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이테를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
“기생초가 참 곱다.”
비가 내린 뒤라서 그런지, 꽃들이 피어 있는 곳은 질퍽거린다. 그러나 꽃에 가려서 잘 보이지가 않는다. 시선은 곱게 피어난 꽃에 집중이 되어 있다.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물기는 알 수가 없다.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에 취하여 다른 것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것은 영원히 감춰질 수는 없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금방 드러나고 만다.
내려다보이는 옥정호는 물이 차 있지 않다. 중부 지방에서는 태풍 갈매기와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물난리가 나 있지만, 이곳은 물이 부족한 것이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어 바라보는 시선을 안타깝게 할 정도다. 세상이 원래 불공평하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곳은 물난리로 고통 받고 어느 곳은 가물어서 고통이니.
드라이브 코스로 대한민국 100 대 도로에 들어 있는 옥정호 코스는 주변 풍광이 아주 아름답다. 계절마다 독특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봄에는 새싹의 싱그러움이 넘치고 여름에는 신록의 무성함에 취할 수 있다. 가을이면 단풍의 매력에 젖을 수 있으면 겨울이면 하얀 풍광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신록의 무성함을 즐기기 위하여 찾은 옥정호였다. 기대한 대로 도로 두변의 풍광은 힘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거기에다 곳곳마다 고운 꽃이 피어나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그 아름다움에 이름값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감탄하였다. 그런데 마음을 무겁게 잡는 것이 바로 호수의 물이었다. 장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빠져 있는 모습이 2 %를 부족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마음으로 구축해놓은 지도가 있다. 그 지도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쌓여서 고정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는 그 사람의 말이나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태도와 결정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름 옥정호를 바라보면서 무거워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호수에는 물이 넘실거리고 주변에는 화려한 꽃들이 피어 있을 것이란 생각은 바로 마음의 지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차이가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다. 원추리 꽃 사이로 보이는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나를 들여다본다. 세상 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의 지도가 얼마나 허상인가를 생각해본다.
쉬고 있는 잠자리를 바라보면서 나이를 생각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우선 당장 고통스러운 것은 병이다. 안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 감기로 기침을 쿨럭이다 약을 먹고 나아질 즈음이면 다리가 말썽이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통증을 감지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주름살만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젊었을 적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모두 다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더욱 더 큰 문제는 마음은 아직도 열정으로 넘치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과 신체의 불균형이 무거운 추로서 압박하고 있다. 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기에 난감한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처음에는 부정으로 일관한다. 늙는다는 것은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우긴다. 몸 관리를 하게 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신념은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무기력해진다.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고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면 더 살고 싶은 생각은 사라지고 만다.
나이 먹는 것을 거부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은 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눈에 들어오는 꽃을 바라보면서 생각의 관점을 바꿔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나이를 긍정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름다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곱게 늙어 가는 것.
꽃을 바라보면서 저렇게 늙어간다면 아름다운 늙음이 아닐까? 꽃에게서는 낡음도 없고 허무도 없다. 절망도 없고 고통도 없다. 거기에는 참다운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인생의 무게를 보여줄 수 있게 된다. 마음 한번 돌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사실에 전율하게 된다.
옥정호에서 고운 꽃을 바라보면서 곱게 늙어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누구나 다 나이를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곱게 늙어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마음 한번 돌리면 되는 일이 아닌가? 꽃처럼 화려하게 인생의 나이테를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春城>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