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 전설의 역사 속으로 ①
지난 4일 프라이드 FC 월드와이드(프라이드의 주최사)는 도쿄 사무소 폐쇄 및 직원 전원 해고를 단행, 사실상 프라이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계최고 수준의 격투무대를 아끼고 사랑했던 격투팬들은 설마 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 어떤 무대보다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라이드라 주변의 실망과 낙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 보이고 있다.
이는 국내 팬들의 분위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같은 동양 MMA단체인 히어로즈를 비롯해 WEC, IFL, 보독 파이트, UFC, 엘리트XC 등 무수한 단체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하나둘 돌아서고 있는 팬심을 붙잡기에는 다소 모자라 보인다. 이는 프라이드가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 프라이드가 기적같이 돌아와 다시 한 번 팬들의 뜨거운 눈물을 쏟게 만들 수도 있고, 다른 단체들이 그 대안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많은 팬들의 열광 속에 프라이드가 존재했던 만큼, 그리움의 시간 역시 꽤 길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안 스포츠>는 그동안 프라이드의 멋진 경기와 명파이터들을 중심으로 지난날을 돌아보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미르코 크로캅과 조쉬 바넷
크로캅-바넷, 프라이드 헤비급의 마지막 인기주도
‘불꽃하이킥’ 미르코 크로캅(33·크로아티아)과 ‘동안의 암살자’ 조쉬 바넷(30·미국)은 프라이드 헤비급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이른바 쌍두마차였다.
물론 두 선수는 성적 면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에 미치지 못했지만, 각각 특유의 파이팅 스타일과 쇼맨십으로 큰 인기몰이를 했다.
크로캅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프라이드 최고의 인기파이터였다.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을 제외하면 변변한 타이틀 하나 없지만, 최고수준의 강력한 타격기를 바탕으로 매번 화려한 경기를 펼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를 증명하듯 파이트머니와 각종 격투상품의 가격에서도 그의 가치는 최고중의 최고를 달렸다.
이는 국내 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종합격투기가 대중들의 품에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크로캅이 뿜어낸 카리스마와 절대적 인기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프라이드는 몰라도 크로캅은 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격투기에 별반 관심 없는 여성 팬들조차 크로캅에게 열광했다. 지난 2005년 크로캅과 효도르의 ‘세기의 맞대결’은 격투기사상 최초로 극장에서 합동응원전이 열렸고, 당시 폭발적인 반응으로 국내격투기 시장은 한층 더 커졌다.
바넷(사진 좌)과 크로캅은 프라이드 헤비급의 마지막 인기를 이끌었다
크로캅과 달리 바넷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파이터다. 일단 인기는 좋았지만 프라이드에 합류한 시기가 너무 늦었다. 바넷은 무차별급 그랑프리를 통해 팬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그 뒤 프라이드가 ‘잠정휴업’에 들어감에 따라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팬들은 그와 효도르의 대결이 이뤄지지 못한 것을 지금까지도 아쉬워하고 있다.
크로캅이 강렬한 타격으로 팬들에게 어필했다면 바넷은 커다란 체구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함과 동시에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깔끔한 서브미션 테크닉으로 눈길을 모았다.
바넷은 2005년까지만 해도 잠룡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무차별급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 마크 헌트, 심지어는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마저 제압, 단숨에 프라이드 헤비급 최고 스타 중 하나로 부상했다.
실제로 그는 UFC시절 이미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검증 받은 강자로 링과 옥타곤 어느 곳에서도 제몫을 해낼 흔치않은 파이터로 분류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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