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17 대표팀] 성적 부담 없이 축구를 즐겨라!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7.08.21 19:56  수정

승리도 좋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결과만 강요하는 것은 가혹

‘2007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는 한국 대표팀이 21일 오후 8시(수원종합운동장) 코스타리카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가진다.


성인축구계에서 멕시코-미국과 더불어 북중미 ‘빅3’로 불리는 코스타리카는 유소년 축구 또한 강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U-17 월드컵에만 이번 대회까지 7번째 본선진출이며 최근 3개 대회서 연속 8강에 오를 정도로 꾸준한 성적을 과시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 현재 승점 1점을 따놓은 상태다.

이미 지난 18일 페루와의 1차전(0-1)을 패하며 아쉬운 첫 출발을 내딛었던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코스타리카를 잡아야 한다.

지난 첫 경기에서 박경훈호가 보여준 모습에 실망한 팬들도 적지 않다. 공격이 측면보다 중앙에 치우쳤다거나 수비 조직력의 불안 등 여러 가지 전술적인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가장 아쉬웠던 점은 안방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자신감 결여라는 것.

한국 선수들은 당초 ‘1승 제물’로 점찍었던 페루의 전력이 예상보다 강한데다, 초반부터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편으로, 우리의 어린 선수들이 세계대회 첫 경기라는 중압감과 여론의 높은 기대 속에서 얼마나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다.

사실 이번 대회에 한국축구가 거는 기대는 내심 컸다. 개최국의 어드밴티지에다가 지난 2년 반 동안 이번 대회에 준비한 노력을 감안할 때, ‘4강 신화’를 거론하며 호성적을 기대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세계무대의 벽은 역시 생각처럼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한국에 첫 패배를 안겼던 페루 역시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했던 지난 2005년 본선 성적 1무 2패로 안방에서 초라하게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은 전례가 있다.

동기부여로 삼을 목표가 있다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대회가 어디까지나 17세 이하 청소년 선수들을 위한 대회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첫 경기 패배 이후 언론과 네티즌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다. ‘이게 이번 대회를 목표로 2년 7개월간 조련했다는 팀의 수준인가’하는 의문에서, 최근 인터뷰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모 선수의 경기내용을 지적하며 ’실력도 없으면서 입만 살았다‘고 비아냥거리는 등 가시 돋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잘못한 부분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은 물론 받아들여야겠지만, 한편으로 이제 불과 한 경기를 치른 어린 선수들을 두고 너무 가혹한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닌가란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U-17대회는 유망주들을 위한 대회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 연령대의 어린 선수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이런 큰 무대를 통하여 귀중한 경험을 쌓고 미래를 향한 잠재력을 꾸준히 키워나가는데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경기 내용이나 과정보다는 결과와 경쟁에만 집착하는 스포츠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이런 풍토 속에서 선수들의 개성이나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가 부족한 것이 당연하다. 세계무대에만 나가면 답답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을 탓하기 전에, 무엇이 우리 선수들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가로막는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 유망주들은 향후 5년 내지 10년 이내에 한국축구 미래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아직 축구의 즐거움을 깨우치기에도 부족한 나이에 16강이니 4강이니 하는 숫자놀음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지나친 멍에를 안겨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청소년들은 이제까지보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세월동안 한국축구를 이끌어나가야 할 선수들이다. 지난 2년 7개월의 투자가 아깝다고 ‘필승’이나 ‘투혼’을 강요하기보다 ‘후회 없이 축구를 즐겨라’라고 격려해주는 것은 어떨까.

◆코스타리카전 청소년축구중계
- 21일 오후 7시 50분, SBS 생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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