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 ´사실상 방출´…불운인가 자업자득인가

입력 2007.08.17 15:49  수정

콜로라도서 애리조나까지 불운

김병현(28)이 16일(한국시간) 애리조나로부터 지명할당(designated for assignment)됐다. 사실상 방출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명할당이 무조건적인 방출은 아니다. 지명한 선수를 40인 로스터에서 제외하는 지명할당은 메이저리그에서 거의 매일 이뤄지는 일상이다. 40인 로스터의 유동적인 운용을 위해 각 구단들은 지명할당을 수시로 결정한다.

그러나 김병현의 경우는 다르다. 켄 켄드릭 애리조나 구단대표는 김병현의 지명할당을 결정하며 ‘일본행’이라는 근거 없는 말을 뱉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한 경기, 한 경기가 다급한 애리조나는 김병현의 부진에 가차 없었다.



▲ 지독한 불운

올 스프링캠프에서 김병현의 표정은 밝았다. 체중이 5kg 정도 불어 볼 끝에도 더욱 힘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당시 콜로라도 소속이었던 김병현은 선발진 진입을 낙관하고 있었다.

지난해 투수들의 무덤으로 유명한 쿠어스필드에서 14경기에 선발등판, 5승5패 방어율 4.57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내며 콜로라도에 적합한 투수라는 평을 받은 김병현은 250만 달러에 재계약하며 덴버의 고지대에 잔류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풀타임 선발투수를 보장한 곳이 콜로라도였다는 점에서 김병현에게는 동기부여가 충분했다. 그러나 재계약을 할 당시부터 김병현은 트레이드카드로 거론됐다. 콜로라도가 로드리고 로페즈를 영입하며 선발진을 보강하자 현실화되는 듯했다. 트레이드가 아니면 불펜강등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병현으로서는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시범경기에서 조시 포그와의 제5선발 경쟁에서 밀리며 불펜으로 강등되고 만 것. 김병현은 시범경기 후 보직변경을 놓고 코칭스태프와 갈등을 일으켰다. 코칭스태프와의 의사소통 불화가 오해와 갈등을 야기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한 김병현은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트레이드가 쉽게 이뤄지지 않았고 김병현은 한 달여를 트리플A에서 날렸다. 콜로라도가 트레이드 협상에서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바람에 김병현은 구단과의 갈등의 골도 점점 깊어졌다.

어렵사리 5월19일 플로리다로 이적한 김병현은 그제야 심리적인 여유를 찾는 모습이었다. 플로리다에서는 팀 동료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구단이나 코칭스태프와의 관계도 원만했다. 콜로라도에서 찌푸린 인상만 보였던 김병현은 플로리다에서 미소를 더욱 자주 띠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가 극성인 플로리다지만 정감 있는 구단 분위기를 김병현은 마음에 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플로리다 이적 후 14경기에 선발 등판한 김병현은 5승3패 방어율 4.16으로 호투했다. 9이닝당 탈삼진이 8.09개일 정도로 구위가 뛰어났다. 스프링캠프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자신한 자신감이 거짓이 아님을 플로리다에서 입증해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50만 달러라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연봉이 김병현을 방랑자로 만들어버렸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지나 플로리다에서 올 시즌을 마감할 것으로 보였던 김병현은 지난 4일 웨이버 공시돼 애리조나의 낙찰을 받았다. 플로리다는 팀에서 4번째로 많은 김병현의 연봉이 부담스러웠고, 애리조나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랜디 존슨이 부상으로 빠진 마운드 보강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의사는 일절 반영되지 않은 채 이적한 김병현은 ‘친정팀’ 애리조나에서 2경기에 선발등판, 3⅔이닝 9실점(7자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지명할당 됐다. 애리조나가 김병현에게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그가 샌디에이고 등 지구 라이벌팀으로 이적해 전력보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입했다는 후문이 밝혀지자 더욱 허탈함을 느껴야했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 경쟁의 불똥이 엉뚱하게 김병현에게 튀고 만 셈이다. 불운이 아닐 수 없다.


▲ 자업자득의 결과

‘표지만 보고 그 책을 평가하지 말라’는 유명한 영어속담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재단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책의 표지와 디자인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이 시대에 김병현의 겉모습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김병현은 마운드에서 표정관리가 안 되는 투수로 유명하다. 좋다는 표시는 없어도 싫다는 표시는 표정에서 그대로 나타내는 타입이다. 이것이 악동선수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라지만, 프로선수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데 애로점이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애리조나 지역해설을 맡고 있는 마크 그레이스도 김병현의 이적 첫 경기에서 그의 표정관리에 대한 참된 조언을 했다.

콜로라도에서 플로리다 그리고 애리조나까지 김병현의 호불호는 분명했다. 동기부여가 되고 마음에 든 플로리다에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콜로라도와 애리조나에서는 따로 놀거나 붕 뜬 느낌이 강했다. 특히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돌핀스타디움을 찾아 플로리다를 상대한 15일 경기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고 4실점할 때에는 뭔가에 집중력이 전혀 없었다.

무사 2루에서 2번 알레한드로 디아자의 희생번트 처리과정에서 나온 악송구는 1루 미트를 한참이나 벗어난 김병현의 실책이었다. 애리조나 밥 멜빈 감독은 1회부터 마운드로 올라갔고, 김병현은 멜빈 감독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강판될 때 김병현의 투구수는 겨우 17개였다.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김병현을 단 2경기 만에 사실상 방출한 애리조나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플로리다에 남아 예비 FA로 주가를 한창 끌어올리던 시점에서 터진 이적이라 김병현에게도, 팬들에게도 아쉬운 이적이었다.

그러나 영입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과정이 어떠했든 프로선수는 경기에 충실해야 한다. 애리조나는 김병현에게 선발 자리를 보장하며 기회를 줬다. 2차례 선발등판이 큰 기회라고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나 적어도 김병현이 호투했다면 더욱 많은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며 관심도가 높은 서부 1위 애리조나에서 호투했다면 올 시즌 종류 후 FA가 됐을 때 자신의 가치도 더욱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경기, 12일 만에 김병현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희소성이 있는 잠수함 투수로 각 팀들이 하나쯤 보유하고 싶은 선수다. 과거의 강속구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힘 있고 변화가 심한 볼 끝은 김병현의 매력요소다.

그러나 김병현은 이 같은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코칭스태프 또는 구단과의 오해와 불화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으며 스스로 가치를 깎아내리는 모습이 잦다. 돈에 매달리지 않고 마운드에서 승부하는 것을 즐기는 순수한 스포츠맨십을 지닌 김병현이지만 메이저리그도 엄연히 사업이다. 스포츠와 비즈니스가 결부된 것이 바로 프로스포츠다. 그 프로스포츠에서 뛰는 선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선수다.

초특급 스타선수들도 백의종군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시점에서 김병현의 최근 행보는 어쩌면 자업자득일지도 모른다. 그가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남은 유일한 한국인 빅리거였을 정도로 ‘특별한’ 선수이기에 더욱 씁쓸하다.

[관련기사]

☞김병현, 안타까운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


☞‘방랑자 행보’ 김병현, ‘어디서든 자기하기 나름’


데일리안 스포츠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