊藤博文) 앞에서 해죽거렸다.

    이런 상황이니 을사늑약 이후 경술국치에 이르는 과정은 하나의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1904년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 1905년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 1907년 한일신협약(제3차 한일협약, 정미7조약), 1910년 병탄국치로 식민지 강탈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망국의 길은 너무나 빨랐다. 꺼진 국운을 되살리고자 하는 지사와 민중들의 잇따른 분사(焚死), 의병들의 멸사(滅私)의 몸부림, 헤이그 밀사 파견, 안중근의 쾌거, 국채보상운동, 민중들의 각성도 상당수 있었지만, 이들보다 일제에 빌붙은 민족반역자들이 더 많았다. 결국 이미 때는 늦어 국운은 어둠의 길로 치닫고 말았다.

    이런 치욕의 정점이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였다. 그래서 100년 후 오늘 우리가 빼앗긴 주권의 역사에서 뼈저린 교훈을 찾는 일을 망각하면 또 다시 무참하게 당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평양에서 조선사람들을 학살하는 일제침략군. ⓒ연합뉴스

    첫째는 국력이다. 국력은 군사력·정치력·경제력·통합력이 똘똘 뭉친 애국심이 핵심이다. 둘째는 지도자의 양식이다. 고종과 민비의 ‘무책임·무경륜·무정견’은 말할 것도 없고, 위정자로서 자기 일신의 영화만을 위해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가 어떻게 정치지도자로 행세할 수 있었는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똑똑히 목도해야 한다.

    셋째, 민족 일체감이다. 비록 주권을 탈취당하고 국가는 망했지만, 주권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 민중이 각성하고 일체감을 미리 형성했으면 민족의식 차원에서 운명공동체로서의 자아관(自我觀)을 확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생각대로 흩어졌고, 일제의 기만술책에 철저하게 놀아났다.

    넷째, 국민의 행복과 안전에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이다. 식민강탈 35년은 분명히 일제의 반인륜적 강탈행위였지만, 역사는 언제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침탈을 당하게 내버려 둔다. 이것이 역사의 냉혹함이다.

    침탈의 고통과 수난은 고스란히 민생들의 몫

    한나라 무제가 만주를 평정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조선은 내분으로 자중지란을 벌였다. 고-수전쟁과 고-당전쟁의 설욕을 위해 당나라가 분명히 침략할 것을 알면서도 백제와 고구려는 향락과 권력다툼으로 무너졌다. 거란족을 통일하고 요나라 황제가 된 야율아보기는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발해를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발해는 안락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신라와 고려도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끝내는 왜구(倭寇)의 약탈로 인하여 민심이 이반되고 사회기틀이 무너져 멸망했다. 조선의 국력이 금이 간 것은 결국 임진왜란 이전의 분란 때부터다. 그래서 대한국(大韓國, 1897~1910) 병탄은 왜구들 후손인 일제가 300여 년에 걸친 정한론(征韓論)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정묘와 병자호란, 한말의 제국주의 침탈, 6.25 남침 모두가 사전에 침략과 도발의 징후가 분명히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권력자와 지배층들은 이를 무시하고 안락에 빠져 자화자찬으로 일관했다. 결국 일이 터지면 그들은 먼저 도망가기에 바빴다. 자연히 침탈의 고통과 수난은 고스란히 민생들의 몫이었다.

    실질적인 일제의 지배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부터다. 경술국치 이후 35년간 황민화를 강요하는 일제의 침탈을 받는 가운데, 한민족 2천만 명은 갖은 고초와 무시와 모멸과 착취를 당했다. 수모, 곤욕, 천시, 눈물, 한숨, 악몽, 그야말로 망국민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겪지 않아도 될 온갖 고초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3.1절이 있는 한 극일(克日)은 살아 있다

    그러나 3.1정신과 같이 우리의 애국과 구국의 정신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을사늑약 이후 민영환의 할복, 80세 조병세의 음독, 송병선의 음독, 홍만식, 이상철과 같은 고급관리나 김봉학과 같은 일등병 병사, 주영 서리공사 이한응과 이석종 등의 순국은 민족 전체의 울분과 참과를 대변해 주었다.

    심지어 군부대신 이근택의 찬비(饌婢, 반찬을 만드는 여자 하인)는 자기 주인이 을사늑약의 매국노 중 한 사람인 것을 알고는 “나는 네가 흉역(凶逆)한 일을 저지를 놈인 줄 여태 몰랐다. 여러 해 이 집에서 일해주고 밥을 얻어먹은 것이 분하고 원통하며, 이 치욕을 씻을 길이 없다”라고 비분강개했다고 한다.

