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타들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는 갔다.
가요계에서 립싱크만 잘해도 주목받던 가수들의 운 좋은(?) 경우가 완전히 사라졌듯, 브라운관에서도 이제는 뛰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연기자들보다 외적으로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탄탄한 연기력과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배우들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는 지금 연예인 포화상태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연예인이 탄생하는 요즘,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연예인들도 그 수명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게 됐다. 게다가 국내 작품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지면서 스타의 자리는 젊은 연예인들만의 몫이 아니게 된 상황. 요즘 뒤늦은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중견 스타들이 한 둘이 아니고, 풋풋하고 예쁜 외모를 자랑하는 신인들, 또 주연은 물론 조연급 배우들도 고루 주목받으면서 배우들의 자리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가운데 예상치 못한 덕을 누리게 된 배우들은 바로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해도 어느 하나 어색함이 없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마니아 꼬리표를 단 연기자들이다. 외적인 능력이 우선되지 않은 이들이기에 늘 대중의 관심 속에 있지 않지만 작품 출연 때마다 마니아팬들을 구축해, 오히려 굵고 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 이들의 시대가 시작된 요즘 브라운관은 어느 때보다 풍성해 보인다.
마니아 대표 연기자로 단연 손꼽히는 배우는 엄태웅. 그에게 톱배우 엄정화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 것은 아주 잠깐이다. 연예인답지 않게 유독 내성적이고 쑥스러움도 많아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가 적고 언론과의 인터뷰도 잦은 편이 아니지만 유명세는 스타급 수준. 오직 연기력으로 얻어낸 결과라 오히려 웬만한 스타보다 팬층이 두껍고 다양하다.
그의 출연작은 사실 흥행에 실패한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작품성만큼은 높게 평가받아 이제 그가 출연하는 작품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 드라마 <부활>에 이어 <마왕>까지 모두 시청률은 고작 한 자리 수였지만 즐겨보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만큼은 평가가 높았고, 매번 대중성에 목메지 않고 과감히 작품을 선택해 온 엄태웅은 배우로서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오빠부대가 따를 만큼 풋풋한 젊은 세대가 아니고 꽃미남 외모도 아니지만 그의 작품이 해외에 소개되면서 이제는 당당히 아시아의 주목을 받는 한류스타로 거듭난 상황. 마니아 배우라는 꼬리표마저 떼어버리고 대중적 스타로 성공적인 변모를 이뤘다.
김명민의 경우, 마니아배우에서 국민배우까지 거듭난 보기 드문 성공 케이스다. 올해로 데뷔 11년째를 맞는 그가 유부남 배우가 된지도 벌써 6년째. 처한 상황이나 택한 작품들 모두 스타성과는 늘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드라마 <불량가족> 정도가 대중성 짙은 작품에 출연한 경우의 전부.
하지만 타고난 연기력 덕에 작품섭외가 끈임 없이 이어졌고, 대단한 연기력이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사극<불멸의 이순신>에 출연하면서 김명민은 ‘완벽한 이순신’으로 거듭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첫 시도된 의학 전문 드라마 <하얀거탑>에 연이어 출연, 작품이 예상 외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주인공 김명민 역시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됐다.
김명민은 어느 새 영화 <리턴>을 들고 팬들 앞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가장 어려운 흥행 장르로 통하는 공포 스릴러물로 ‘수술 중 각성’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다뤄,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더욱 어려워 보이지만 영화팬들의 관심과 기대는 의외로 뜨겁다. 늘 이유 있는 시도를 해온 김명민이 선택한 작품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가질 수 있는 의심 역시 반으로 줄어든 것.
이들처럼 마니아표 배우에서 브라운관 스타로 거듭나 요즘 누구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배우가 또 한 명 탄생했다. 단편영화와 단막극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곤 했던 이선균. 현재, 톱스타 윤은혜와 공유가 주연을 맡아 높은 시청률을 이끌고 있는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 출연해 대단한 인기몰이 중이다. 20․30대 시청자들은 물론 소녀팬들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정도. 데뷔 6년 차인 그가 이제야 주목받게 된 상황은 ‘운’이 지독히 따라주지 않은 결과인 듯도 싶지만 사실 대중성보다는 예술성 짙은 작품에 주로 출연해 온 영향이 크다.
지금껏 출연작이 20여 편에 달하지만 흥행작은 찾아보기 힘든 수준. 스크린 대표작 <잔혹한 출근> <손님은 왕이다>와 현재 개봉을 앞두고 있는 <우리 동네>까지 모두 국내에서는 비주류 장르로 통해 배우들도 스스로 출연을 꺼려한다는 스릴러물이다. 드라마 역시 대중성은 약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점과 더불어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은 <태릉선수촌> <도망자 이두용> 등이 대표작.
올해도 어김없이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과감한 도전을 이어간 그는 드라마의 흥행과 함께 결국 안방팬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데 성공했고, 최근 신세대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에 출연하면서 인기 스타로서의 쾌감을 제대로 맛보고 있다. 뮤지컬 배우 출신답게 연기력만큼은 모자람 없어 늘 특색 있는 작품에 출연해 마니아 관객들을 확실히 사로잡아온 그가 쌓아온 내공이 대중적인 작품에서 두 배의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여배우들 또한 이제는 ‘미녀스타’보다 개성 강한 연기파 배우들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여배우들과 달리 마치 예뻐 보이기를 거부한 듯 독특하고 조금은 난해하기까지 한 캐릭터를 고집해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유독 관심을 끌었던 배두나 강혜정 등이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데뷔 후 꽤 오랫동안 흥행 참패를 겪으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마니아 팬들의 끝없는 지지 속에 묵묵히 연기 생활을 해 온 이들은 현재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빛을 발하고 있다
앞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빛낼 기대주 역시 외모보다는 능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꼽히고 있다. 데뷔하자마자 독특한 캐릭터로 자신만이 가능할 법한 캐릭터를 연이어 탄생시킨 탤런트 이하나,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 전 스크린계에서 먼저 능력을 검증받은 신세대 연기파 배우 온주완, 작품마다 극과 극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이진욱 등이 그 주역들이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대단한 발전을 이뤄내 얻은 또 하나의 득이 바로 미남 미녀보다 내적인 능력이 뛰어난 연기자들이 주목받는 시대를 만들어낸 것 아닐까 싶다. 예쁘진 않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 자기 색깔 분명한 배우들이 빛나는 작품들을 줄지어 탄생시키고 있는 만큼, 한국 대중문화의 미래는 더욱 밝아 보인다.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난 브라운관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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