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 ´롯데 법칙(?)´…팬들도 지친다

입력 2007.08.11 10:50  수정

7위 롯데, 점점 좁아지는 ‘4강 문턱’

롯데 강병철 감독은 9일 삼성과의 사직 홈경기에서 개인통산 900승을 달성했다.

김응룡-김성근 감독에 이어 프로야구 역대 3번째 900승 위업을 홈구장에서 달성했지만, 강병철 감독이 관련 행사를 극구 사양하는 등 900승 관련 축하행사는 일절 없었고 흔한 꽃다발 증정조차 없었다.



역설적이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2000년을 끝으로 가을잔치와의 인연이 끊긴 롯데는 올 시즌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물가물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팀 상황이 이러한데 900승 관련 축하행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이것이 지금 롯데의 현실이다.


▲ 롯데의 법칙 ‘희망과 좌절’

2000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2패로 아깝게 탈락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할 줄은 누구도 몰랐다.

하지만 2001년부터 시작된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기는 롯데를 지하의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암흑기 동안 손민한과 이대호라는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와 4번 타자가 차례로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곧 야구가 단체스포츠라는 것이 여실하게 나타는 대목이다. 선수생활의 최전성기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는 두 선수도 가슴 아프지만 가을잔치를 목매어 부르짖은 롯데팬들에게는 더욱더 안타까운 일이다.

올 시즌 롯데의 출발은 좋았다. 현대와의 수원 개막 3연전을 싹쓸이했다. 롯데가 개막 시리즈를 싹쓸이한 것은 그들의 마지막 전성기로 기억되는 1999년 LG와의 사직 3연전 이후 8년만의 일이었다. 사실 겨우내 뚜렷한 전력보강이 없어 포스트시즌 진출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개막 3연승이 희망이라는 싹을 틔웠다. 4월을 11승10패로 마치며 가능성을 불씨를 이어갔다.

그러나 찻잔속의 태풍처럼 불씨는 금방 꺼졌다. 5월 9승2무13패, 6월 10승13패, 7월 9승1무9패를 마크하는데 그친 것. 8월에도 3승5패. 5할 이상 승률은 희망을 지핀 4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롯데팬들에게 올 시즌의 풍경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매년 계절 연례행사처럼 반복된 일이기 때문이다. 시즌 전 롯데와 관련된 소식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결코 빠지지 않는다. 팬들은 그 희망이라는 단어에 혹한다. 그리고 시즌 초반에는 기대이상으로 선전하며 열기를 띄우고 팬들은 열광한다.

평균이 지배하는 야구에서 경기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모든 것은 제 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시즌 초반 선전하더라도 롯데의 성적은 매년 8위 또는 7위였다. 2005년 5위라는 성적이 뜻 깊게 느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희망과 열광 그리고 절망과 좌절로 연결되는 대서사 구조는 2000년대 이후 반복되고 있는 롯데의 법칙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 지긋지긋한 롯데의 법칙

시즌 전 예상 라인업을 짜면 어느 팀이든 우승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시즌 전 예상 라인업에는 부진과 부상이라는 돌발변수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허상에 가까운 라인업일 뿐이다.

올 시즌의 롯데는 시즌 전 예상 라인업부터 허점투성이였다. 4번 이대호를 제외하면 마땅히 받쳐줄만한 타선의 부재는 결국 롯데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롯데는 경기당 평균 득점에서 전체 3위(4.36점)에 올라있다. 그러나 팀 타율(0.271)·출루율(0.346) 모두 2위에 올라있는 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결코 많은 점수가 아니다.

이승화·정수근이 각각 전반기·후반기에 분전하면서 롯데의 출루능력은 대폭 향상됐다. 그러나 루상의 주자들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결정적인 장타의 부재는 득점의 빈곤을 야기했다. 롯데의 팀 장타율(0.371)은 전체 7위에 불과하며 팀 홈런(54개)도 뒤에서 2번째다. 물론 LG는 롯데보다 장타율(0.368)도 떨어지고 팀 홈런(52개)은 리그에서 가장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가 4강 싸움에서 낙오하지 않고 계속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건 결국 선택과 집중의 차이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기는 경기와 지는 경기의 편차가 롯데는 LG보다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올 시즌 LG는 3점차 이내 승부에서 26승5무21패, 승률 5할5푼3리를 기록했다. 반면 4점차 이상 승부에서는 18승23패로 승률 4할3푼9리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접전에 비교적 강한 면모를 보였으며 지는 경기는 확실하게 진 경향이 강했다. LG의 피타고라스 승률이 실제 승률과 차이가 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이 잘 된 셈이다.

그러나 롯데는 4점차 이상의 넉넉한 승부에서는 24승21패, 승률 5할3푼4리로 강한 모습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3점차 이내 접전 승부에서 18승3무29패, 승률 3할8푼3리에 그쳤다. 약팀은 10점차로 한 번 이기고, 1점차로 열 번 패하기를 반복한다. 2000년대 이후 롯데가 딱 그렇다.




▲ 절망과 좌절 ‘팬들은 지친다’


경기 시작 전 사직구장은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정신없다. 삼삼오오 경기장을 찾아 모여드는 팬들은 신문지로 응원 도구를 만들고 비닐봉지를 흔들며 열정적으로 응원할 준비를 한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은 부산 팬들에게는 쇼의 시작이다.

그러나 경기를 거듭할수록 즐거운 쇼의 장연이 되어야 할 관중석은 무거운 침묵이 흐를 때가 많다. 롯데에 그동안 수없이 속고 또 속았지만 그래도 시즌이 돌아오면 꿋꿋이 경기장을 찾는 팬들도 시즌 막판 희망이 절망이 되어 좌절로 변할 때에는 선수단 못지않게 지친다.

롯데팬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응원문구를 수없이 만들었다. ‘근성마저 없다면 거인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없다’는 선수들에게 근성을 강조하는 팬들의 강렬한 메시지다. ‘선수가 포기하지 않으면 팬들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선수들만큼이나 팬들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장엄한 의지를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희대의 여덟 글자로 기억될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2000년대 롯데야구를 완벽하게 함축하고 있다. 3시간여 계속되는 경기 내내 열정적으로 응원을 보내고, 선수단이 정신을 번쩍 들게끔 하는 응원문구를 내거는 그들이다. 그러나 시즌 막판부터 밀려오는 씁쓸함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롯데는 11일 현재 95경기에서 42승3무50패, 승률 4할5푼7리를 기록하고 있다. 포스트시즌 커트라인인 4위 한화(46승2무43패)와의 승차는 5.5경기. 이대로 가을잔치를 포기하기에는 분명 아쉬운 시점이다. 그러나 잔여경기가 31경기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산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쉽게 줄어들 격차가 아니다. 최근 10경기에서 현대 다음으로 나쁜 4승6패를 거두고 있다는 것에서 나타나듯 페이스가 점점 나빠지거나 일정치 못하다.

남은 일정도 롯데에게 무척 불리하다. 천적으로 군림한 KIA와의 일정이 모두 끝났으나 상대전적에서 4승12패로 눌린 SK, 5승10패로 뒤진 한화와 3경기·2경기씩 남아있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혈안이 된 LG와의 일전을 9경기나 남겨둔 것도 부담스럽다.

10일 두산과의 잠실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된 손민한은 2주 전 “무조건 4강”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이라고 소감을 달리했다. 시간은 점점 가는데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소감일지 모른다. 하지만 롯데팬들은 여전히 기적을 꿈꾸고 있다. 지긋지긋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롯데의 법칙이다.


☞‘피로누적’ 손민한-류현진, 절실한 부활


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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