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스캔들>, <한성별곡> 등
시대 복원 넘어 재해석으로
흔히 시대극은 방송가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클래식’한 장르로 평가된다.
주 시청층이 주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역사적 실존 배경이나 인물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고증과 연출의 창의성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시대극의 흐름이 변하하고 있다. 과거의 전통과 관습을 벗어나 그 시대와 인간의 모습을 새롭게 해석해내는 ‘퓨전 시대극’이 최근의 대세다.
2000년대 초기, <어사 박문수>나 <다모>, <대장금> 등을 통해 본격화된 이런 시도는 오늘날에 이르러 <황진이>, <별순검>, <한성별곡-정>, <경성스캔들> 등을 통해 점점 진화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만 집착하는 이야기 구조를 벗어나, 고려-통일신라-삼국시대-선사시대로 까지 무대를 확장하고 있고, 궁중야사와 권력투쟁 중심의 정치-영웅 사극을 벗어나 전문직 종사자나 서민들의 시선에서 풀어낸 이야기, 멜로와 미스터리, 어드벤쳐 등을 결합한 다양한 장르의 시대극들 등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이후 ‘동북공정’과 ‘독도 파문’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같은 ‘고구려사 열풍’이 안방을 강타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드라마가 과거를 그저 ‘복원’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시대의 가치관에 개입하고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최근 방송되고 있는 <경성스캔들>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던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시대극 위에 트렌디 드라마의 분위기를 결합한 독특한 시도로 주목받았다.
모던보이와 모던 걸, 스윙댄스와 연애 게임이 성행하는 드라마 속 ‘발칙한’ 설정들은 그동안 일제의 수탈과 독립운동의 무대로만 그려졌던 1930년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들은 사랑에 빠져들고, 사람들은 희로애락으로 얽히게 된다는 진리를 경쾌하게 보여준다.
자칫 역사왜곡이나 미화로 비칠 수 있는 설정들을 드라마는 우연히 항일무장투쟁과 로맨스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살며시 비켜갔고, <경성스캔들 14회>에서도 신선한 시대극의 묘미를 선보였다. 원작 소설인 이선미의 <경성애사>처럼 거짓연애가 진실한 사랑이 되고, 그것이 조국을 향한 사랑으로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낸다.
<한성별곡-정>은 조선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추리 사극이다. 개혁과 보수, 봉건주의와 실용주의가 충돌하던 조선 후기를 무대로, 봉건왕조를 지탱해온 기득권 세력과 신흥 세력 간의 권력투쟁, 수구세력의 저항에 대항하여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되살리려는 고독한 군주로서의 정조를 조명하고 있다.
<한성별곡>에서 보여주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충돌, 신구세력 간의 주도권 다툼과 가치관의 혼란 등은 다분히 오늘날 현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굳이 <한성별곡>만이 아니라도, 대선이 열리는 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최근의 사극이 조선시대 이야기로 귀환하고 있는 ‘복고주의’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대왕 세종>이나 <왕과 나>같은 방영을 앞두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정치투쟁이나 지도자의 리더십을 주된 화두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처럼 시대극은 과거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성스캔들>이나 <한성별곡>같은 퓨전 사극들은 그 실험성과 작품적 완성도에 비해 시청률 면에서는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중장년층 팬들을 가장 큰 기반으로 한 보수적인 장르이고 갑작스런 변화나 파격적인 시도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퓨전 시대극이 단순히 마니아들을 위한 장르를 넘어서 그 시대 대중의 보편적인 감성과 코드를 읽어내는 독자적 장르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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