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동부 거점지역이었던 성출산 독립운동사 복원한 ‘도채위경’ 출간
친일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잔혹하고 비정하며 동시에 부끄러운 단어다. ‘친일’의 멍에는 지탄과 경멸을 불러오기 때문.
사실 ‘내선일체’를 주장하던 1940년대는 ‘친일’의 기준을 모호하게 만든 암울한 시기였다. 변절한 지식인들과 암묵적으로 일본에 동조한 일반인들은 친일과 애국의 사이를 줄타기하며 부채의식을 공유했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친일 청산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악용되거나 혹은 미지근한 결말로 매듭지어진 데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도채위경’(박혜범 저, 도거출판 박이정, 352쪽, 2만원)은 역사에 묻힌 애국지사를 복원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혜범씨는 실증적인 역사연구를 통해 친일과 애국의 진위를 검증하고 관련 인물들의 행적을 쫓고 있다.
“마한(馬韓)의 불교사를 연구하기 위해 수년간 온 산을 헤매다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와 백성들이 수난을 당하던 시절, 우국지사들이 성출산 바람을 먹고 구름으로 토해놓은, 청류동 단심대 항일 독립 운동사를 알게 되었다”고 집필 배경을 밝힌 박씨는 호남 동부 거점지역이었던 성출산 항일 독립운동사를 묵묵히 따라간다.
박씨는 “세상이 아는 분명한 강도를 독립군으로 조작하여 국가로부터 훈·포장을 받게 하고 십장을 했던 인물의 동상을 세워 아무것도 모르는 후손들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도록 하고 있는 현실에서 침일파의 후손들과 부패세력들이 얼마든지 악용할 소지가 있다”면서 성출산에 남겨진 항일 독립지사들의 기록에 주목한다.
그는 성출산 청류동과 원계 등에 남겨진 글들을 바탕으로 사료와 시문 등을 통해 치열했던 항일 독립사의 한 자락을 펼쳐보인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섣불리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점. 박씨는 긴 일제 강점에서 다양한 계층이 다양한 방법으로 일제에 부역을 했거나 항일투쟁을 했었던 만큼 올바른 식민청산의 방향은 창씨개명과 친일부역 여부가 아니라 ‘당시 그들 개개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직업과 계급을 기준으로 삼는 식민청산 방법론은 특정한 선 긋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는 것. 특히 특정한 지역에서 독립자금을 모으는 비밀 총책 또는 어떠한 독립에 관한 비밀활동을 하고 있다면 위장을 위해 일제에 협조하는 시늉을 해야 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도채위경은 ‘금을 캐듯 인재들을 발굴하여 세상을 갈아엎자’는 뜻. 다소 과격한 제목은 그러나 친일과 식민청산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방법론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당대를 살지 않은 후손들이 함부로 현재의 잣대를 휘두를 경우, 친일의 오명을 쓰고 항일을 했던 인물들의 작은 노력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게 박씨의 설명. 그는 친일은 청산하되 시간을 들여 심층적으로 사료를 분석함으로써 친일 여부를 판독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도채위경은 친일이나 변절 여부에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적 맥락에서 ‘항일독립운동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련 인물들의 평가 역시 이름을 새길 당시의 기준에 의거함으로써 저자의 사견은 철저히 객관성의 뒤에 가려지고 있다.
잊혀진 역사의 무명으로 남은 항일독립지사들을 되살린 ‘도채위경’은 식민청산과 친일 등에 대한 의미있는 작업이자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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