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 행보’ 김병현, ‘어디서든 자기하기 나름’

입력 2007.08.10 12:36  수정

올해만 콜로라도→플로리다→애리조나

방랑자 행보…어차피 마운드는 똑같다

애리조나의 건조하고 뜨거운 태양은 김병현(28)에게 좋은 추억이었다.


그 아래서 김병현은 가속페달을 밟으며 성장했고 리그를 대표할만한 특급 마무리투수로 성장했다. 비록 2003년 5월 보스턴으로 이적하며 애리조나를 떠났지만 어디까지나 발전적인 이별이었다.

그러나 이제 김병현에게 애리조나는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뱅크원 볼 파크라는 정든 이름도, 보랏빛의 유니폼도, 함께한 선수들도 이제는 오래된 책장속의 책갈피처럼 과거의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말이다.

김병현은 지난 4일 웨이버 공시를 통해 플로리다에서 애리조나로 이적했다. 올 시즌에만 벌써 2번째 이적이다. 지난 5월, 김병현은 지긋지긋한 콜로라도를 떠나 습하지만 뜨거운 플로리다로 적을 옮기며 새 출발했다.

올 시즌 불펜강등을 놓고 코칭스태프와 마찰을 일으키고, 트레이드 요구과정에서 구단과도 갈등의 골이 깊어진 콜로라도에서 김병현은 기분 좋게 공을 던질 수 없었다.

하지만 젊고 패기 넘치는 팀 동료들이 많은 플로리다에서 김병현은 활기를 찾았다. 특히 ‘간판스타’ 미겔 카브레라는 김병현의 투구 폼을 흉내 낼 정도로 친근감을 과시했다. 김병현의 찡그린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자 성적도 좋아졌다. 플로리다 이적 후 14경기 모두 선발 등판한 김병현은 5승3패 방어율 4.16 WHIP 1.56 피안타율 2할2푼7리로 비교적 좋은 성적을 냈다.

9이닝당 평균 6.30개에 달한 볼넷의 남발은 좋지 못했지만, 9이닝당 8.09개나 된 탈삼진은 위력적이었다. 볼 끝이 홈플레이트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뱀처럼 휘는 슬라이더와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마이애미의 태양아래서 위력을 발휘했다.

물론 팀 성적은 포스트시즌과 일찌감치 물 건너갔으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가 2개나 있는 김병현에게는 팀 성적보다는 선발투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절실했다. 플로리다는 그에 딱 맞는 팀이었다.

하지만 플로리다에서 4번째로 많은 연봉(250만 달러)이 김병현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김병현은 플로리다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저비용 고효율을 원칙으로 하는 플로리다 수뇌부에게 김병현의 연봉은 부담스러웠다. 결국 플로리다는 김병현을 웨이버 공시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애리조나가 김병현을 낚아챘다. 플로리다는 고액 연봉자 김병현을 정리했고, 애리조나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전력보강에 성공했다.

김병현의 의사는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 물론 김병현에게는 트레이드 거부권이 없으며, 그 정도 권리를 행사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선발투수도 아니다. 하지만 플로리다의 무더위에 막 적응하기 시작한 김병현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김병현은 한국시간으로 9일,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이적 신고식을 치렀다. 예전 뱅크원 볼 파크였던 홈구장의 명칭은 체이스 필드로 바뀌어있었고, 올해부터 빨간 방울뱀이 된 유니폼도 어색했다.

결국 이날 피츠버그를 맞아 선발 등판한 김병현은 2⅓이닝 동안 홈런 하나 포함해 7안타 5실점(4자책)하며 조기 강판됐다. 김병현이 올 시즌 7안타 이상 맞은 경기는 3차례가 있었지만, 그 중 2차례는 6이닝 이상을 던진 경기였다. 하지만 이적 첫 경기부터 김병현은 경기 초반부터 대량실점하며 올 시즌 최소이닝으로 무너졌다.

이제 겨우 이적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과거 빅리그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지만 야구는 환경과 적응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스포츠다. 게다가 최근 급상승세를 타고 있는 애리조나에서 잘 한다면 더욱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남은 경기에서 ‘무조건’ 좋은 피칭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애리조나는 김병현이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을 줄 수 없다. 성적에 매달리지 않았던 플로리다의 느긋한 팀 분위기와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김병현은 3회 마운드를 내려올 때 홈 관중들의 야유를 받았다. 선수에게 박수와 야유는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별 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김병현은 애리조나에 집을 구하지 않았으며, 시즌을 마칠 때까지 호텔에서 생활을 할 계획이다.

떠날 팀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영원한 홈은 없다. 물론 어떤 유니폼을 입고 오래 뛰느냐에 따라 운명과 가치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김병현이 마운드에 오른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방랑자라 할지라도 마운드는 똑같다. 물론 팀과 상황이 중요하지만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는 따르게 돼 있다. 어딜 가든 자기하기 나름이며 김병현은 충분히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투수다. 올 시즌 유일한 한국인 빅리거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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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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