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외국인선수 선발제도가 4년 만에 트라이아웃-드래프트제로 환원한 가운데 그 때 그 시절의 추억과 반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오래된 광고카피처럼 프로농구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도 순간의 선택이 적어도 한 시즌을 좌우하곤 했다. 19일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된 트라이아웃-드래프트에서 10개 구단 코칭스태프는 백지상태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과 실패 사례는 현재의 좋은 참고서가 된다. 역대 프로농구 드래프트의 결정적 순간들을 되짚어본다.
① 동양과 힉스, 극적인 만남
동양(현 오리온스)은 외국인선수와 유독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원년인 1997시즌 득점랭킹 3위에 오른 토니 매디슨을 빼면 이렇다 할 외국인선수 복을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2001년 7월, 시카고에서 열린 드래프트에서 전 시즌 최하위에 그친 동양은 구슬추첨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는데 성공했다.
당시 막 사령탑으로 취임했던 김진 감독(현 SK)은 전체 1순위로 이 선수를 호명했다. 순간 드래프트 현장이 술렁였다. 김 감독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선수의 이름을 호명했기 때문. 그 선수가 바로 마르커스 힉스였다.
미시시피 대학을 졸업하고 2000-01시즌 미국 하부리그 IBA에서 신인왕을 거머쥔 힉스였지만 변변한 해외리그 경력도 없었고 보여준 것도 많지 않았다. 당시 외국인선수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부분이 ‘빵빵한’ 상체를 앞세운 골밑 몸싸움 능력이었다. 그러나 수수깡처럼 빼빼마른 힉스는 큰 케이크에서 어쩌다 떨어져나간 빵부스러기처럼 주목받지 못한 존재였고, 설령 지명되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낮아보였다. 게다가 당시 트라이아웃 내내 주목받은 안드레 페리는 모든 구단이 탐낸 1순위감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젊고 스피드가 있는 힉스를 1순위로 지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김 감독이 막 취임한 것을 감안하면 감독인생의 일생일대를 건 모험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더없이 화려하고 찬란했다. 힉스가 활약한 2시즌 간 동양은 정규리그·플레이오프 통합우승 1회, 정규리그 2연패, 플레이오프 준우승 1회라는 위업을 일궈냈다. 2시즌 평균 28.6점·10.7리바운드·3.8어시스트·3.1블록슛을 기록한 힉스는 2시즌 연속 최우수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했다. 김승현과의 막강 콤비네이션은 프로농구 전체에 가공할만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금도 힉스라는 이름은 농구팬들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진동시키고 있다.
② 현대와 SK, 드래프트 빅딜
신선우 감독은 변화에 능동적이었다. 1997-98시즌 정규리그·플레이오프 통합우승을 이루자마자 우승공신이었던 센터 제이 웹과의 재계약을 포기한다.
하지만 신 감독은 재키 존스를 영입한 1998-99시즌에도 통합우승하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감독은 변화를 도모했다. 골밑과 외곽, 높이와 스피드의 조화가 정점을 이룬 완벽한 우승이었지만 신 감독은 보다 완벽한 정통농구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영입한 선수가 바로 ‘괴물센터’ 로렌조 홀이었다.
1999년 8월 시카고에서 열린 트라이아웃에서 홀은 가공할만한 골밑 파워와 리바운드 능력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모든 구단들이 홀을 1순위 지명감으로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은 골드뱅크가 에릭 이버츠를 지명하자 SK가 2순위로 홀을 지명했다. 그리고 드래프트 현장에서 SK는 현대에 홀을 내주고 존스를 영입했다. 서장훈과 현주엽을 보유했던 SK로서는 높이보다는 조화가 필요했고 내외곽을 넘나들며 팀의 이음새 역할을 할 존스가 키워드였다. 반면 현대는 높이와 정통농구를 위해 홀을 영입했다.
결과는 SK의 승리. 존스를 영입한 SK는 기대대로 완성도 높은 농구를 펼치며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시즌 중 현주엽을 내주고 조상현을 데려오며 포지션 불균형을 해소한 것도 영향이 크지만 서장훈과 함께 트윈타워를 이루며 공수 양면에서 팀의 윤활유 노릇을 한 존스의 보이지 않는 힘이 매우 컸다. 대조적으로 현대는 높이와 수비가 변함없는 위력을 발휘했지만, 오히려 공격적인 면에서 창끝이 무뎌지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존스의 자로 잰 듯한 아웃렛 패스가 없어진 현대의 속공은 폭발적이지 못했고, 자유투와 중거리슛이 약한 홀로는 공격의 다양성을 꾀하기 어려웠다.
③ 현대와 LG, 뜻하지 않은 윈-윈
1997년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드래프트.
전체 2순위 지명권으로 정통센터 제이 웹을 지명한 현대 신선우 감독(현 LG)은 2라운드에서 가드 겸 포워드 버나드 블런트를 뽑을 요량이었다.
당시 현대에는 김재훈(현 모비스)이라는 수준급 파워포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골밑 요원 2명으로 외국인선수를 채울 필요가 없었다. 머릿속 구상을 모두 끝마친 신 감독은 일찌감치 나머지 구단들에게 블런트를 지명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며 암묵적인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그 때 그 암묵적 동의를 깬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LG 이충희 감독(현 오리온스)이었다. 이 감독의 LG는 현대에 3순위 앞인 2라운드 전체 16순위로 블런트를 지명해 버렸다. 졸지에 점찍어둔 선수를 잃어버린 신 감독은 결국 ‘힘이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조니 맥도웰을 지명했다. 상실감 속에 기대도 하지 않고 뽑은 맥도웰이었지만 결과는 대박이었다. 20명 중 19번째로 지명되며 한국에 발을 디딘 맥도웰은 가공할만한 골밑 파워로 리그를 장악했다.
게다가 맥도웰의 지명은 추승균의 성장이라는 나비 효과로 이어졌다. 맥도웰은 4시즌을 현대와 함께 번영을 누리고 떠났지만 추승균은 지금도 KCC에서 마지막 적자로 남아있다. LG 역시 공격형 선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팀 공격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 블런트를 앞세워 창단 첫 시즌부터 정규리그 2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뜻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대와 LG 모두에게 윈-윈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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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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