    또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의열단 선언)은 9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3.1정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 누구이냐? 너희들은 동양평화, 한국독립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의 먹물이 마르지도 않아 삼천리강토를 집어 삼킨 역사를 잊었느냐?”

    조센징과 왜구(倭寇) 자손들…누가 이미지 손상이 크나

    지금도 일본에 살아보지 않고서 ‘조센징’이라는 몸서리치는 느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최근에도 일본인들은 대마도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을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조센징은 돌아가라, 기무치(한국인 비하 표현)는 돌아가라”고 외쳤다.

    이는 단순히 일본 극우단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다. 근원적으로 한국인을 비하하고 식민지 약탈을 우상화하려는 짓거리다. 왜냐하면 일본 왕과 정치인들은 아직도 정신대 인종말자 짓거리와 한반도 반인륜적 강탈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센징 돌아가라”와 이들의 작태가 너무나 똑 같지 않은가?

    경술국치 100년과 3.1절 91주년, 일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3.8배, 인구는 2.5배다. 앞으로 국민총생산(GDP) 5.3배와 1인당 국민소득 2.1배의 격차를 점점 더 줄어야 한다. 지난 세월 서구투기자본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메이지유신으로 산업화와 군사대국화를 이룩한 일제는 영국이 아편으로 중국을 유린했듯이, 한반도를 총칼로 유린했다.

    그러나 역사는 냉엄하면서도 공정하다. 그래서 역사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반인륜 행위를 언젠가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91년 전 3.1정신이 이러한 역사의 정의를 미리 경고한 준엄한 메시지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빨리 깨우칠 필요가 있다.

    일제의 황민화 정책은 한민족에 대한 신체와 물적 약탈 이전에 '정신적 학대'였다. 신도(神道) 사상을 내세운 국가주의, 한반도 노예화, 우리의 글과 역사와 조상을 말살하는 대신에 일제의 말과 역사와 조상을 강요했다. 한반도 전체가 김정일의 요덕 수용소와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우월의식, 지배 복종의 논리를 합법화하기 위해 유교 봉건사상을 사무라이 칼로 왜곡했다. 이처럼 일제의 황국신민화의 정신노예화 약탈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가혹하고도 너무도 처참했다. 바로 야만적 왜구(倭寇)의 살인약탈 행위 그 자체였다.

    직시하면서 힘을 키워 우리를 지키는 것이 3.1정신의 본질

    이러한 점을 상기할 때, 91년 전 3.1정신은 모든 면에서 실패하지 않는 선험적인 인간정신의 발로였다.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 농민 계층의 허약한 운동, 민족자결주의의 선진국 논리, 관념적인 무저항주의 등이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단견에 불과하다.

    3.1정신의 본질은 당시 인도나 중국을 자극하는 차원을 떠나 심오한 인간정신을 깨우치는 양심과 정의의 북을 힘차게 두드린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홍익인간의 깨우침이었다. 계층·신앙·지역·성별·노소를 초월했다. 세계 정치문화사에 3.1운동만큼 민족 스스로의 자발성에 의해 평화적으로 촉발된 독림정신운동이 있었던가.

    이처럼 3.1정신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일본은 솔직한 자세로 독도 침탈과 식민지 약탈 만행을 사죄한다면 더 이상의 문제는 불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후안무치(厚顔無恥)가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3.1절이 있는 한, 일본은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왜구의 자손이라는 오명(汚名)으로 계속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상처를 잊지 않고 우리 내부를 성찰하는 시각 갖춰야

    G-2 분란 속에 한반도의 ‘미친 유산’ 김정일은 핵놀음으로 우리 동포 2천 5백만을 개돼지처럼 취급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가치를 깔보고, 중국은 북한을 거의 자기 땅으로 간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계부채 등 드러나지 않는 경제체질은 허약하고, 부품소재 등 대일무역 역조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무역대외의존도와 식량주권은 너무나 위태롭다. 고령화와 일하지 않으려는 노동의욕상실은 실업문제로 왜곡되어 국가역량을 주저앉히고 있는 형국이다. 모두가 통치와 정치력의 부재에서 촉발된 사안들이다.

    이런 상황에 경제난조에 빠진 일본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래서 3.1절 하루만이라도 우리의 권력자와 위정자들은 왜 우리 선열들이 한반도와 만주뿐만 아니라, 중국과 전 세계를 돌며 피를 흘리고, 전 재산을 바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는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작금의 세종시 해법도 단박에 나올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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