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갈매기에는 ´승리´가 아닌 ´사람´이 있다

입력 2007.09.08 09:32  수정

‘신문지와 쓰레기봉투 응원, 평일 만원 관중이 가능한 국내 유일한...’

프로야구를 조금이라도 봤던 사람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단박에 위에 나열한 문구만 보고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다.

외야에 걸린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팬들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가슴 저린 현수막을 보며 야구하는 롯데 자이언츠라는 것을 바로 떠올린다.


프로야구 최고의 브랜드 ´자이언츠´

부산 사직구장에서 한 번이라도 원정팀 응원을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주눅이 든다”고 말한다. 그만큼 롯데 팬들은 열정적이다. 오죽했으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응원 문화가 사회적인 이슈가 됐을까.

롯데 팬들의 응원은 승패와는 무관하다. 0-7로 뒤지고 있어도 사직 구장은 부산 갈매기가 울려 퍼지고 신문지는 휘날린다. 8회말이 되면 어느새 팬들은 주황색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다.

야구가 있는 날 사직 구장 일대는 신명나는 축제의 장으로 변신한다. 바로 이런 열정적인 팬들의 힘이 오늘날 ´자이언츠´라는 브랜드를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어 냈다.



롯데 팬들의 소박한 행복론

롯데가 2000년대 들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해는 65승 4무 64패(5위)를 거둔 2000년이다. 승률이 간신히 5할을 넘고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실패했지만, 그나마 롯데가 2000년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시즌이다.

2000년 들어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4년 연속 꼴지에 머물러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붙게 됐다.

일반적으로 이쯤 되면 팬들도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롯데 팬들은 시즌 초반 롯데가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보이면 여지없이 사직구장을 가득 메우고 부산갈매기를 열창한다. 비록 시즌 후반엔 ´에이 그러면 그렇지´하고 씁쓸한 마음에 애써 등을 돌리려 하지만 그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올 시즌 현재 롯데는 50승3무60패를 기록, 4위 한화에 8게임 뒤진 6위에 올라있다. 롯데의 남은 게임이 불과 13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올 시즌도 포스트시즌 진출은 어렵다.

그래도 올 시즌은 8월 말까지 4강 진출의 희망은 살아 있었다. 롯데가 시즌 막바지까지 4강 진출 희망을 부풀렸기에 프로야구 400만 명 시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말도 나온다.

롯데 팬들은 마치 ´우승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정도로 열정적인 롯데 팬들이 원하는 것은 놀랍게도 롯데의 우승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금 특별한 것에 집착을 하고 있다.



부산 갈매기에는 ´승리´가 아닌 ´사람´이 있다

롯데 팬들이 우승보다 더 집착하고 있는 것은 과거다. 두 번 우승을 차지한 사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에게 집착을 한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해도 좋으니 주형광이 다시 한 번 시원하게 공을 던져주길 바란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못해도 좋으니 염종석이 시즌 끝까지 정상적으로 투구하는 모습을 그리워한다.

최근 2군에서 조차 출장하지 못하고 있는 LG 마해영 소식에도 롯데 팬들의 가슴은 아리다. 마치 집나간 자식을 그리워하듯 애틋하게 그들을 그리고 있다.

‘우승 못해도 좋으니 제발 눈에 밟히는 선수들 챙겨라’고 구단에 외친다. 바라는 것이 참으로 소박하다. ‘제발 경기 좀 포기 안했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한다. 오죽 했으면 ´선수들이 포기 안하면 팬들도 포기 안 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을까.

세상에 어느 야구팬이 팀의 우승을 바라지 않을까. 당연히 롯데 팬들도 우승과 가을 잔치에 굶주려있다. 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부산 갈매기에는 승리에 앞서 사람이 먼저 있다.

내년 시즌 초 부산 사직 구장은 또 다시 만원관중이 들어찰 것이다. 그리고 또 부산 갈매기는 울려 퍼질 것이다. 프로야구 응원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 롯데 팬들. 그들이 있어 프로야구가 더욱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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