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 트레이드 12일 만에 방출 대기 통보
´마음을 제구´해야
김병현(28·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 12일 만에 방출될 위기에 몰렸다.
애리조나는 16일(이하 한국시간) 김병현을 방출 대기(designated for assignment)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10일 동안 김병현을 원하는 팀이 없으면 김병현은 마이너리그행을 선택하거나 팀을 떠나야 한다.
플로리다를 떠나 애리조나로 옮겨온 지 불과 12일 만에 방출 대기가 결정된 것은 충격적이지만 애리조나가 김병현을 포기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김병현이 애리조나에서 두 번의 등판을 통해 보여준 투구가 최악이기 때문.
김병현은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이었던 15일, 마이애미 돌핀스타디움서 열린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고 4실점(투구수 17개)하며 1회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결국 팀은 5-14로 대패했다.
이에 앞선 9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서도 김병현은 2와 3분의 1이닝 동안 5실점을 하는 등 이적 후 2경기에서 2와 3분의 2이닝 9실점(방어율 23.63)이라는 참담한 투구 내용을 드러내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김병현을 영입했던 애리조나를 오히려 곤경에 빠뜨렸다.
애리조나는 현재 67승 53패(승률 0.558)를 기록,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지구 2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승차는 2게임에 불과하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사력을 다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BK의 약간 다른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
플로리다에서 14번의 등판(선발 13번)을 통해 5승 3패 방어율 4.16 피안타율 0.227을 기록, 예전의 위력을 찾아가고 있던 김병현이 애리조나로 이적 후 전혀 다른 투수가 돼버린 것은 당황스럽다.
특히 김병현은 플로리다에서 던진 마지막 6경기에서 3승 1패 방어율 3.25 피안타율 0.203를 기록했고, 36이닝 동안 33개의 탈삼진을 잡아냈을 만큼 위력적인 투구를 뽐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도 90마일 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애리조나에서의 부진은 더욱 충격적이다.
최근 두 번의 등판에서 김병현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투구했다. 김병현의 갑작스러운 부진이 이적 과정에서 생긴 내면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김병현은 자신의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선수다. 문제는 좋지 않은 감정이 얼굴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투구 내용에서도 묻어난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병현은 불만이 있는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랐을 때 항상 최악의 투구를 보였다. 올 시즌 스프링캠프가 끝나고 선발에 탈락했을 때 콜로라도가 자신을 속였다고 공개적으로 화를 냈던 김병현이 콜로라도에서 등판한 3경기에서 1승 2패 방어율 10.50을 기록한 것은 플로리다에서 보여준 투구를 감안했을 때, 부상이나 구위 하락과 같은 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2005년 김병현은 선발 투수로 뛰고 싶다는 강한 의사를 표명했지만 6월까지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김병현이 원하지 않던 구원 등판 18게임에서 거둔 성적은 3패 방어율 7.66이 전부였다. 불펜에서 극도의 부진한 투구를 보였던 김병현은 그해 선발로 나온 22경기에서 5승 9패 방어율 4.37을 기록했다. 선발 방어율이 구원 방어율 보다 3점 이상이 낮았던 것이다.
구원으로 참담한 성적을 거둔 투수가 선발로 전환해서 더 잘 던진다는 것도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자책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구원 투수가 방어율 관리가 더 용이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김병현은 2005년 상당히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통산 86세이브를 거두고 있는 김병현에게 불펜 투구가 낯설었던 것도 아니다.
김병현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로 접근을 한다면 김병현은 약간 다른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충격이나 극도의 부담에서 비롯되는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은 스스로 이겨낸 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김병현은 자신의 심리 상태에 따라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경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김병현은 자신의 심리 상태에 따라서 어느 순간 다시 극도의 부진으로 빠져들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김병현은 플로리다에서의 생활을 매우 즐거워했다. 이것은 그의 얼굴에서도 나타났다. 하지만 김변현은 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동을 해야만 했다. 김병현은 트레이드 결정이 내려지기 전 프레디 곤잘레스 감독에게 "선발이 아닌 불펜이라도 좋으니 플로리다에 남게 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불펜으로 돌아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김병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김병현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김병현은 애리조나에서의 극도의 부진한 투구를 보여준 채 방출 대기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김병현은 좀 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 김병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공의 제구력이 아니라 ‘마음을 제구’하는 것이다.
향후 거취는 안개 속이지만 김병현은 여전히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투수다. 자신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응원하는 수많은 팬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좀 더 냉철한 프로 선수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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