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루수 전성시대, ‘황금장갑은 내 것!’

입력 2007.08.11 09:27  수정

김동주·이범호·정성훈·이현곤·최정

메이저리그에서 3루수는 재벌 포지션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에서 발표한 30개 구단 전체 선수 연봉조사에 따르면 3루수들의 평균 연봉은 587만 달러로 전체 포지션 중 가장 많았다. 2003년까지만 하더라도 3루 포지션의 평균 연봉은 9개 포지션 중 8위에 그쳤지만, 2005~06년에는 연속으로 평균 연봉 전체 1위에 올랐다. 유격수에서 3루수로 포지션을 옮긴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영향도 없지 않지만, 공수를 겸장해야 할 3루수들의 가치가 그만큼 상승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도 유독 3루수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바야흐로 ‘3루수 전성시대’다. (모든 기록은 11일 오전 현재)


◆ 3루수 인플레이션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6회 수상에 빛나는 김한수(삼성)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조금씩 하강곡선을 그렸다. 올 시즌에는 야수진 세대교체라는 명목아래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등 사실상 백업멤버로 전락했다. 하지만 3루수 부문을 장기 독점한 김한수의 하향세는 새얼굴들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기존의 김동주(두산)를 필두로 최근 몇 년간 정상급 3루수로 성장한 이범호(한화)·정성훈(현대)에 이현곤(KIA)과 최정(SK)까지 정상급 3루수 반열에 올라서며 경쟁을 가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3루수는 공수를 겸장해야 할 포지션이다. 공격에서는 1루수나 지명타자 못지않은 타격과 장타력을 갖춰야 하며 수비에서는 빨랫줄 같은 타구와 느린 타구를 처리할 수 있어야한다.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무려 8차례나 수상한 한대화를 비롯해 김용희·이광은·송구홍·홍현우 등도 공수를 겸비한 3루수들이었다. 지난 25년간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선수는 단 9명으로 포수(8명) 다음으로 그 수가 적다. 장기집권이 많았다는 뜻으로, 그만큼 공수를 겸장한 특급 3루수가 많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김동주·이범호·정성훈·이현곤·최정 등 무려 5명이 유례없는 특급 3루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는 김동주의 대활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타율 3할2푼1리·17홈런·65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김동주의 OPS는 9할9푼6리로 3루수 가운데 가장 높다. 전체적인 공헌도와 생산력이 가장 뛰어난 타자가 바로 김동주였던 것이다. 지난 2년 연속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이범호는 타율이 2할4푼4리밖에 되지 않지만, 김동주와 함께 3루수 중 가장 많은 홈런(17개)이 강점이다. 지난해 이범호가 3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결승타(14개)와 함께 20개의 홈런이 크게 작용했다. 타율 2할7푼9리·11홈런·58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정성훈은 꾸준함이 돋보이는 중장거리 타자지만, 리그 최고로 평가되는 3루 수비가 더욱 높이 평가된다.

김동주·이범호·정성훈의 활약이 예상 가능한 일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현곤과 최정의 활약은 의외이며 기대이상이다. 의병제대로 복귀한 지난해 막판 반짝 활약을 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한 이현곤은 겨우내 전지훈련을 충실하게 소화하내며 몸을 만들었고 콘택트에 집중하면서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타율 3할4푼9리로 리그 수위타자이며 최다안타에서도 전체 1위(127개)를 달리고 있다. 이제 약관이 된 최정도 3년차를 맞아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 SK에 얼마 안 되는 ‘주전멤버’ 최정은 타율은 2할7푼6리로 평균치지만 홈런(15개)·타점(59개)은 상위권이다. 특히 득점권 타율은 무려 4할1푼6리로 리그 전체 1위다.


◆ 골든글러브 향방은

지난해 골든글러브에서 가장 치열한 경합을 벌인 곳이 바로 3루수 부문이었다. 결국 이범호가 2년 연속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정성훈이 수상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지난해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골든글러브의 향방이 묘연하다. 지명도나 이름값에서 가장 앞서는 김동주가 단연 눈에 띄지만, 골든글러브는 지명도나 이름값으로 뽑는 상이 아니다. 특히 장타력은 떨어지지만 놀라운 콘택트와 밀어치기 능력으로 고타율과 최다안타를 찍어내고 있는 이현곤이 반드시 장타를 겸비해야 한다는 기존의 3루수 관점을 깨뜨리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수 있을지가 새로운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관건은 이현곤이 현재 페이스를 이어가 타격·최다안타 2관왕을 차지했을 때다. 고전적인 3루수의 의미에 충실 한다면 정확성과 파워를 두루 겸비한 슬러거 김동주에게 무게중심이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김동주와 이현곤의 올 시즌 OPS는 1할6푼4리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타이틀홀더의 가치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베스트10’을 폐지하는 대신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과 전체적인 공헌도까지 종합평가한 1984년부터 지난해까지 투수를 제외한 나머지 9개 부문 골든글러브 포지션 수상자 208명 중 다관왕을 포함해 80명(38.5%)이 타이틀홀더였다. 타이틀을 차지했음에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 선수는 30명(14.4%)뿐이다.

그러나 나머지 포지션을 제외한 3루수만 놓고 봤을 때 타이틀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했다. 1984년부터 지난해까지 23차례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중 타이틀홀더는 불과 4차례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타이틀홀더 중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 3루수가 없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올 시즌 이현곤이 타이틀 2관왕을 차지하고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다면 그는 타이틀홀더로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하는 최초의 3루수가 될 수도 모른다. 아직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3루수 전성시대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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