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별곡>, <이산>, <정조암살 미스터리> 등
왜 드라마는 지금, 정조를 이야기하는가?
최근 안방극장에 ‘정조’를 다룬 드라마들이 넘쳐나고 있다.
지난 31일 종영된 KBS 2TV <한성별곡-정>을 비롯해 오는 8월 첫 방영을 앞두고 있는 MBC 특별기획 <이산-정조대왕>, 10월 초 케이블 TV 최초의 사극 제작으로 관심을 모으는 채널 CGV의 <정조암살 미스터리>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으로 조선 정조 시대를 다룬 작품이 하반기에만 무려 세 편이나 선을 보인다.
조선왕조 후기의 ‘르네상스’로 꼽히는 정조 시대는 그동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 대중문화의 역사적 상상력을 부추기는 소재로 주목받았다.
인물 개인의 뿌리를 따지면 숙종 시대부터 경종-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조선왕조의 비극적 가족사가 있고, 시대로서는 과거와 현재, 명분과 실리, 보수와 개혁 세력이 충돌하던 사회적 격변기이기도 했다.
유년시절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를 간직해야했던 불행한 개인사, 처절한 권력투쟁의 한가운데서 조선의 문예부흥과 상업발전을 이끈 뛰어난 개혁군주로서의 면모, 사후에도 독살설 등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임금이라는 점에서 정조는 역대 조선왕조사에서 세종대왕, 연산군 등과 더불어 가장 드라마틱하고 매력적인 인물로 꼽힌다.
최근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도 대부분 정조를 주류세력의 권위에 저항하여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되살리려는 외로운 개혁 군주나,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인 영웅으로 묘사한다.
추리사극을 표방한 <한성별곡-정>이나 <정조 암살 미스터리>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정조를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과 ‘벽파’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의 대립을 통해 조선시대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시각이 돋보였다.
앞서 베스트셀러와 영화화가 큰 화제를 모았던 이인화 원작의 <영원한 제국>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역사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정조의 최후를 대부분 ‘독살설’이라는 음모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공통점이다. <정조 암살 미스터리>의 연출을 맡은 박종원 감독은 <영원한 제국>에서 이미 정조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이산>은 정조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전반을 조명한다. <대장금>, <허준>을 통해 사극의 보증수표로 자리 잡은 이병훈 PD의 차기작인 <이산>은, 정조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주로 다룬 기존 작품들에 비하여, <이산>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투쟁에 이르는 세손 ‘이산’의 불행한 유년시절과, 훗날 정조가 된 이후 조선왕조의 마지막 르네상스를 이끄는 개혁군주로서의 입체적인 일대기를 모두 다룰 예정이다.
정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카리스마 대결도 눈길을 모은다. <한성별곡-정>에서는 그동안 스크린에서 개성 있는 조연급으로 주목받았던 중견배우 안내상이 섬세하고 지적인 느낌의 정조를 호연하며 호평을 받았다.
<정조 암살 미스터리>에서는 <한반도>, <제국의 아침> 등을 통하여 카리스마 있는 군주연기를 여러 차례 선보였던 김상중이 타이틀 롤인 정조를 맡을 예정. <이산>은 상대적으로 가장 젊은 이서진이 주연을 맡아서 청춘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는 약 40년에 이르는 정조의 방대한 인생역정을 연기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정조 시대를 다룬 작품들이 대거 선보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마침 대선정국이라는 시기와 맞물려 드라마가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부분.
<한성별곡-정>은 최근 방영 시 일부 대사와 캐릭터 묘사에서 정조를 다분히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인물처럼 묘사해, 드라마로서의 정치적 편향성과 고증에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권력투쟁과 사회적 격변기로 얽혀진 정조 시대의 사회상을 드라마가 현대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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